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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순이 Nov 07. 2023

영화리뷰 : 82년생 김지영

평등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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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영화를 보고 중산층의 우아한 우울을 느꼈다. 고작 이게 중산층이냐 싶겠지만 내 기준에서 이 정도면 잘 사는 거다. 조금 더 현실성 있는 남편과 조금 더 찌들고 억눌린 느낌의 아내를 묘사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김지영이 아무리 힘들어하고 우울해해도 어째서인지 모든 게 다 우아해 보였다. 배우의 예쁜 외모와 차분한 말투와 다정한 가족들과 세련된 아파트 때문이었으려나. 그것은 분명 당장에 죽느냐 사느냐 생계문제에서 비켜가 있었다.

딱히 큰 트러블 없어 보이는 시댁, 아픈데 없이 멀쩡한 두 부모님, 사이좋은 형제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 다들 저마다 자기 자리가 있고 먹고사는데 문제없고, 김지영의 삶은 오히려 누군가에게는 부러워 보일 정도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는 그냥 이 영화가 배울 만큼 배우고 좋은 직장 다니던 꿈 많고 야망 많던 여자가 전업주부가 되고 사회생활이 단절됐을 때 일어나는 일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덧붙여서 아이를 그다지 원하지 않는 여자가 엄마가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도.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 어떤 교사가, 명문대를 졸업하고 전업주부로 지내다가 우울증이 와서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한 지인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그 공부 잘하고 똑똑하던 애를 집에서 살림만 하게 했으니, 걔가 그렇게 살 애가 아니었는데...' 라고 그 교사가 말했는데, 그때는 이해가 잘 안 됐지만 지금은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저 정도만 살아도 좋겠다 싶고 심지어 평생을 꿈꿔도 못 이룰 수준의 삶이, 누군가에게는 자기 야망의 반에도 못 미칠 정도로 불만족스러운 수준이지만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한 결과의 삶이 될 수도 있는 거지. 그러니까 당사자의 마음을 모르는 타인의 눈에는 그저 배가 불렀네 싶어 보이는 것이다.

가령 영화 속에서 김지영의 언니는 교사인데, 그것을 두고 사실은 더 큰 꿈이 있었지만 교사 밖에 못 됐다는 식으로 영화는 묘사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직업이 교사만 돼도 충분히 만족해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남녀를 떠나서 수년동안 임용을 준비하며 간절히 교사의 꿈을 키워나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그 난이도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소설 속에서는 김지영의 언니가 PD를 꿈꿨지만 집에서 여자 직업은 선생님이 최고라며 교대에 가라고 권했고 언니는 결국 그 뜻을 따랐으며, 어머니는 딸의 꿈을 꺾은 것에 대해 슬퍼 눈물을 흘렸다. 나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이입이 그렇게까지 되지 않았는데, 나 같은 경우 집에서 대학을 보내줄 형편도 못 됐고 입시 자체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부분에서 슬픔을 느껴야 하는지 공감을 하기가 어려웠다.

김지영이 해 질 녘마다 느낀다는 그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유쾌하지 않은 기분과 우울함 따위에 굳이 감정 이입을 하자면 이해 못 할 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김지영을 동정하기에는 내가 가진 것이 없고 내 삶이 너무 퍽퍽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배가 고파 죽겠는데 배가 부르다 못해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타인의 걱정을 하는 것이다. 사실 소화불량도 허기 못지않게 고통스럽기는 하다마는. 또한 비슷한 이유로 이 사회가 너무 살기 힘들고 바쁘기 때문에 애꿎은 김지영이 괜한 오해를 사고 욕을 먹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따져보면 잘못한 것도 딱히 없지 않은가.

소설을 읽을 때는 이런 감상이 아니었는데 영화는 별로 와닿지 않는다. 정신과 의사도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고 (이것도 소설에서는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할 텐데) 심지어 결말마저도 긍정적으로 바꿔놔 버린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과거의 직장상사가 퇴사 후 개인회사를 차려서 김지영한테 복직을 권하는, 소설에는 있지도 않은 너무 희망적인 이야기까지. 뭐 육아랑 정신과 치료 때문에 결국 못 하게 됐지만.

