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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순이 Dec 17. 2024

단유 후 재수유 도전, 아기이불 구입

나는 내 아이에게 최선을 다 하고 있는가.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하겠다. 지난 석 달을 돌이켜보면, 후회되는 순간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은 어쩔 수가 없고, 지금부터라도 최선을 다해야겠다.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기가 태어난 직후로 돌아가고 싶다. 출산하는 그 순간, 아기의 울음소리, 벅차오르는 감정, 눈물을 쏟아내게 만드는 안도감. 아니면 임신초기로 돌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아니 막상 적어놓고 생각해 보니 혹시나 모를 변수가 무서워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리고 출퇴근과 육아휴직투쟁 따위의 귀찮은 일도 또 반복해야 하니까, 생각할수록 돌아가기가 싫네. 돌아가면 더 잘할 수 있는 것들도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쨌든 아주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 아기가 갓 세상 밖으로 나온 가장 시초로 돌아가는 것은 괜찮을 것 같다. 그 이전의 인생은 나한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면 모유 수유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지금 가장 후회되는 것이 아무래도 이 부분인 것 같네.


나는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지 않고 분유를 먹인다. 첫 한두 달 동안은 분유와 모유를 섞어서 먹이는 혼합수유를 하다가 지금은 완전분유, 즉 완분을 하고 있다. 주변에서 모유 수유를 하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괜스레 마음이 불편하다. 도대체 마음이 왜 불편한가 생각해 봤는데, 죄의식, 열등감, 자격지심, 피해의식 때문인 것 같다. 내 기분 탓일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말속에서 모유 수유를 한다는 것에 대한 은근한 자부심과 자랑이 느껴진다. 하지만 저건 확실히 자부심과 자랑거리가 맞고, 같은 엄마로서 인정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주변에서 모유 찬양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면 그 이야기가 마치 분유 수유를 하는 엄마들에 대한 비난과 질책으로 비꼬아서 받아들여진다. 사실 그 누구도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는 엄마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유를 그렇게까지 찬양하니, 반대로 모유보다 덜한 분유는 당연히 좋지 않다는 확대해석이 따를 수밖에. 결국 내가 해내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과 자격지심 때문이겠다.


모유가 좋다는 건 거의 상식처럼 통하는 것 같다. 심지어 분유통에도 '모유가 아이에게 가장 좋은 식품입니다' 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분유를 만드는 회사에서조차 분유보다 모유가 좋다고 하다니, 모유가 분유보다 좋다는 건 절대적인 상식이고 정답으로 볼 수밖에 없다. 아무튼 모유 수유가 좋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지만, 여건상 모유 수유를 못 하고 분유 수유로 대체할 수도 있는 건데, 그런 결정을 했으면 그냥 마음 편하게 그렇게 하면 되는 건데, 왜 이렇게까지 불편한 기분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걸까. 불가피한 사정이 아니라 내 노력이 부족해서 최선을 버리고 차선으로 육아를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책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모유 수유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인 것 같다.


사실 모유 수유를 할 수 없는 여건이랄 게 뭐가 있나. 아기가 조리원에 있는 동안 젖병 수유에 적응이 돼서 내 젖을 잘 못 빨아서, 직수가 어려워서 유축을 하는데 이게 시간도 많이 잡아먹고 몸도 피곤하고 여러 가지로 나를 지치게 만들어서, 출산 이후 식욕도 별로 없고 밥 챙겨 먹기도 귀찮고 먹는 것에 일일이 신경 쓰는 게 싫어서, 귀찮은 마음에 하루 이틀 모유 수유를 걸렀더니 젖이 양이 줄어서, 계속 거르니까 결국에는 젖이 말라서,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모유를 끊고 분유를 먹이고 있는 것이다.


아기가 분유는 잘 먹지만 유축한 모유는 안 먹고 거부했던 적도 있고, 식욕이 없어서 밥을 잘 안 먹어서 내 모유에 과연 영양분이 골고루 있긴 한 건지 계속 신경이 쓰이기도 했고, 직수를 할 때 나나 아기 모두 어쩐지 자세가 불편하고 수유량이 가늠이 안 되고 결국 직수 후 매번 분유 보충이 불가피했다. 또 모유가 유축할 때마다 조금씩 색이 다르고 종종 거품이 생기고 냄새가 분유와 다르게 살짝 비린내가 나서 이것 역시 괜히 신경이 쓰이고, 아기가 수유 후 배앓이를 하면 내 모유에 무슨 문제가 있나 그런 걱정도 자꾸 됐고, 뭔가 이것저것 스트레스받을 일이 많았다. 그에 반해 분유는 심플하다. 다만 분유 <모유라는 거대한 공식이 있다 보니 그걸 계속 의식해야 하고, 모유는 공짜인데 분유는 다달이 비용이 발생하고, 매일 젖병과 젖꼭지를 세척하고 소독하는 등 관리를 해야 한다는 점이 분유 수유의 최대 단점이다.


