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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cle K Jan 31. 2020

#5. 설 연휴 기차역 풍경

설 연휴 대수송 기간

 철도업계에서 사용하는 단어 중 '대수송 기간'이라는 말이 있다. 음력설과 추석 이렇게 두 번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처음 왔을 때 굉장히 어색했지만, 지금은 나름 익숙해진걸 보니 나도 철도 물이 많이 들었음을 느낀다.


 대수송 기간인 명절 연휴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기간이 있다. 바로 대수송 기간 열차표를 예매하는 날이다. 일반적으로 대수송 기간 2주 전에 경부선과 호남선으로 날짜를 나눠서 예매를 한다. 21세기를 앞에 두고 굉장히 많은 것이 인터넷과 자동화되고 있는 오늘날이지만, 아직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익숙하지 않은 고객분들은 고향에 가기 위한 애절한 마음을 가지고 예매 하루 전날부터 기차역에서 꼬박 밤을 새운다. 철도회사별로 다르긴 하지만, 대수송 기간에는 열차 편수도 늘리고, 입석 좌석도 판매를 한다. 12시간을 기다리며 밤을 새워 좌석에 앉아서 갈지, 다음날 남은 입석표를 여유 있게 사서 2시간 30분 정도 입석으로 갈지는 고객의 선택사항이긴 하지만, 매년 긴 줄에 서 있는 고객분들을 볼 때마다 애틋한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이 어쩔 수 없이 공존한다.

[스위스 체르마트행 열차표]

 고객들은 미리 써 놓은 날짜와 행선지 종이를 직원에게 넘기고, 최대한 빨리 예약이 확정되기를 바란다. 그러다 보니, 예매일 매표창구에는 역에서 가장 매표를 잘하고 손이 빠른 직원들이 배치된다. 이번 대수송 기간에 내가 맡았던 업무는 결제 및 확인이었다.(당연하다. 난 이제 고작 2개월 된 역무원이니까) 고객이 전달해 준 행선지 종이를 매표 직원이 예약을 하면 고객에게 결제 수단을 받아 재빠르게 결제한다. 그리고, 티켓이 나오면 고객과 함께 눈으로 확실하게 재확인을 한다.

 기다리는 고객 한 분이라도 더 편안하게 고향으로 갈 수 있도록 우리 나름의 노력을 하지만, 모두가 민감한 날이다 보니 크고 작은 소란은 꼭 한 번씩 일어난다. 올해는 잔돈을 건네줬다는 직원과 건네받지 못했다는 고객과의 실랑이가 생겼다. 다음 고객을 위해 나중에 확인을 하기로 하고 고객을 돌려보냈지만, 쉽게 자리를 떠나시지 않는다. 큰소리가 나지만,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기에 제대로 돌아보지도 못한다. 이 정도 소란으로 끝난 것에 모두들 안심한다.


 정작 대수송 기간은 조용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동을 하지만 정작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많이 줄어든 기분이 든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는 늘 우리를 긴장하게 만든다. 다행히도 이번 대수송 기간은 큰 사고나 지연 없이 조용히 끝이 났으니 정말 다행이다.

[독일 뉘른베르크 철도 박물관]

 역무원으로써는 힘들고 피곤한 시간이었지만, 역에서 만나거나 헤어지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아쉽게 사촌과 헤어지는 아이가 계단을 오르다가 뒤를 돌아보며 크게 소리 지른다.

 "우리 빨리 다시 만나자! 그때 또 재미있게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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