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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순이 Oct 09. 2023

책리뷰 : 선량한 차별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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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이 어떤 차별 요소로 인해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평등을 누리고, 그래서 다 같이 행복하고 평화롭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사람마다 행복에 대한 기준이 모두 다 다르고, 똑같은 상황에 놓여도 받아들이는 게 천차만별일 텐데, 그런 모두를 아우르는 평등한 세상은 도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나는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사람 셋만 모여도 서로 다른 목소리에 불평불만이 터져 나오고, 누구는 일하고 누구는 놀고 그러면서도 받을 건 똑같이 받고 싶어 하고, 이런 게 일상다반사인지라 애초에 평등이 가능하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해봤다. 그래서 모두가 평화롭고 평등한 세상이 어떤 세상일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김지혜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었다. 책에 나오는 내용 중 특히 제3부 차별에 대응하는 우리들의 자세에서 ‘모두를 위한 화장실’ 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책에 의하면, 평등사회에서 필요한 화장실의 개수는 최소 4개라고 한다. 여성용, 여성장애인용, 남성용, 남성장애인용.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모두를 충족시켜 줄 수 없다. 남녀로 분리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 즉 트랜스젠더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게, 트랜스젠더들은 어떤 화장실을 이용해야 할까. 예전에 성소수자와 관련된 북토크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트랜스젠더를 자녀로 둔 어느 부모님이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사회에 공용화장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이 의견을 듣고, 모두를 위한 사회서비스가 충족되려면 정말 끝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은 그 사회의 평등 수준을 가늠하게 하는 훌륭한 척도라고 하는데, 일단 나는 무료로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한국 사회 수준만 해도 감사해하는 편이다. 이게 오랫동안 당연시 되다 보니 개인사업장의 화장실도 마음대로 쓰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그런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힌 것 같다. 현재의 화장실 수준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아마 미래에는 다른 나라처럼 유료화장실이 곳곳에 들어서게 될 날이  수도 있겠다. 일단 뭐든 돈이 들어가면 더 나은 서비스를 누릴 수 있을 테니까. 마지막으로 차별금지의 해법은 결국 차별금지법 법률 제정이라고 하는데, 한국사회에서 차별금지법은 과연 통과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차별금지법이란,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성정체성, 성지향성, 장애, 병력, 외모, 나이, 출신국가, 출신지역,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범죄 전력, 보호 처분, 학력,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과 혐오 표현을 금지하는 법률이다. 2007년, 2010년, 2012년 3차례에 걸쳐 차별금지법 입법을 시도했으나 회기 종료와 함께 폐기되었다."


"평등은 그냥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평등은 인간 조직이 정의의 원칙에 의해 지배를 받는 한,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상호 간에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우리의 결정에 따라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평등하게 되는 것이다." (20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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