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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May 13. 2019

그게 나의 욕망이라면




[essay]

그게 나의 욕망이라면



먼저 짚고 넘어가자. 나는 게으르다. 많이 게으르다. 살면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일이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신나서 내일, 모레, 큰 문제 없어 보이면 주말까지 내버려 두는 속 편한 인간이다. (이 글이 가장 생생한 증거다.) 사실 “속 편한”이라는 수식어는 틀렸다. 내내 불편해하니까. 귀찮아서 미루거나 포기하긴 하는데 또 그걸로 은근히 스트레스 받는다. 말하자면 나는 게으름과 귀찮음으로 점철된 스스로의 행위를 잘 감당해내지 못하는 편이다.



때문에 더더욱 여유롭고 느긋한 삶을 동경한다. 정확히는 그러한 태도와 실천을 선망한다고 할 수 있겠지. 모두가 앞만 보고 달려갈 때 대열에서 이탈해 옆과 뒤를 돌아보며 걸어갈 수 있는 삶. 정해진 규격과 규칙만 따라가기 보다 나의 리듬을 발견하려 애쓰는 삶. 자꾸 뛰라고 다그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경쾌하게 날리는 가운뎃손가락, 나도 한 번 들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Yes라고 말할 때 홀로 No라고 외치는 것까지는 못하겠다. 다만 “쟤는 항상 뭔가 다르네” 소리 정도는 들을 수 있었으면.



가끔 헷갈릴 때도 있다. 내가 정말로 추구하는 게 어떤 것인지 말이다. 자기만의 속도를 지키며 여유로이 살아가길 바라는 것과, 세상사에 초연한 자유로운 보헤미안 이미지를 가져오고 싶은 건 엄연히 다른 거니까. 느긋하고 게으른 삶의 방식을 단지 멋있고 쿨한 이미지의 포장지로 이용하려는 건 아닌지 질문해볼 때다. ‘삶의 태도’와 ‘이미지’ 사이에서, 나는 어느 쪽을 바라보고 있는가.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내가 원하는 방향에 맞춰 살아가는 게 무엇보다 우선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스탠다드’의 삶 또한 솔직하게 대면해야 하는 이유다. 그들의 삶에 대해 품고 있는 최소한의 인정과 존중. 그조차도 나의 정직한 욕망이니, 애써 외면할 거 없다. 고백하자면 이 땅의 모든 근면성실한 이들이 나는 경이롭다. 열에 아홉은 Yes를 외치고, 표준적인 대열 속에서 앞만 보며 착실하게 달려나가는 이들이 부러울 때도 많다. 뚜렷한 비전과 목표를 향해 한 발 한 발 성실히 살아가는 게 웬만큼 쉬운 일인가. 누구는 하고 싶어도 못하는 걸 이토록 묵묵히 해 나가는 모습은 이따금 예기치 못한 자극이 된다. 가고자 하는 방향은 좀 다르다지만 뭐, 이쪽이든 저쪽이든 아무렴 어때. 그냥 전부 다 ‘내가 원하는 것’일 뿐이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당신은 그래서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하는지 확신할 수 있는가? 난 모르겠다. 지금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인 건 맞는데,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유유자적 마이웨이를 꿈꾸고 있는지, 알고 보니 마음 저 깊은 곳에서는 근면성실 바른 사나이를 상상하고 있었는지 스스로도 명확히 나누기 어렵다. 모르고 어려운 건 앞으로도 마찬가지겠지. 그러니까 필요한 건 내 욕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마주하는 일일 것이다. 어떤 길로 가든 결국 나의 정직한 욕망을 따라갔으니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게으르고 부지런하고, 그게 꼭 그렇게 중요한 건가 싶기도 하고.      




                                                                               * 하이드어웨이 매거진 Vol.1 The Lazy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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