또 소설로 읽을 때는 잘 몰랐는데 영화로 보니까 남편이 상당히 괜찮은 사람으로 보였다. 성격 좋고 직장 괜찮고 특히 아내를 너무 사랑하는 마음과 행동이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아내에게 하나하나 다 맞춰주려고 애쓰고 딸 하고도 잘 놀아주고. 영화는 여성의 삶이 아니라 오히려 착한 남편을 보여주는 영화로 잘못 만들어진 것으로 보일 정도였다. 일단 호감형의 배우에 대한 선입견 때문일 수도 있겠는데, 만약 그렇다면 애초에 배역이 잘못됐다.

나는 이 영화가 그냥 김지영의 삶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지, 여성 전체의 삶을 대변하지도 않고 딱히 82년생의 특징을 다루고 있지도 않다고 느껴졌다. 여성차별에 대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은 크게 설득력이 없었고, 특히 사내 몰카사건과 카페 맘충사건은 억지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삶의 무게를 짊어지기에 김지영의 어깨가 너무 가녀리고 연약해 보였다. 학원에서 따라온 남자애 하나도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일 지경이었으니까. 그래도 그 일에 대해 부친이 되려 김지영을 나무라는 장면은 상당히 공감이 갔다. 나도 이런 비슷한 일을 몇 차례 겪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성이므로 여성인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입장임이 분명하지만, 가끔 모든 문제 위에 여성차별이 우선적으로 깔려있다는 생각을 가지기가 어렵다. 주위에서 성별 따지는 사람치고 괜찮은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웬만해서는 성별논쟁에 대해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고 싶은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성별논쟁에서 무력감을 느껴서 외면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애초에 평등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에 글을 쓰면서 한번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이게 맥락이 맞는 내용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은 휴전국이고 남성들만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는 나라이기 때문에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완전한 성평등이 가능한 나라가 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일단 성차별을 말할 때 남자 쪽에서 가장 먼저 언급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또 사실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한국의 군대는 문제가 많다. 군대 문화는 둘째 치더라도 군인에 대한 예우도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원치 않아도 어쨌든 의무와 책임을 다해서 군생활을 하지만, 전역 후 보상받는 것은 그다지 없어 보인다. 오히려 군시절 겪은 폭력에 의한 트라우마에 시달릴 뿐이다. 실제로 군에서 겪은 외상을 평생 안고 사는 남자들을 여럿 봤다. 난청을 앓거나 허리디스크를 안고 살거나 의치를 해 넣었다거나 하는 식인데 그 원인은 대게 훈련 중 사고를 당하는 것도 아니고 순전히 '맞아서' 이다. 주제에서 너무 엇나가는 것 같아서 잘 알지도 못하는 군대 얘기는 일단 여기까지만 적고.


위의 글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고, 나는 책은 그럭저럭 괜찮게 읽었다. 위에서도 몇 에피소드를 언급했듯이 다 이해하고 공감하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술술 잘 읽혔다. 책과 영화는 분명 같은 내용을 가지고 만들어졌지만 결말도 다르고 특히 영화는 짧은 시간 내에 이야기를 압축하다 보니 전하고자 하는 내용에 설득력이 떨어지고, 억지스러움이 느껴졌다.

내가 책을 읽을 당시에만 해도 이 책이 그렇게까지 논쟁의 가운데 서게 될 줄은 몰랐는데, 영화만 보거나 풍문만 듣고서는 괜히 비난하거나 시비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이야기 자체는 평범하다. 그렇게까지 유별나지 않다. 괜히 '여성이 차별받는 이야기' 라는 얘기만 듣고 색안경 끼고 보면 고깝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책을 안 읽고 무조건 시비부터 거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는 추측을 해본다. 내 지인 중에서는 같은 삼십 대 여성인데도 김지영은 도대체 어느 시대 사람이냐고 황당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몇 가지 사례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이 갔다. 책은 구입해서 읽었기에 나중에 생각날 때 다시 한번 더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또 다른 감상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과거에 82년생 김지영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썼던 것을 다시 꺼내 읽어본다. 그때나 지금이나 생각의 틀은 큰 변화가 없는 것 같고, 여기에 차별에 대한 생각이나 좀 더 덧붙이고 싶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나 사회생활을 할 때 누군가로부터 부당한 대우와 차별을 받았다면, 그 차별은 오히려 성차별보다는 다른 부분들이 컸던 것 같다. 이때껏 살아오면서 느낀 건데 이 사회는 정말 무서울 정도로 수직사회였고, 약육강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었다. 사람이 모이고 집단이 형성되면 거기에서는 끊임없는 분류작업이 이뤄졌다. 귀천, 서열, 우열 등...

