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나순이 Oct 24. 2023

느그 아빠

닮아도 하필이면 누굴 닮아가지고

공백포함 글자수 1,369 (2,329 byte)

공백제외 글자수 1,003 (1,963 byte)


어릴 때 잠버릇이 안 좋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가족들이 다 같이 한방에 이불을 깔아놓고 잤다. 나는 원인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어쨌든 자면서 몸을 많이 뒤척였고 자는 동안 계속 내 이부자리를 이탈해서 방바닥의 윗부분인 문 쪽으로 몸이 자꾸 올라가는 잠버릇이 있었다. 그래서 늘 엄마에게 "자면서 왜 자꾸 윗목으로 기어올라가느냐" 라는 소리를 들으며 혼이 났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가 나를 혼내는 그 이유가 참 가관이다.


윗목에서 자면 나중에 맏며느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본인도 어릴 때 이런 행동을 해서 지금 이렇게 돼서 고생하면서 힘들게 산다고 너도 커서 그렇게 살고 싶냐고 했다. 잠버릇은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어서 문제가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으니 적어도 함께 방을 쓰는 동안에는 잔소리가 지속됐다.


또 어릴 때 내게는 욕실에서 샤워 후 목에 수건을 두르고 나오는 버릇이 있었다. 물이 덜 말라서 축축한 머리카락이 목에 바로 닿는 느낌이 싫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나의 이런 행동을 굉장히 싫어해서 이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굉장히 심하게 화를 냈다. "노가다꾼들이 너처럼 그런 행동을 한다. 네 아빠를 보는 것 같다. 닮아도 꼭 그런 것까지 닮느냐." 라는 게 그 행동을 제지하는 이유였다.


엄마는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유독 자신의 남편을 닮은 내가 싫었던 모양이다. 확실히 내 외모가 모친보다는 부친 쪽을 더 많이 닮긴 했다. 엄마는 나와 다르게 오빠는 외가 쪽을 닮아서 인물이 좋다고 했다. 잔소리의 내용은 주로 남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남편 대신 딸인 내게 쏟아내는 것과 오빠와의 비교에서 돌고 돌았다.


엄마는 내게 "앞으로 커서 느그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면 절대로 안 된다" 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 가끔 친척들을 만나면 그 사람들 앞에서 저 말을 스스럼없이 하면서 나는 자식들 교육을 철저히 잘 시키고 있다, 애들이 내 말을 참 잘 듣고 착하다, 애들은 지 아빠 말고 무조건 내 편이다, 라는 말을 덧붙이고는 의기양양해했다.


'느그 아빠' 라는 명칭은 이제 자식들 앞에서 자기 남편을 부를 때 쓰는 고유명사가 됐다. 얼마 전에 엄마로부터 또 달갑지 않은 연락이 왔다. 내가 여전히 남자친구와 잘 만나고 있는지, 남자친구네 부모님과는 도대체 언제 만날 건지, 확인차 연락을 한 것 같다. 그러면서 최근에 부친과 최소 연락을 주고받고 있거나 아니면 집에 와 있는 모양인지 대뜸 부친 얘기를 꺼내며 '네가 좋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고 하니 느그 아빠가 너무 좋아하더라" 라고 했다. 그 뒤로 이어지는 내용에는 "나는 네가 하는 대로 따라갈 테니 네가 알아서 빨리 결혼 준비를 시작해" 라는 암시가 깔려 있었고, 질문형이 아니길래 굳이 대답은 하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교동창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