나는 한번 단유를 하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늘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재수유를 하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물론 그 방법이 마냥 쉽지는 않다. 애초에 모유 수유가 잘 되던 사람이 단유를 했을 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이 많을 것 같으면, 어렵더라도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면 해결될 일 아닌가. 그래서 힘들겠지만 재수유에 도전해볼까 싶다. 안 되더라도 최소한 시도는 해봐야 더 이상 미련이 안 남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분유만 먹었더라도 이제 곧 이유식을 시작할 텐데 모유니 분유니 하는데 너무 집착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사실 분유값, 젖병관리 비용 발생을 빼면 지금 딱히 문제 될 게 없는 상황이다. 아기는 잘 자라고 있고, 비만하지도 않고, 배앓이도 거의 안 하는 것 같고, 변을 누는데도 큰 문제가 없다. 하루 혹은 이틀에 한 번씩 눈다. 걱정도 많고, 핑계도 많고, 생각이 끝이 없네. 어쨌든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재수유를 일단 시도는 해보려고 한다. 분유든 모유든 앞으로 최소 7개월은 더 먹여야 하는데, 시도는 해봐야지.


최근 들어 아기가 내가 밥을 먹는 것을 유심히 관찰한다. 출생 120일 경과, 체중이 출생 무게의 2배 이상, 어른이 뭘 먹는 것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 이유식을 시작할 때라던데, 아직 120일 까지는 안 됐지만 현재 체중은 7kg 이상으로 출생 때의 2배를 넘어선 지 이미 오래고, 먹는 것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니, 태어난 지 120일째가 되면 슬슬 이유식을 진행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이유식만큼은 꼭 내가 직접 해서 먹여야겠다. 시판이유식도 많긴 하던데, 이 정도는 내가 해 먹여야겠다.


아직 말 못 하는 아기랑 도대체 뭘 하고 놀아줘야 하는 걸까. 요즘은 유튜브로 육아를 배울 수 있다.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다들 비슷하게 놀아주면서 키우고 있었구나. 딱히 배우지 않았어도 내 나름대로 잘 놀아주고 있었다. 옹알이하면 눈 마주 보고 대꾸해 주기, 거울 보여주고 말 걸기, 안고 걸어 다니기, 손 잡기, 다리 주물러주기 등등. 이 나이 때는 말 주고받고 스킨쉽을 하는 게 최고의 놀이라고 한다. 잘 먹이고 제때 기저귀 갈아주고 수시로 목욕만 시켜줘도 잘 놀아주는 게 되겠다. 어제는 대변을 안 눴지만, 새벽에 재우기 위해서 목욕을 시켜줬다. 곧바로 잠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목욕을 안 했을 때보다는 비교적 일찍 잠들었다. 새벽 2시인가 그때 자서 4시에 잠깐 깼고, 밥 먹고 다시 잠들어서 오전 9시 30분에 깼다. 요즘은 배가 고파도 예전처럼 울지 않는다. 우는 대신 옹알이를 한다.


얼마 전에 아기 이불세트를 샀는데 잘 덮고 잘 잔다. 지난 석 달간 이불 하나 없이 키웠다. 아기는 이불 덮으면 위험하다고 해서 아예 이불 없이 키웠네. 옷도 맨날 다리 없는 바디수트 입혀서 춥게 다리 다 드러내놓고 이불도 안 덮어주고, 지금 생각해 보니까 진짜 대충 막 키웠네. 근데 이불 대신 수건이나 뭘 덮어주면 무조건 다리로 다 걷어차서 진짜 필요 없는 줄 알았지. 지금도 여전히 발로 이불을 걷어차려고 하지만, 몇 번 그러다가 그대로 덮고 잔다. 이불이 가볍고 따뜻하다.


불과 한두 달 전만 해도 커서 못 입던 내복들이 이제는 다 딱 맞다. 딱 맞다 못해 배는 살짝 타이트하게 느껴질 정도. 얼마 못 입히겠다. 헐렁하던 바디수트들도 딱 맞다. 우주복은 다리가 살짝 짧게 느껴진다. 태어날 때 2.9kg였던 아기가 100일을 앞둔 지금은 7kg가 넘었는데, 앞으로 석 달 후에는 또 얼마나 클지 가늠이 잘 안 된다. 올 겨울, 내년 봄까지는 지금 입고 있는 옷들을 그대로 쭉 입었으면 좋겠고, 그때 가면 여름옷은 새로 사야 하지 않겠나 싶다. 아기용품 사는 건 사실 좀 재밌다. 아기에게 이것도 사주고 싶고 저것도 사주고 싶고 하는 이런 마음들이, 사실 아기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부모의 욕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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