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 101 시즌 2>를 겸연쩍게 거부하며
올 것이 왔다. 오지 않길 바랐는데. 네, 101명의 아이들입니다. 국민 프로듀서라는 거창한 타이틀의 시청자들을 향해 살인미소를 날리고 기똥차게 엉덩이를 흔들며 눈물까지 쏟아낼 꿈 많은 연습생들에 다시 한 번 열광할 시간이지요.
먼저 고백한다. 나는 <프로듀스 101>을 혐오한다. 프로그램의 기획의도가 가증스럽고 구현 방식이 저열하며 그것들이 겨냥하는 욕망의 풍경은 더없이 야만스러우니까. 우리는 아이돌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채 셀 수도 없이 많은 그룹들이 대중 앞에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우리는 그들의 ‘빠’로서, ‘까’로서, 혹은 철저한 무관심으로서 반응한다. 이러한 흐름을 아예 대놓고 집대성해 펼쳐 놓은 게 <프로듀스 101>이다.
여기엔 선택이 있다. 국민 프로듀서로 호명된 시청자들은 마음에 드는 연습생을 댓글이나 투표 등을 이용해 직접 선택하고 응원한다. 선택 받은 자만이 데뷔한다. 그토록 원하던 아이돌이 되는 것. 그래서 선택 받으려면? 경쟁이지, 뭐.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필사적 경쟁이 브라운관을 채운다. 노래와 춤 실력, 스타성 등에 따라 등급이 나뉘고, 등급과 공연 득표수에 의해 ‘나’와 ‘너’는 승자와 패자, 상위권과 하위권으로 구분된다. 이에 위대하신 국민 프로듀서님들의 참여가 더해지니, 전체 개별 순위가 매겨져 1등부터 101등까지 차례로 줄이 세워진다. 피라미드의 꼭대기부터 저 밑바닥까지 현재의 위치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뛰는 수밖에. 서로를 향한 동경과 질투, 우월감과 열등감 사이에서 연습생들은 각자의 등급을 지키기나 탈피하려 미친듯이 노오력한다. 노오력만이 무언가를 지키거나 바꿀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에서다. 그리하여 이 모든 장면들을 수놓는 건 꿈과 열정, 희망, 도전 같은 단어들과 티없이 맑은 눈물들. 우스꽝스러워서 처연하고, 참으로 자연스러워서 섬뜩하다. 교복을 입은 채 나를 골라 달라며 방방 뛰는 소년/소녀들의 웃음을 마주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까닭이다.
그러나 다시 고백한다. 나는 군대에서 시즌1을 거의 다 챙겨봤다. 101명의 소녀들 중에는 나름대로 응원하는 친구도, 별로라고 생각하는 친구도 있었다. 욕하면서 꾸역꾸역 봤다. 낄낄대고 평가하고 예측하며 다음회를 기다리기까지 했다. 그놈의 지긋지긋한 자극성을 외면하지 못했던 거지. 나 역시 야만과 저열의 욕망 한가운데 있었다. 어쩌면 나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소비 자본주의가 원하는 가장 확실한 타겟층일지도 모르겠다.
<프로듀스 101 시즌2>. 이번엔 소년들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시즌1은 결국 높은 인기 속에 종영되었고, 프로그램을 통해 꾸려진 걸그룹 ‘I.O.I’는 100억원을 웃도는 수입을 올리며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득의양양하게 돌아온 이유다. 그게 나는 싫다. 어찌 됐든 성공과 인기를 거뒀으니 됐다는 심보로 보여서. 그 기저에 깔린 이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너무나 잔인하고 무서워서. 이번에는 정말로 보지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