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essa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현 May 09. 2019

나는 나를 '아카이빙' 합니다



취향. 아카이브. 큐레이션.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단어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다소 거창하고 막막해 보이는 이 영역들을 어떻게 하면 내 일상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말하자면, 내 취향을 보다 알차게 아카이빙하는 과정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다들 나와 함께 ‘습관성 셀프 큐레이터’가 되어보자고 제안하는 거다. 



/



나를 위한 큐레이션


좋아하는 것이 많다. 조금 많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아서 그 안의 카테고리도 다양하다. 많다는 건 산만할 확률이 높다는 뜻도 된다. 뒤도 안 돌아보고 이것저것 향유하는 데만 정신을 쏟아 본 적이 있는지? 이제 당신이 마주하게 되는 건 내가 뭘 어떻게 좋아하는지 1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카오스의 상태다. 보고 듣고 느끼는 건 많은데 돌아보면 남는 게 없다. 


붙잡아 두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다. 온전히 내 것으로 체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기록과 정리가 수반돼야 한다. 하나 다행인 건, 나는 나의 취향을 알차게 아카이빙하고 싶어하는 욕구와 그것들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의지가 상당한 사람이라는 것. 단순히 저장하는 걸 넘어서 다양한 기준과 테마를 설정하고 이에 맞게 분류하는 게 사실 정말 재미있다. 



목록과 폴더로 만드는 나만의 컬렉션


다들 가슴 속에 플레이리스트 하나쯤은 갖고 있잖아요.


음악 플레이리스트가 대표적이다. 나는 주로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듣는다. 공식 음원 뿐 아니라 각종 라이브 영상과 비공식 음원까지 폭넓게 찾아 들을 수 있는 이점이 있으니까. 좋아하는 음악을 다시 들을 때든, 디깅(digging)할 때든 가장 먼저 유튜브에 들어간다. 이때 빛을 발하는 게 ‘재생목록’이다. 보석 같은 곡을 발견할 때마다 서둘러 저장 버튼을 누르고 특정 재생목록에 추가한다. 어울리는 게 없으면 새로운 재생목록을 만든다. 이 간단한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한다. 그렇게 내 라이브러리엔 63개의 재생목록이 쌓였다. 


여름바다로 놀러갔을 땐 [summer ocean] 목록을, 홀로 밤 산책을 나갈 때는 [night walking] 목록을 틀면 된다. 어떤 상황이든 어떤 분위기든, 거기에 맞는 음악이 항상 준비돼 있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플레이리스트를 넉넉히 갖고 있는 것만큼 든든한 일이 또 있을까?




이왕 보는 거 좋아요만 누르고 끝내지 말자. 열심히 모아 놓은 컬렉션을 볼 때마다 얼마나 뿌듯한지.


하루에도 몇 번이고 들락날락하는 인스타그램은 또 어떤가. 뭔 놈의 이렇게 맛있고 멋있고 독특한 것들로 가득한지, 이 화려한 세계는 생각 없이 스크롤만 넘기기엔 아까운 것들로 넘쳐난다. 그래서 마련된 기능이 ‘컬렉션’이다. 마음에 드는 게시물을 만났을 때 사진 우측 하단에 있는 책갈피 모양의 버튼을 클릭해보자. 개인 계정에 저장하여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는데, 이를 폴더별로 정리해두면 훨씬 효율적이다. 나 역시 인스타그램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진과 이야기를 만날 때마다 미리 만들어 둔 컬렉션 폴더에 추가한다. 현재 총 10개의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으며 게시물을 일일이 캡처해 둘 필요 없이 보관할 수 있어 요긴하게 사용 중이다. (인스타그램 중독인 나를 합리화하는 가장 좋은 명분이 되어주는 건 비밀.)



사진 공유 플랫폼 Unsplash에 올라오는 사진들은 상업적 용도의 이용이 자유로워 자주 찾는다.


보다 전문적인 레퍼런스들을 수집하고 싶다면 Pinterest의 ‘보드’나 Unsplash의 ‘컬렉션’ 기능을 추천한다. 전 세계 수많은 크리에이티브 작업자들이 즐겨 찾는 Pinterest에는 양질의 이미지 자료들이 넘쳐난다. 특히 포스터나 포트폴리오 등의 디자인 레퍼런스들을 보드를 만들어 관리하면 무척 편리하다. 원하는 이미지에 ‘핀’을 꽂아 ‘보드’에 저장하는 방식인데, 이 보드 내에 소챕터 개념의 ‘섹션’까지 만들 수 있어 직관적인 폴더링이 가능하다. 


Unsplash 또한 간단한 형태의 컬렉션 기능을 제공한다. 대개 사진의 경우, 따로 저장해 놓지 않으면 이후에 그 사진을 다시 찾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때그때 폴더별로 정리해 컬렉션을 한 번 만들어 놓으면 매번 키워드로 이미지를 검색해야 하는 수고를 줄일 수 있다.



습관에서 아카이브로 


아카이빙과 큐레이션의 시대라고들 한다. 우리도 얼마든지 이 시대를 만끽할 수 있다. 굳이 갤러리나 서점 혹은 박물관에 가야만 하는 건 아니다. 내 취향과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발견하고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물론 그때의 큐레이터는 나 자신이다. 나를 제일 잘 아는 건 나일 테니, 전문성에 대한 의심 같은 건 거둬도 좋다. 취향 아카이브만 탄탄하게 준비해 놓자. 전혀 어렵지 않다. 목록과 폴더를 활용해 가장 쉽고 편한 것부터 시작하는 거다. 좋아하는 것들을 다루니 금방 흥미가 붙을 것이다. 익숙해지면 습관이 되겠지. 그게 하나 둘 쌓이면 아카이브가 구축되고, 얼마든지 활용 가능한 나만의 컬렉션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그럴듯한 콘텐츠 플랫폼이나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에서 사용되지 않으면 어떤가. 그저 나는 나의 내밀한 취향을 큐레이팅하는 셈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말이다. 




                                                                                                                     * The ICONtv에 실린 기사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계란 프라이 견습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