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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순이 Dec 17. 2023

독립영화제 백일장에서 떨어진 리뷰 3편 모음

이 글은 2018년 늦여름날 독립영화관에서 봤던 세편의 단편영화 리뷰를 모은 것이다. SNS 해시태그를 이용한 단편영화제 백일장에 응모했었는데 보기 좋게 떨어졌다. 응모한 인원수도 그리 많지 않더라만은. 검색해 보니 거의 나 빼고 다 당첨된 것 같았다.

나는 브런치에 서너 편의 글을 정성껏 써 올려서 작가신청도 해보았지만 탈락되었다. 내 글은 어딘가에서 단 한 번도 선택받아본 적이 없다.


그래도 유년기 때를 떠올려보면, 초중학교 시절에 교내 백일장에서 은근히 수상을 많이 했다. 그냥 글 쓰는 게 재밌었고 어떻게든 완성해서 내면 상을 줬다. 그만큼 글을 써서 제출하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딱히 누군가에게든 칭찬받았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칭찬받으려고 하는 행동은 아니었겠지만.


한 가지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담임교사가 내게 상을 건네면서 '아무도 제출한 사람이 없어서 가 상을 타게 됐다' 라며 상을 건넸다. 나는 그 순간 뭐랄까 은어를 빌리자면, 벙쪘다. 받으면서도 굉장히 찜찜하고 그 당시 나를 보고 있던 반아이들 시선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모멸감을 느꼈다.


그 이후로 교내 글짓기 따위에 글을 써서 제출하는 게 점차 시들해졌던 것 같다. 기회가 있어도 잘 안 썼다. 또 한 가지 중학교 시절에 글쓰기에 얽힌 치욕적이고, 나를 눈물 쏟게 만들었던 에피소드가 또 있는데 이건 다음에 적기로 하자. 괜히 기억 상기시켰다가 잠을 못 잘 것 같다. 됐다. 글로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라는 헛된 꿈은 가지지 않기로 하자. 내 글은 별론가보다 생각하고 취미로만 즐기면 부담이 없겠다. 되지 않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그저 쓰는 것을 즐기기로 하자. 서론이 길었는데, 지금부터 선택받지 못한 리뷰 몇 평을 모아서 올리도록 하겠다.


#선화의 근황


누군가가 차별받고 불이익을 당할 때, 그것은 그 사람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든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차별하는 이유를 들여다보면 그게 꼭 합당한 객관적인 이유라고 보기 어려운 것들이 많고, 나 역시 어떤 이유로든 차별당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선화는 자신이 동창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라서 편애를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선화의 동창도 입사 초기에는 분명 선화처럼 대우받았을 수도 있다.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어떻게든 이유를 갖다 붙여서 내보내고 다시 비정규직을 앉히는 것으로 보인다.


선화 동창의 현재 상황이 얼마든지 선화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나는 마지막에 선화가 혼자서 무거운 밀가루 포대를 옮기는 장면이 그 미래를 시사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 영화를 보면서, 웬만큼 노력해도 좋은 직장 구해서 편하게 먹고살기 힘든 청년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


#김희선


처음에는, 김희선이라는 이름만 같을 뿐 외모도 성격도 품행도 모두 다른 두 여고생 이야기쯤으로 생각하면서 보다가, 한 김희선이 다른 김희선을 질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질투심은 아마도, 다른 김희선이 자신이 좋아하는 남학생과 가까이 지내기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질투심은, 질투의 대상이 나와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 때 더 심화되는 것 같다. 그 공통점으로 인해, '쟤랑 나랑 뭐가 다른데, 왜 쟤는 되고 나는 안 되는 건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나, 여러 무리 중에서 특히 동갑인 사람에게서 질투심을 겪었던 개인적 경험들이 괜시리 떠올랐다.


이름에 관한 상징이나 영화에 내포된 감독의 의도 등을 세세하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냥 스토리 전개 자체만으로도 영화가 꽤 재미있게 잘 만들어졌다. 그리고 배우들도 매력적이고 역할이 모두 잘 어울렸다.


#(OO)


감독이 재채기, 콧물, 코막힘 현상, 어쩌면 축농증과 같은 코 질환 때문에 엄청나게 고통을 받았었나 보다. 너무나도 생생하게 시각화된 코에 관련된 온갖 고통스러운 감각 덕분에, 영화 상영과 동시에 주인공과 똑같은, 아니 똑같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공감이 되는 감각들을 함께 느끼며 굉장히 불편하고 힘들게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더 이상 지속되다가는 숨이 멎어 미쳐버릴 것 같은 순간에야 비로소 모든 것이 해소되었다. 애초에 고통이 없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시원함, 상쾌함이 느껴지며 숨이 탁 트이고 안도감이 밀려왔다. 영화가 끝이 나자 관객석 여기저기서 실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영화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코질환 체험 영화다. 굳이 쓸데없이 고통을 체험할 필요가 있겠나 싶겠지만, 결국에는 마지막에 모두 해소시켜 주어 극강의 상쾌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봐도 좋다. 딱히 어떤 교훈이나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너무 기발하고 독창적이라 여운이 많이 남는다.


(마지막 단락이, 지금 다시 읽어보니까 이 영화를 무시하는 발언으로 오해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뭐든 해석하기 나름이라, 얼마든지 교훈을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반대급부적 행복에 대해서라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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