그것을 가르는 기준으로는 외모, 출신학교, 출생지역, 혼인유무, 직업 종류 등이 오히려 성별보다 훨씬 더 크게 작용했다. 물론 성차별도 있었지만 애초에 차별이 판을 쳤으니 대수롭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정도였다. 더 나아가서 이건 나하고는 상관없지만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군필이냐 미필이냐, 군필이면 어디를 나왔냐도 차별의 요소가 됐다.

이게 더 나아가서 의무적으로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는 여자들을 싸잡아서 불평등을 호소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래서 더더욱 병역기피자 그리고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되는 여자들에 대한 차별로 그 보상을 받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게 다 남성들에게 의무와 책임만 떠안게 하고 그에 걸맞은 보상을 해주지 않은 결과다.

일부 여자들은 여자도 군대에 보내달라는 속 편한 소리들을 하지만, 이게 누군가는 군대가 오히려 권력처럼 느껴져서 못 가는 게 진심으로 억울해서 하는 말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그냥 말이니까 쉽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애초에 여자들은 군대를 거부한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돈 있고 백 있으면 어떻게든 면제받고 싶고 치아를 뽑고 국적을 바꾸면서까지 피하고 싶은 게 군대 아닌가 싶다. 나는 한국에 병역의무제도가 있는 이상 완전한 성평등은 아직 먼 이야기 같다. 그렇다고 군대를 없애면 해결이 되나. 일단 군대를 절대로 없앨 수 없는 원인부터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렇게 흘러 흘러 문제의 본질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애초에 인간의 본성을 두고 성평등 자체가 과연 가능한 일인지 의구심이 든다. 우선 인간의 본성과 진화심리학을 알아야지 성차별에 대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예나 지금이나 군대 얘기를 참 많이 하는데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남성이 사회적으로 받는 대표적인 차별이 결국 병역의무제도가 아닌가 싶다. 그러면 그 외에는? 굳이 생각해 내라면 몇 가지 더 있을 수도 있겠지만 평소에 그렇게까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고, 말해준들 와닿지도 않을 것 같다. 직접 겪어본 적이 없으니까. 이렇게 보면, 여성차별을 말할 때 남성들이 왜 그렇게까지 혐오를 감추지 못하는지 아주 약간은 이해가 간다. 남녀는 다르고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사실 성별보다는 직업이 가져다주는 차별이 오히려 더 크지 않나 싶다. 내가 몸 담는 직업이 곧 이 사회에서의 신분을 나타냈고 그것이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를 불러왔기에, 나는 그에 따른 온갖 어려움을 온몸으로 맞아가며 버티면서 살아왔다. 이 말은 즉슨 내가 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는 걸 뜻하는 말이겠지. 적어놓고 보니 살짝 피해의식적이긴 하다.


모욕, 멸시, 천대, 하지만 내가 겪은 그 부당함들이, 정말로 부당한 차별이었을까? 죽어라 노력해서 기어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은 자들이,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 노력이 부족해서, 시작점이 달라서 노력에도 한계가 있어서, 이유가 어찌 됐든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한 자들을 보면서 가지는 우월감과 보상심리는 무조건 나쁜 걸까? 세상은 정말로 평등할 수 있을까? 평등해도 괜찮은 걸까?

이 질문에 대해서 내가 당연히 나쁘지 무조건 평등해야지 하고 분명히 대답할 수 없는 이유는, 애초에 그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내가 남들보다 우위에 서고 입장이 달라졌을 때 어떻게 행동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며, 무엇보다도 그런 불평등이 있기 때문에 그에 따른 부당함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억지로나마 노력이라는 걸 하면서 살 수 있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별 볼 일 없는 인생의 이유에 그저 '여자라서' 라는 변명을 붙이기에는 어쩐지 부끄러워진다. 다른 모든 요소들을 배제하고 오로지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다는 생각이 강하지 않은 이유가 '아직 덜 당해봐서' 혹은 '여전히 착각하고 있어서' 라면 아무래도 "모르면 공부하세요" 라는 말처럼 공부를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깨우치게 된 것이 오히려 내게 억울한 마음을 가지게 만들고 더 힘들어지게 한다면 그냥 착각하면서 사는 것을 택하고 싶다.

쓰다 보니 의식의 흐름이 지나치다. 시작은 영화감상문이었는데, 글이 길어질수록 요점이 흐려지고 결말을 내기가 어렵다. 이 글이 몹시 지리멸렬하고, 제대로 된 의견을 알기 힘들게 느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평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정해진 신념 같은 걸 가지고 있지 않으니 어떤 시각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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