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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순이 Dec 17. 2023

몽상가들

포털에서 무료 배포하길래 제목만 보고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한번 봐볼까 하면서 골랐는데 카페에서 보다가 너무 야해서 보다가 당황했다. 지금 보니까 포스터만 검색해 봐도 뻔히 보이는걸 새삼스럽네.

퀴즈를 맞히지 못한 벌칙으로 마스터베이션을 시키는 누나 이사벨, 시킨다고 따라 하는 동생 테오, 그걸 지켜보며 놀라는 매튜, 그리고 순간 넋이 나가버린 나. 야하다 못해 괴기할 지경이었다. 예전에는 이런 거 잘 봤었던 것 같은데 왜 그런지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비위에 안 맞다.


나는 예술과 포르노의 차이를 모르겠다. 프랑스인이 만들면 예술이고 한국인이 만들면 외설일까? 시대적 배경만 다를 뿐이지 본질은 같아 보인다 마는. 단순히 성적 흥분을 유도하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하는 게 포르노라면, 성행위를 통해 예술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창작은 에로티시즘이라고 정의 내린다고들 하는데 글쎄. 성행위가 그냥 성행위일 뿐이지 거기에 대고 무슨 수준을 논해. 애초에 성행위가 나쁜 건 아니지만, 거기에 폭력과 범죄가 쉽게 따르니까 문제가 되는 거겠지.


그들이 나누는 대화와 눈빛과 수시로 보여주는 고전영화의 장면과 그것을 따라 하는 쌍둥이 남매의 연기 등 대체로 다 좋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그들의 성기, 나체, 섹스 장면들이 부담스러웠다. 뭘 전하려고 하는지 알 것 같다가도 굳이 이렇게까지 연출해야 했나 싶고, 덕분에 영화를 좋아하는 젊은 청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건지, 쌍둥이 자매의 사랑 (혹은 미성숙한 애착관계과 분리불안 따위) 을 이야기하고 싶은 건지, 68혁명을 이야기하고 싶은 건지, 어디에도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부모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다고 해서 저렇게까지 탈선을 하나 싶다.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모습이 흡사 어린아이 같았다. 대학생이니까 대략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쯤 됐겠다. 갑자기 어른의 세계에 등 떠밀린, 몸만 커버린 어른아이의 모습을 이 영화가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상실의 시대 프랑스판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적어놓고 보니 진짜 딱 들어맞다.


상실의 시대 - 몽상가들

주인공 와타나베 - 미국인 유학생 매튜

와타나베 친구 기즈키 - 프랑스인 쌍둥이 남매 중 동생 테오

기즈키 애인 나오코 - 누나 이사벨


그리고 알고 보니까 이 영화감독, 마지막 황제 감독이었다. 근데 소문이 좋지 않은 것 같다. 욕조씬에서 매튜가 테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영화를 볼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다 보고 나서 돌이켜보니 이게 꼭 감독이 스스로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영화감독은 관음증 환자다.

영화는 범죄요 감독은 죄인이다.


이사벨은 스스로를 순수하다고 말했다. 순수해서 텔레비전도 안 본단다. 예전부터 자기 자신을 착하다 순수하다고 직접 말하는 사람들을 몇 차례 겪으면서 진짜 착하고 순수한 사람들이 정말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할까? 하고 의심하곤 했다. 백종원이 장사를 하고 방송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착한 척 연기를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생각나네. 척을 하든 진짜든 어쨌든 결과는 같을 테니까. 마지막으로 영화 속 인상적인 대사 하나를 적으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세상을 바꾸기 전에 나도 세상의 일부라는 걸 알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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