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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순이 Nov 20. 2023

파이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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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네는 정부 지원이 끊기면서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는데, 배에 동물들을 모두 싣고 이민을 가던 중 운 나쁘게도 폭우를 만나 침몰 사고를 당한다.


파이는 보트 위에 올라타고 겨우 목숨을 연맹하게 되고, 그 보트 위에 다리를 다친 얼룩말과 포악한 하이에나와 뱅골 호랑이가 함께 타게 되며, 잠시 후 그 보트 위로 바나나 뭉치를 타고 있던 오랑우탄까지 함께 올라탄다. 동물들은 서로 싸우다가 결국 다 죽고 호랑이와 파이만이 살아남게 되는데, 파이는 생존의 위협을 느끼며 괴로워하다가 차츰 생존법을 습득하게 된다.


호랑이를 죽일 기회가 찾아오지만 파이는 아이러니하게도 호랑이를 구출한다. 생존의 위협보다는 외로움이 먼저였던 것이다. 결국 파이는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고 빗물을 받아 식수로 이용하면서 호랑이까지 먹여 살리며 호랑이와 보트 위에서 함께 공존해 가는 방법을 알아간다.


그러다가 음식도 떨어지고 허기에 지쳐가던 중 미어캣이 살고 있는 무인도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구원을 얻는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 무인도는 낮에는 평화를 주다가도 밤이 되면 섬 전체가 산성화가 되어 사람을 죽이는 식인섬이었던 것이고, 그것을 눈치챈 파이는 호랑이와 함께 얼른 그곳을 빠져나온다.


마지막에 이들은 멕시코에 도착하게 되는데 숲을 본 호랑이는 뒤도 안 돌아보고 그곳으로 들어가 버리고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구출된 파이는 살아남은 것에 대한 기쁨보다는 호랑이에게서 야속함을 느끼며 어린아이처럼 울어댄다. 그는 구조 후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마지막이 반전이라면 반전인데 그건 다음 단락에서 이야기하기로 한다. 일단 파이는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결과적으로는 역경을 이겨내고 평화롭게 살아간다. 참고로 이건 실화고 파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다른 사람을 통해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종교적 믿음과 의심에 대한 철학을 담고 있다. 종교적 믿음에 대한 경외를 표현하면서도 종교적 맹신과 모순을 비판한다. 파이가 세 개의 종교를 한꺼번에 믿는가 하면, 자신의 가족들이 수장되는 그 와중에도 그 원인인 폭풍을 보며 신이라 찬양하는 안타까운 행위는 모순된 종교적 믿음을 보여준다.


사실 파이가 겪은 실제 이야기는 호랑이와의 조우가 아닌 실제 사람들과의 이야기이다. 파이는 구조 후 사람들에게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말하는데,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파이는 그럼 또 다른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하며 또 다른 진실을 말한다. 당신 같으면 어떤 이야기가 더 아름답고 더 믿고 싶겠냐고. 그건 당신의 선택이라고.


여기서 호랑이는 파이의 또 다른 자아다. 오랑우탄은 그의 어머니, 하이에나는 배에서 만났던 포악한 요리사, 그리고 얼룩말 역시 배에서 만났던 불교신자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얼룩말 즉 불교신자의 시신을 먹으며 목숨을 연맹했다.


결국 파이가 신의 구원이라 말했던 식인섬의 진실은 그가 살아남기 위해서 식인을 했음을 뜻한다. 인간으로서 못할 끔찍한 행위에 대해서 신의 구원이라는 면죄부를 덮어씌우며 진실을 지우고 종교적 신화 즉 전설 따위로 대체시킨 것이다. 이성적인 판단으로 식인을 해서 살아남고, 역시나 이를 거짓된 종교적 믿음으로 왜곡하는 이성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호랑이가 타고 있는 보트는 파이의 마음속 종교적 공간이며, 반대로 호랑이 즉 종교적 자아로부터의 피신처로, 보트와 완전히 분리된 따로 만든 임시뗏목은 이성적 공간을 암시한다.


종교적 공간인 보트의 절반은 천으로 덮여 있는데. 이 천은 종교와 맞닿아 작용하는 이성을 상징한다. 그래서 영화 초반에 천은 호랑이의 첫 습격을 막아주는 보호 장치로 작용하며, 폭풍 속 번개가 신의 존재라 외치던 순간에, 그 천을 걷어내며 호랑이를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는 이성을 걷어낸 종교적 맹신을 암시한다.


폭풍은 신이 아니라 그저 생명의 위협일 뿐임을 깨달으며, 생존을 책임지던 임시뗏목(이성의 공간)까지 잃어버리고, 완전히 보트(종교적 공간)에 올라타게 되는데, 그 최악의 순간 파이는 보트 전체를 천으로 감싸면서 천(이성)으로 완전히 덮인 공간 속에 숨는다는 점이다. 이는 파이가 생존을 위해서 이성에 의해 변질된 종교로 타협함을 상징한다.


조난 상황에서 그가 끝내 호랑이를 버리지 못했던 진짜 이유는, 생존의 위협 속에서도 그는 신의 구원을 있을 것이라는 종교적 믿음으로 버텼기 때문이다. 결국 호랑이는 이성에 의해 꾸며진 거짓된 종교적 자아로 전락하게 되었고, 그 변질된 종교적 믿음의 상징이 파이가 원하는 그 어떤 답 가령 종교적 계시 따위를 줄 리가 없다. 호랑이가 마지막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 이유는, 생존을 위한 도구로 변용되었고, 쓸모를 다하며 사라졌을 뿐이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껏 쭉 무교였는데,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종종 부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떤 대상에 대한 의지와 믿음으로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교가 있어서 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나약해지는 경우도 봤다. 가령 원하는 어떤 것을 얻기 위해 현실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노력을 할 시간에 기도만 올리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난 종교가 없지만 그렇다고 신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니 무신론자라고 하기도 힘들다. 제 각기 다른 형태로 다른 전설들을 입혀놓았을 뿐, 사람들이 말하는 신의 존재가 사실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범신론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자연의 모든 것이 신 그 자체인 것이다.


신이 뭘까. 초인간적 또는 초자연적 위력을 가진 존재가 결국 신 아닌가. 그런 존재가 어떻게 없다고 감히 단정 지을 수가 있을까.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으며 그 과학은 모두 인간이 밝혀낼 수 있다니, 인간에 대한 맹신이 놀랍다. 결과적으로 종교적 맹신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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