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전 회장 박용만 사진전《HUMAN MOMENT》
사진 보는 게 즐거운 이유는 많다. 그중 하나는 카메라 뒤에 선 사람의 표정이 그려져서다.
내가 보는 것은 피사체인데 어느새 피사체를 응시하는 사진가의 존재가 느껴질 때가 있다. 뷰파인더 너머의 그는 때로는 활짝 웃고 때로는 가까스로 눈물을 삼킨다. 대상에 압도되거나 풍경에 동화되어, 덩달아 입을 다물기도 한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만들어지는 작고 네모난 장면을 구성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나는 거기서 사진가의 떨림을 발견할 때 즐겁다. 사진이 그가 숨기지 못한 표정의 다른 이름이 될 때.
박용만 前 두산그룹 회장의 사진전을 보고 왔다. 50여 년에 걸쳐 찍은 사진을 처음 공개하는 자리다. “관객 앞에서 발가벗고 서 있는 사진가가 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꺼내 놓은 사진들. 세계 각지에서 마주친 80여 개의 장면이 역사적 이벤트와 일상적 기억, 광활한 대지와 소담한 골목을 아우르며 펼쳐진다. 《HUMAN MOMENT》라는 제목처럼 거기에는 언제나 사람의 자취가 깃들어 있다. 인간의 흔적을 따라가는 사진가의 표정을 상상할 때면 부드럽게 휘어진 입꼬리가 떠올랐다. 감탄과 호기심과 연민과 애틋함을 품은 옅은 미소가. 덩달아 사진 속 인물들을 사랑스럽게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해서 기뻤다.
섹션 구성도 흥미로웠다.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와 상황을 빨간색 모티프로 엮어낸 1층 ’TRACE’, 2층 ‘GAZE’ 초입에 배치된 뒷모습 모음, 들판의 소 두 마리와 나란히 배치한 요트 위 청년들 사진, 흐려지고 가려지는 효과를 통해 일상의 장면을 추상화한 3층 ‘NEARNESS’ 섹션의 작품 등등. 전시 기획은 팬심을 갖고 팔로우 중인 사진가 양경준과 홍태식의 컬렉티브 eyes eat everyday가 맡았다. 무료 전시인 만큼 가볍게 한 번 관람하는 것 추천!
박용만 사진전 《HUMAN MOMENT》
2026.1.16–2.15
피크닉 ㅣ 서울시 중구 퇴계로6가길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