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 박찬욱의 박쥐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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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상현(송강호)은 사람 살리는 좋은 일을 하고 싶다며 해외에서 비밀리에 진행되는 백신연구에 지원했다가 실험도중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정체 모를 피를 수혈받으며 구사일생 뱀파이어로 새롭게 태어난다. 뱀파이어는 얼핏 보기에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인적인 운동능력과 탁월한 재생능력을 가진 불사의 존재로 느껴지지만, 해를 보면 타 죽기에 늘 밤에만 활동해야 하고 인간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병든 존재일 뿐으로 이 영화는 그려낸다. 그는 피를 원하는 육체적 갈망과 살인을 원치 않는 신앙심으로 인해 고통받으며, 간신히 자기 합리화를 하고 병상에 누워있는 식물인간의 피를 먹으며 연맹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어린 시절 친구인 강우(신하균)를 만나게 되고 강우의 아내 태주(김옥빈)를 사랑하게 되면서 신부의 옷을 벗고 파멸의 길로 빠져든다. 태주도 결국에는 상현의 피를 먹고 뱀파이어가 되고, 피를 먹으려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태주를 막기 위해 몸부림치는 상현은 한계를 느낀다. 마지막에 두 사람은 지옥에서 만나자며 해를 보고 타 죽기로 결심한다. 타들어가는 그들의 눈앞에 피바다와 피분수를 내뿜는 고래의 모습이 펼쳐진다. 지옥이 있다면 저런 모습일까.
나는 종교가 없는 입장에서, 나약한 인간에게 강력한 비빌언덕이 되어주는 신앙심에 대해서 동경을 가진 적이 많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오히려 그 신앙심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타들어가는 상현에게서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옥을 믿는 자에게는 두려움이 있을 것이고, 지옥을 믿지 않는 자에는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개인의 욕망을 버리고 이타적인 일을 하며 살겠다는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은 천국에 가고 싶어서가 아닐까. 근데 진짜 이렇게 적고 보니까, 나쁜 짓 저지르는 종교인은 무조건 사이비고 가짜인 것 같다. 신이 다 지켜보고 있는데 죽어서 지옥에 갈지도 모르는데 그걸 알면서도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아니니까 그러고 있는 거지. 아무튼 애초에 신앙심이 없었던 태주는 존재 자체를 믿어본 적도 없는 지옥 따위 겁나지 않는다. 그녀는 말한다.
"우리는 그냥 사람 잡아먹는 짐승이에요. 여우가 닭 잡아먹는 게 죄예요?"
이 영화는 로맨스 멜로 영화고 개요에 진짜 그렇게 나와있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뱀파이어가 되어버린 신부의 치정극이랄까. 참고로 이 영화는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을 각색한 영화다. 카미유의 아내 테레즈와 불륜에 빠지는 주인공 로랑, 카미유는 마마보이요 테레즈는 욕망에 굶주려있다. 기어이 테레즈와 로랑은 둘의 관계에 놓인 걸림돌인 카미유를 죽이고 두 사람만의 행복을 꿈꾸지만 두둥. 여기에 뱀파이어 소재를 추가해서 박찬욱감독 특유의 색깔을 잘 입혔다.
다른 사람들의 감상평에 의하면 논리적 비약이 있다고들 하는데, 판타지적 요소가 많으니 논리적 비약이 있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고, 가령 일부 씬들에 대해서 저 장면이 뭘 뜻하는 거지 싶은 생각도 문득문득 들었지만, 애초에 생각을 깊게 하지도 않고 또 그런 걸 세세하게 보고 의미를 부여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그런가 영화를 보고 이해하는데 아무 문제를 못 느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성기노출 때문에 논란이 많았다고 하는데, 나는 상현역의 송강호가 성기노출하는 장면에서 뭔가 수치스럽고 치욕스러운 감정을 전달받아서 마음이 짠했다. 혹시 감독의도가 이걸까?
그래도 뭐든 아는 만큼 보이는 거겠지 싶은 마음에 다른 사람의 영화 해석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도 생긴다. 한 가지 궁금한 씬이 있긴 하다. 뭔가 숨은 의도가 있을 것 같은데 정확히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태주가 겉으로는 엄마라고 부르지만 실상은 전혀 엄마처럼 대해주지 않는 사람, 간판은 행복한 한복집이지만 실상은 일본식 가옥의 형태, 그리고 그곳을 찾는 한국어를 전혀 못하지만 의사소통에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는 국제결혼한 필리핀여자, 그곳에서는 중국식 마작 게임이 펼쳐지고, 하다 하다 가톨릭신자가 함께 밤 노름을 하고 있는 이 괴이한 장면... 의도가 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