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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순이 Nov 15. 2023

마리크뢰이어

조현병, 창작과 정신병리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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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항상 우리의 꿈을 말하지만, 당신 마음은 당신의 꿈만을 생각하고 있어. 안 그래? 내 등 뒤에서 그런 생각하지? 아니야? 병원에서 상태가 좋은 날은 당신 생각을 했어. 당신과 당신의 인생에 대해서. 내가 다 망쳤지만 의도한 건 아냐. 신이 내게 준 커다란 재능이 오히려 저주가 됐어.


당신은 예술을 동경하고 갈증을 느끼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까. 여자로, 인간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예술에 대한 당신 욕망도 알아. 그 고통도 이해해. 하지만 예술은 쉬워. 사는 게 더 힘들지. 당신은 예술 말고도 할 수 있는 게 많아. 걸작을 그리는 건 나에게 쉬운 일이야. 난 재능이 있지만 마리 당신한텐 없어. 당신에게는 없어. 평생을 노력해도 가질 수 없을 거야. 그게 신의 뜻이야. 그림을 포기한다면 훨씬 행복해질 거야."


나는 세버린의 이 대사 속에 이 영화의 거의 모든 게 다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세버린은 예술가로서, 끊임없는 창작의 욕망을 느낀다. 그의 말대로 그에게 예술은 쉽다. 타고난 재능 덕분에 생각대로 얼마든지 창작을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평범한 삶에 대한 갈구도 아주 없지 않아 있었을 것이다. 예술은 쉽고 사는 게 힘들다는 말속에 그 갈구가 담겨있는 것 같다.


영화에서는 세베린이 왜 조현병에 걸렸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창작과 정신병리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말이 많았고, 애초에 정신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예술을 하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예술을 하게 되면서 정신 병리적인 증상을 나타내게 되는지 확실한 답을 내리기는 힘들지만, 세베린의 조현병이 창작과 아주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다.


만약 신이 내게 천재적인 재능을 주는 대신 정신병을 함께 준다면, 탐나더라도 포기해야겠지. 재능과 그 재능으로 인한 인정과 동경과 사랑과 돈과 권력과 모든 것을 다 얻게 되더라도 결국 병 때문에 불행할 것 같다. 세상에는 예술 말고도 할 게 많을 테니까. 주인공은 마리크뢰이어지만, 어쩐지 나는 세베린에게 초점을 맞춰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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