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나순이 Sep 23. 2023

미용실과 목욕탕

공백포함 글자수 2,818 (4,822 byte)

공백제외 글자수 2,104 (4,108 byte)


예전에는 미용실을 이용하는 게 목욕탕을 이용하는 것과 비슷하게 위생관리 차원에서의 습관적인 소비활동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이용이 뜸해졌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동네에 코너 돌면 하나씩 있을 정도로 널리고 널린 게 미용실이지만 딱히 내 마음에 드는 곳이 없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부담스러운 가격 때문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주로 서비스적인 부분인데, 사실 이것도 결국 두 번째 이유인 비싼 금액 때문에 무의식 중에라도 괜히 더 높은 서비스를 요구하게 되어서 쉽게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만약 가격이 저렴했다면 마음에 안 들어도 가격을 생각하며 적당히 만족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종종 미용실의 필요성을 느끼고 가야겠다고 마음먹다가도 이런 부분 때문에 망설이다가 결국 관두게 된다.


동네에 그나마 '비교적' 마음에 드는 미용실이 딱 한 군데 있었는데, 서비스적인 부분은 좋으나 가격이 너무 비싸서 언제부터인가 발길을 끊었다. 요즘 어딜 가나 시세가 그렇기는 하다마는 그래도 차라리 머리 자를 값으로 브랜드치킨에 사이드까지 추가해서 시켜 먹고 싶은 심정이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를 값으로 할 수 있는 더 나은 일들이 너무 많다. 그만큼 내 기준에서 미용실에 쓰는 돈이 가성비가 떨어지고 합리적이지 못하게 느껴진다.


미용실을 잘 가지 않다 보니 자연스레 머리가 많이 길었고, 언제부터인가 유지비용이 들지 않는 긴 머리를 고수하게 되었다. 한번 파마를 해놓으니 일여 년간 별도의 스타일링이 필요가 없어서 돈이 굳는다. 지저분하게 길어 나오는 앞머리와 머리끝은 집에서 셀프로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인가 목욕탕도 거의 가지 않게 됐다. 미용실과 목욕탕, 둘 사이에는 은근한 공통점이 있다. 한때는 습관적으로 소비하다가 지금은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릴 때는 기름보일러가 있는 집에서 살았는데 기름값이 굉장히 비싸서 보일러는 방을 따뜻하게 하는 용도로만 간신히 사용하고 온수는 함부로 쓸 수 없었다. 온수 자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보면 되겠다. 기름값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번 기름업자를 부르면 그 시절 기준으로 20만 원 정도의 거금이 나갔다. 아끼고 아끼면 한 계절을 겨우 날까 말까 한 수준이었다.


뜨거운 물이 필요할 경우 양동이에 물을 채워서 가스레인지로 끓여서 사용했고, 그 물로 세수나 겨우 했지 목욕을 하기에는 물의 양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목욕을 하기 위해서는 목욕탕 방문이 필수적이었고, 여름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에 짧게는 한주에 한번, 길게는 격주 혹은 그 이상의 간격을 두고 한 번씩 꾸준히 목욕탕에 갔다.

 
성인이 되었을 때 기름보다 요금이 훨씬 저렴한 가스보일러를 쓰는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집에서도 온수로 따뜻하게 샤워 정도는 할 수 있게 됐지만, 그래도 욕실도 좁고 목욕탕에서만큼 개운하게 씻기에는 한계가 있어서 목욕탕 이용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헬스장에 다니게 되면서 가성비 좋게 샤워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 목욕탕에는 자연스럽게 발길을 끊었다.


가끔 뜨거운 물속에 몸을 푹 담그는 탕욕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고는 하는데, 코로나가 유행하게 되면서 호흡기전염이 걱정되어서 대중목욕탕에는 아예 갈 엄두조차 못 내고 있었다. 지금은 코로나에 대한 걱정이 예전 같지 않지만 오랫동안 안 가다 보니 익숙하지가 않아서 발길이 잘 안 닿는다.
 
어린 시절 목욕탕 입장료가 얼마였더라. 너무 오래돼서 정확히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대략 대인 (어른) 5,000원, 소인 (미취학아동) 3,000원 정도였던 것 같고, 언제부터인가 물가가 오르며 5천 원이 6천 원이 되고 6천 원이 8천 원이 되고 그랬던 것 같다. 이용을 안 한 지 꽤 되어서 요즘은 얼마나 할지 모르겠다.


동네 구석구석 간간이 무슨 무슨 탕이라는 상호명의 목욕탕들이 여전히 있는 것 같긴 하다. 그게 아니라면 헬스장과 함께 운영되는 비교적 시설 좋은 사우나가 주를 이루는 것 같다. 아무튼 집에서 기름으로 물을 뎁혀서 씻는 것보다 목욕탕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성에서나 가격면에서나 여러모로 합리적이었다.
 
현재는 전기보일러를 쓰는 집에서 거주 중이다. 전기요금의 경우 한 달에 대략 3-4만 원이 나온다. 주변 자취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달에 만 원대밖에 안 나온다는 친구도 있고 거기에 비하면 내가 유독 전기세를 많이 내는 편인 것 같은데, 가스요금이 나오지 않은 걸 감안하면 또 그리 많은 편은 아닌 것 같다.


같은 건물에 거주하는 다른 세입자들의 전기요금 고지서를 슬쩍 본 적이 있는데 4만 원에서 10만 원까지 천차만별이었고 개중에서는 오히려 내가 적게 내는 편이었다. 특히 한겨울이나 한여름에 요금이 많이 나오는 걸 보면 확실히 냉난방에 많은 전기가 쓰이는 것 같다. 전기를 전혀 쓰지 않아도 기본료가 15천 원씩 붙어 나오는 다소 이해할 수 없는 요금책정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세 들어사는 입장에서 정해진 법을 따를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에 수시로 드나들던 외가에서는 아궁이에 땔감을 넣어서 불을 땠다. 온돌을 놓아 난방장치를 한 방을 '구들방' 이라고 부르는데 구들방 구석 모서리 쪽을 보면 누런 황토색 장판이 갈색으로 탄 자국이 아직까지도 생각이 난다. 친가에서는 연탄보일러를 썼다. 마당 한구석에 연탄이 수북이 쌓여있던 풍경이 떠오른다. 연소하여 하얗게 변한 연탄을 장난 삼아 발로 걷어차며 놀던 기억이 있다.


한국의 유명한 시인 안모씨가 그랬던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군가에게 단 한 번이라도 따뜻해본 적이 있는 사람인가. 글쎄, 무생물에 딱히 감정이입이 되지는 않네. 아무튼 삼십몇년을 사는 동안 나무-연탄-기름-가스-전기를 모두 한 번씩 겪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산모교육과 경품행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