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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May 09. 2019

어쩌면 가장 편안한 스타일, 아이비룩 IVY LOOK




[fashion]

어쩌면 가장 편안한 스타일, 아이비룩 IVY LOOK 



클래식이라고 부담 가질 필요 있을까. 
편견은 넣어두자. 아이비룩에 부자연스러움이나 억지 따위는 없다.





아이비 리그(Ivy League)라고 들어 봤을 거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 미국 동부에 있는 명문 대학 8곳을 칭하는 말인데, 여기 대학생들이 즐겨 입은 패션 스타일을 총칭해 아이비룩(Ivy Look)이라고 한다. 아이비룩은 그 자체로 전통이다. 1950년대를 대표하는 패션 트렌드로서 이후 다양한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며 클래식한 미국식 캐주얼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지금도 수많은 패션 디자이너들이 제각기 다른 시각으로 재해석하려 노력 중이며 세계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취향에 따라 어느 정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적어도 워스트 패션으로 꼽히는 유형은 아니다. 말하자면 전 세계 남녀노소로부터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같은 폭넓은 관심과 애정에도 불구하고, 아이비룩에 대한 얼마 간의 오해가 존재함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 나부터가 그랬으니까. 내게 아이비룩이란 명문대에 다니는 상류층 엘리트들의 고급스러운 젠틀맨 스타일 그 자체였다. 거기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아이비리그에 재학 중인 아이비리거 그리고 그들의 옷차림에 관해서는 일종의 선입견이 작용하는 게 사실이다. 클래식한 고급 브랜드 로고와 보풀 하나 찾기 힘든 깔끔함, 칼 같은 주름과 밑단 길이를 자랑하는 그야말로 정갈하면서도 세련된 모습. 



그런데 정말 그게 다일까? 아이비리거들은 언제 어디서나 격식을 차리며 풀 세팅의 상태로 다니는 걸까?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알게 될 거다. 그들 또한 이토록 자연스럽고 편안한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었다는 걸. 전혀 다르지 않다. 누구나 그렇듯, 아이비리거도 게으르고 느긋한 면이 있는 법이다. 





1960년대 초 아이비리그 학생들의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담아낸 포토 에세이 <Take IVY>(데루요시 하야시다 외, 1965)를 들춰 보자. 아이비룩에 대한 피상적인 이미지를 떨쳐내는 데 이만한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포토그래퍼 데루요시 하야시다를 비롯한 당시 일본 패션계의 저명한 4인은 아이비리그룩의 정체성을 ‘품위와 실용성의 균형’으로 포착한다. 그 가운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편안한 스타일의 추구’다. 물론 아이비리거들은 기본적으로 단정해 보이고 싶어 한다. 단순히 너저분하고 때와 장소를 구별하지 못하는 차림은 젠틀맨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다만 딱딱하거나 지루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 “기본은 지키면서 자유롭게”. 이것이야말로 <Take IVY>가 도출해낸 아이비리거들이 옷을 대하는 핵심적인 태도다. 상식선만 지켜지면 옷에 다소 무심해 보일 정도로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에 맞게 입는다는 것인데,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의식하기 보다 내가 편하고 자연스럽게 입을 수 있는가를 훨씬 더 비중 있게 고려하는 여유롭고 합리적인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이를테면 긴팔 스웨트셔츠의 소매를 잘라 반팔로 입는다든지 두꺼운 화이트 진의 밑단을 잘라 반바지로 활용하는 식이다. 맨발에 구두를 신거나, 셔츠를 바지 안에 넣지 않고 밖으로 꺼내 입는 것도 흔하게 눈에 띈다. 심지어 예배를 드리는 일요일에도 필수적으로 넥타이는 매지만, 버뮤다 쇼츠에 면 재킷을 매치하거나 청바지와 트위드 재킷을 착용하는 등 자신만의 방법으로 다양하게 연출한다. 



어떤가. 그들이 깐깐한 부잣집 아우라 가득한 명품 샌님룩만 추구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모습들이다. 오히려 지나치게 쿨하다 싶을 정도로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지점도 많지 않은가. 요컨대 아이비리거들도 충분히 게으르고 충분히 여유롭다. 아이비룩을 일컬어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스타일’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편안함과 자연스러움 속에서도 자신만의 개성을 발휘한 여유.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한 클래식의 반열에 아이비룩을 올린 일등공신 아닐까. 





Take IVY 테이크 아이비 (윌북, 2011)

▶ 아이비리그 문화에 매료된 일본 패션계의 저명한 4인 ‘데루요시 하야시다’, ‘쇼스케 이시즈’, ‘도시유키 구로스’, ‘하지메 하세가와’가 1960년대 초 미국 동부 8개 명문 대학의 캠퍼스 라이프를 담아낸 포토 에세이. 1965년 일본에서 초판이 발행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아이비룩을 다룬 책들 중 클래식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내 번역판의 경우 <윌북>을 통해 2011년에 출간됐다. 



▶ 아이비리거라고 해서 반짝반짝 광나는 구두에 톤 다운된 아가일 무늬 양말만 신는 건 아니다. 그저 편하고 자유롭게, 맨발에 구두를 신어도 충분히 멋낼 수 있는 법이다. 



▶ 긴 바지의 밑단을 잘라 반바지로 만들어 입은 아이비리그 학생의 모습. <Take IVY>에 따르면 왜 굳이 긴팔 옷을 잘랐냐는 저자의 질문에 “여름인데 그냥 입으면 덥잖아요. 그냥 두긴 아깝고요."라는 식의 쿨내 풍기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진정한 우문현답 되시겠다. 



▶ 바지 밖으로 셔츠를 빼 입는 것만큼 편안하면서도 깔끔한 분위기를 줄 수 있는 스타일이 또 있을까. 물론 아이비리거들이 일일이 그런 의도를 갖고 입었을 것 같지는 않다. 단지 귀찮고 불편해서 빼 입었을 확률이 더 크다. 





                                                                             * 하이드어웨이 매거진 Vol.1 The Lazy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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