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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cle K Aug 19. 2019

매일 갑니다, 편의점-봉달호

어쩌다 편의점 인간이 된 남자의 생활 밀착 에세이

 원래 꼬여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요새 적은 서평을 보니 굉장히 부정적인 느낌뿐인 게 이상하다. 심지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원을 받은 책의 서평마저도 썩 좋지 않게 적은 것을 보면 할 말 다했다.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던 찰나에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이로써 내가 꼬인 사람이 아니라는 점은 확인됐다.

 책의 제목도 작가의 이름도 흥미 있다.(여러 가지로 추측해 보건대, 작가의 본명이 맞는 것 같다.) 편의점을 매일 간다면 편의점 주인일까, 아니면 편의점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일까 궁금해진다. 결론적으로는 편의점을 정말 좋아하는 편의점 주인이 쓴 글이다. 이제는 우리 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편의점이다. 심지어 동네마다 너무 많이 있어서 이 편의점들이 다 장사가 될까 걱정스럽기도 하다.(맞다.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다) 늘 손님 입장으로 들렀던 편의점을 주인의 시각에서 보면 어떨지 궁금함에 책을 펼친다.


작가 봉달호, 편의점 점주 봉달호

 저자는 6년 차 편의점 주인이다. 대학생 때는 학생 운동도 했고, 중국에서 사업을 하다가 망해 보기도 했으며, 개인 브랜드 편의점을 운영하다가 프랜차이즈 편의점으로 변경하여 운영을 하고 있다. 일을 하는 틈틈이 쓴 글을 엮어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출간했다.

 어느 책을 보던지 작가의 과거나 경력을 보는 것은 상당히 흥미롭다. 책 속에는 분명히 작가의 생각이 반영되는데, 작가의 생각은 곧 작가가 살아온 날들이 투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 흥미 있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작가는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도 했고, 해외에서 밑바닥 생활도 했으며, 지금은 성실히 자기 일을 하고 있다. 특히 높게 평가하고 싶은 부분은 전업 작가가 아니므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편의점 일을 하며 글을 썼다는 점이다. 주인이니까 가능한 것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대한민국 560만 자영업 사장님들의 글을 읽어야 할 것이다.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하루에 글을 30분 이상을 꾸준하게 쓰는 것은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부분만 보더라도 이 책을 대단하다 여기고 싶다.

 하지만, 결국 작가들의 이력에 관심이 많은 건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함이리라.


겨울

 편의점의 겨울은 춥다. 매출이 가장 저조한 계절이다. 서늘한 매장에서 하릴없이 손님을 기다리며 앉아 있는 마음은 시리고 외롭다. 창밖에는 소복이 눈이 쌓이고, 달뜬 연인들의 웃음소리에 미소 지으며 마음으로 봄을 기다린다. 

 연관 지어 진열하는 버릇은 점점 '병'의 수준이 된다. 다른 편의점에 갔는데 내가 생각하는 규칙과 다른 방식으로 제품이 진열돼 있으면 막 옮기고 싶어 진다. 지하철에 탄다. 맞은편에 사람들이 일렬로 앉아 있다. 뒤죽박죽 앉아 있는 모습이 꽤나 눈에 거슬린다. 종류별(?)로 구별해서 다시 진열(?)하고 싶어 진다. 이게 다 직업병이다.



 편의점은 분홍으로 봄을 맞는다. 겨우내 지저분했던 간판의 먼지를 털어내고, 흐릿한 매장 유리창도 입김을 불어가며 흥겨이 닦는다. 낮 최고기온이 차츰 올라가며 편의점 매출은 슬슬 올라간다. 마음도 두둥실 올라간다.

 장사를 하다 보니 손님을 상대로 연기력이 갈수록 늘어난다. 내가 터득한 연기력의 대부분은 '공감의 표정을 짓는' 기술이다. "그러게요." 이 말은 참으로 신비한 마법의 말이다.

 그러게요. 포장이 약간 허술하네요.

 그러게요. 용량이 좀 작네요.

 그러게요. 월급 빼곤 다 오르네요.

 그러게요....


여름

 얼음컵을 채워 넣기 바빠진다. 쏴아. 소나기가 한바탕 내려주길 기도하며 비닐우산은 박스째 준비해놓는다. 이 계절이 정녕 끝나지 않았으면...

 친구가 편의점'이나' 차려볼까 한다고, 좀 가르쳐달라고 졸라댔다. 나도 자의가 아니라 어쩌다 편의점을 시작하게 됐지만 어쨌든 지금은 자랑스러운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일에 대해 친구가 '편의점이나'라고 표현하는 게 사실 좀 기분 나빴다. 오늘 하루만 해도 수백 개의 편의점이 생겨나고, 또 수백 개의 편의점이 사라질 것이다. 지나친 자신감은 나와 가족을 병들게 한다.


가을

 손님으로 북적이던 편의점은 시나브로 고자누룩해진다. 사색하기 좋은 계절이다. 나는 누구인가, 왜 여기에 있는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 장사를 계속할까 말까, 세상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가을은 가을이다.

 최저임금을 크게 올리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분명 선의일 것이다. 그러나 '자본가'이자 '사용자'가 되고부터 나의 입장과 견해도 달라짐을 느낀다.

 '서 있는 곳이 다르면 바라보는 풍경도 다르다.'

 내가 변한 것인지 세상이 변한 것인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그냥 책을 읽는 게 좋았다. 용돈이 생기면 무조건 동네 서점으로 조르륵 달려갔던 일이 기억난다. 어린 나이에 꽤나 먼 거리였지만, 인근 동네를 통틀어 그 서점에 책이 가장 많았기에 수고로움을 당연스럽게 생각했다. 책을 많이 읽고 약간의 수집병이 돋다 보니 국어 성적은 나름 좋았다. 고등학교에 들어가 수능을 준비하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 책을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버킷 리스트에도 올렸다. 하지만, 읽는 것과 쓰는 것은 굉장히 달랐고, 이 세상에는 글 잘 쓰는 사람이 널려 있었다.

 그렇다. 바로 내 이야기이다. 그동안 회사 생활을 하며 바쁘다는 핑계로 정말 하고 싶던, 심지어 죽기 전에 해보고 싶던 일을 손에서 놓고 있었다. 그렇기에 저자가 노력이 크게 다가온다. 나도 할 수 있겠지?

 죽기 전에는....


"내게 글을 쓰는 행위는 오늘의 현실 밖으로 뛰쳐나가 꿈을 좇는 여행이기도 했고, 반대로 '이것은 꿈인가'하면서 살을 꼬집어 현실을 확인하는 각성의 기록이기도 했다.(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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