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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순이 Nov 14. 2023

정체불명의 모임 사람들

탈퇴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는 모임의 모임장에게서 생각지도 못한 연락이 왔다. 모임을 하다가 우연히 내 이야기가 나왔고, 그 과정에서 어떤 모임원이 내게 호감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는 것이다. 본인 입장에서는 나와 그 모임원이 잘 됐으면 좋겠고 둘을 연결해주고 싶으니 상대방에게 내 연락처를 알려줘도 괜찮겠냐고 내 의사를 물어보는, 대략 뭐 그런 내용의 연락이었다.


그 모임원에 대해서 말하자면 내가 한창 모임에 참여할 당시에 모임 안에서 서너 번가량 얼굴을 본 사이고, 딱히 개인적으로 만나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다. 그 모임원이 그 당시 솔로고 외롭고 연애가 하고 싶은 와중에 본인과 연애가 가능한 나이대의 적당한 수준의 이성이 시야에 들어왔으니 자연스럽게 호감을 가질 수 있다 치더라도, 이게 반년이 지난 현재까지 지속될 정도의 대단한 감정인가 싶다.


어쨌든 현재까지도 연애가 잘 풀리지 않으니 시간이 한참이나 지난 생뚱맞은 시기에 나에게 이런 연락이 온 것 같다. 근데 왠지 그쪽에서 먼저 적극적으로 내 이야기를 꺼내고, 모임장에게 전화번호를 부탁했을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모임장이 먼저 물어보고 부추기지 않았을까. 그 자리에 없어서 정확한 상황은 모르겠지만, 한창 모임활동을 하면서 봐온 모임장의 언행을 돌이켜보면 왠지 그랬을 것 같다.

 

현재 만나는 사람이 있으니 전화번호 교환은 거절했다. 만약 만나는 사람이 없었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했을까. 일단 대화나 나눠보자며 연락처 교환에 응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보겠다마는, 연애감정을 느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외롭다, 심심하다, 계속 혼자 있을 수는 없지, 사람은 만나고 살아야지, 누구라도 만나자, 하는 생각에, 마음에도 없는 사람을 만나서 불편한 감정을 감내하며 일말의 이득을 찾고자 애쓸 생각을 하니 고개가 저어진다.




지난 토요일에 퇴근 후 남자친구와 베이커리 카페에 갔다가 거기서 정체불명의 모임을 열고 있는 중년 남녀들을 봤다. 남자 4명과 여자 3명이었던가 그랬고, 나이대는 대략 40대 후반에서 50대 정도로 보였다. 남자친구와 둘이서 그들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 내용을 엿들었다. 야구, 드라마, 대학교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 가지만 깊은 내용은 없다. 특별한 주제가 없고 그냥 말을 이어가기 위한 말을 하고 있을 뿐으로 보인다.


남자 1명이 정 가운데에, 여자 2명이 남자 양 옆으로 앉아서 대화를 이끈다. 나머지 4명은 그 3명 옆으로 둘러앉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누군가가 그들의 대화에 끼고 싶어서 과장된 손짓을 하며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지만 잠깐의 시선만 회득했을 뿐 다시 소외된다.


이윽고 대화에 끼지 못하고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리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사직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가운데 앉은 3명의 대화는 끊이질 않는다. 내용은 역시나 없다. 만약 정가운데에 앉은 남자가 모임장이라면 사람들에게 두루두루 시선을 주며 사람들을 이끌어 나가야 할 텐데, 본인 이야기 하기에만 급급하지 다른 사람에게는 관심이 전혀 없어 보인다.


최근 들어 사람들에게 관심이 부쩍 많아진 남자친구와 나는 집요하게 그들을 관찰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다. 저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만나서 무슨 목적을 가지고 저 자리에 앉아있는 걸까. 대략 4050 세대 미혼 친목 모임쯤 되려나. 왜 미혼이라고 생각했느냐면, 시댁, 배우자, 자녀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이대를 봤을 때, 만약 결혼을 하고 자녀가 있다면 자녀들이 아직 미성년자일 거고, 한창 크고 있는 자녀들이 대화 소재에서 절대 빠질 수 없을 것 같은데, 자녀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 것이다.


하고 다니는 행색에서도 왠지 부모의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 할 근거는 없는데 그냥 나나 남자친구의 눈에 그렇게 보였다. 어떤 느낌인지 정확히 설명을 못 하겠다. 자식 있는 부모라면 이 시간에 저 자리에 저 사람들과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앉아있지는 않았을 거라는, 어떤 편견이 작동한 모양이다. 아무튼 고작 그것만으로 그들의 인생을 제멋대로 단정 짓고 상상해 봤다.


대화 소재가 드디어 고갈난 모양이다. 쉴 새 없이 아무 말이나 늘어놓던 세 사람의 입이 드디어 다물어졌다. 대화가 뚝뚝 끊기더니 이윽고 침묵이 돌았다. 정 가운데의 남자가 이제 그만 일어나자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섬주섬 다 먹은 커피잔과 빵접시들을 한데 모으기 시작하더니 이내 나와 남자친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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