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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순이 Nov 05. 2023

카페에서 들은 대화

카페 말고는 갈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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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알람 없이 눈이 떠지는 대로 일어났다. 물로만 대충 씻고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했다. 배는 고픈데 식욕은 없고 그렇다고 안 먹자니 속이 아프고 현기증이 났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밥솥에 찐 고구마가 밀폐용기에 잘 담겨있다. 고구마가 담긴 밀폐용기를 냉장고에서 꺼내서 뚜껑을 열고 전자레인지에 넣어서 2분간 돌려서 물과 함께 먹었다. 달고 끈적거린다.


바닥에 머리카락이 많이 보이길래 청소기를 한번 돌리고, 온갖 짐들로 지저분해진 식탁을 보기 좋게 정리했다. 물을 마시고 여기저기 놔둔 컵들을 모두 개수대로 옮겼다. 소파에 앉아서 책 읽기를 시도하다가 집중이 안 돼서 관뒀다. 넷플릭스 드라마를 볼까 하다가 역시나 집중이 안 돼서 관뒀다.


백주 대낮부터 집에 틀어박혀 TV화면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도 못 할 짓이다.  남자친구가 해외에 가있는 동안 만나지를 못하니 어째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기분이다. 단 한 사람의 공백만으로도 이렇게 일상이 텅 비어버리다니, 내게 친구가 없음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외출을 해야겠다. 일단 도서관에 가서 연체도서를 반납해야 한다. 벌써 3일째 연체 중이다. 15분 남짓을 걸어서 도서관에 도착했다. 빌린 책은 총 7권. 손에 들고 오느라 꽤 무거웠다. 개중 완독한 책이 단 한 권도 없다. 책을 도서관에서 집으로 옮겨왔다가 다시 집에서 도서관으로 옮겨가는 행위를 하는 것 같다. 책은 두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해당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무인기계로 반납하고 타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데스크에 가서 수기 장부를 작성하고 사람에게 반납했다.


도서관 건물을 빠져나왔다. 이제 어디를 가면 좋을까. 아무도 없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카페에 가는 게 좋겠다. 앉아서 점심을 먹으면서 책을 읽든 글을 쓰든 하겠다. 집 부근까지 다시 걸어와서 집과 가까운 투썸플레이스에 왔다. 일단 자리를 잡고 가방을 내려놓은 후 키오스크로 가서 주문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매장의 어수선함을 눈치채지 못했다. 결제를 하고 자리로 가서 앉아있는데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차마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소음이 스멀스멀 내 귀를 파고들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다.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고 나가고 순환이 이뤄진다. 나와 비슷한 타이밍에 매장에 들어온 손님들이 본격적으로 떠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주문을 할 때까지는 그렇게까지 시끄럽지 않았다.


젊은 남녀, 대략 50-60대로 보이는 중년의 남녀, 그 이상 나이대의 할머니, 아이를 데리고 온 30대쯤 되어 보이는 여자, 다양한 연령층이 보인다. 개중 중년 여성들로만 구성된 테이블이 가장 시끄럽다. 손님들이 시끄러워서 매장음악을 크게 틀어놓는 걸까 아니면 매장음악이 시끄러워서 손님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걸까. 순서가 뭐가 됐든 사람 소리며 음악 소리며 너무 시끄러워서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골이 울리고 가슴이 쿵쾅거리고 속이 매스꺼울 정도로 시끄럽다. 이미 메뉴는 주문했는데 이를 어떡하면 좋을까. 앉아있는 게 거의 고문 수준이다. 카운터로 가서 포장으로 바꿔달라고 하고 들고 나와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그걸 들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끔찍해졌다. 그래서 일단 버텨보기로 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니 이 시끄러운 분위기에 적응이 됐다. 그리고 유독 심하게 시끄럽던 무리들이 자리를 떴다.


따뜻한 커피와 모짜렐라치즈파니니를 시켜 먹었다. 양이 부족하게 느껴져서 잠시 후 아이스크림까지 시켜 먹었더니 더 이상 무언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앉아서 집에서 들고 온 소설책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다시 또 주변의 소음이 거슬리기 시작한다. 고개를 들어 그 소음의 가장 강력한 원인 제공을 하는 테이블로 눈길을 돌렸다. 3명의 중년여성들이 앉아서 거의 악을 쓰다시피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딸, 아들, 신랑이라는 단어가 반복된다. 자식들의 대학과 직업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딸은 어떻고 아들은 어떻고, 누구는 직업이 좋아서 걱정이 안 되는데 누구는 그렇지 않고, 뭐 어쩌고 저쩌고. 저 나이대 저 성별의 사람들이 나눌법한 대화의 뻔한 레퍼토리다. 책에 집중하고 싶지만 계속 들린다. 어쩔 수 없다.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특히 내 쪽으로 등을 보이고 있는 여자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 건 불행의 씨앗을 만드는 일이야. 이게 다 내가 살아보고 겪어봐서 하는 말이야. 내가 그렇게 결혼해서 평생을 힘들게 고생하면서 살았잖아. 나는 안정되지 않았다면 그냥 연애만 하고 즐기고 결혼은 하지 않는 게 좋다는 주의야. 난 애들한테도 항상 이렇게 주입해 왔어. 그렇지 않으면 불행해진다는 걸 내가 이미 겪어봐서 알잖아.


그런데 우리 큰애가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거야. 나보다 더 저런 생각이 강하고 너무 현실적인 사람이 돼버렸어. 애가 결혼을 안 하려고 그래. 그래서 내가 애한테 지금이야 큰 문제가 없지만 나중에 늙어서 엄마 아빠 다 돌아가시고 나면 혼자서 외로워서 어쩌려고 그러냐,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씨알도 안 먹혀."


 모순적이다. 어쩐지 실소가 터져 나온다. 성인 자녀의 결혼관에 식견 좁은 부모의 간섭이 참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잘 알겠다. 저 부모의 자식은 아마도 자신이 부모의 '불행의 씨앗' 이며 그 불행을 자기 대에서 끊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남자친구의 비혼주의자 지인이 딱 저런 말을 했다. 부모의 반대로 결혼을 못 하고 결국 노총각 테크트리를 밟고 있는 친척오빠 생각도 난다. 한참을 떠들던 아줌마들이 자리를 떴다. 나도 조금만 더 앉아있다가 집에 가야겠다.




예전에 카페에 앉아있다가 중년남자들이 자식 욕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아버지들은 카페에 모여 앉아서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구나. 어질어질하다.


"딸래미가 대학원까지 나왔다. 그렇게 오랫동안 공부해 놓고는 전공을 살려서 취업을 하지도 않고, 외국인과 결혼을 하고 외국으로 가서 전업주부를 한다. 실컷 돈 써가며 뒷바라지해 준 부모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부모 등에 빨대 꽂아서 살다가 부모를 배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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