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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Aug 16. 2019

수다 예능 좋아하세요?



TV 속은 시끄럽다. 그렇게들 떠들어대기 때문이다. 입담 좀 좋다 하는 이들이 모여 앉아 다양한 주제들로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는 장면은 채널을 돌리다 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스튜디오에서, 야외에서, 심지어는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며 수다를 떠는 화면 속의 사람들. 근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고백하자면 토크 예능 프로그램을 무척 좋아한다. 현실에서도 말하는 거나 듣는 거나 다 즐기는 편인데, 그 성격 어디 안 가나 보다. 그리고 남들과 소통하기를 좋아한다면 누구나 이 '수다 예능'을 애정할 것이다.




대화와 이야기가 주인공인 시간


수다 예능의 가장 큰 매력은 ‘이야기’ 자체가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다른 유형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진들이 나누는 대화와 그 속의 다양한 이야기들은 부수적 요소다. 저마다 일상과 고민, 진지한 생각이나 의견을 드러내기보다는 게임이나 미션 등 해당 프로그램의 메인 컨셉에 맞는 이벤트를 보조하며 중간중간 흐름을 이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수다 예능은 사람의 이야기가 곧 메인 캐릭터다. 중요한 건 대화에 참여하는 이들이 가진 다채로운 결들의 이야기가 최대한 잘 전달되는 것. 그러니까 말하고 듣는 단순한 행위가 프로그램의 ‘엑기스’이기에 모두가 수다 자체에 온전히 집중한다. 화려하고 역동적인 장면이 주는 쾌감보다 대화가 주는 편안함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최적의 환경인 셈이다. 게다가 예능 프로그램의 성격상 너무 어렵고 심각하게만 보여주지 않으니 때로는 편안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시청할 수도 있다.


대화를 '듣는 것'의 즐거움 또한 수다 예능을 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평소에 우리는 수다를 들을 일이 거의 없다. 직접 참여하니까. 내 이야기도 늘어놓다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들으면서 말 그대로 대화를 나누지 않나. 반면에 방송은 일방적이다. 수다 예능 프로그램을 본다고 해서 화면 속의 사람들과 내가 대화를 나누는 건 아니다. 그저 한 발짝 떨어져 그들끼리 주고받는 이야기에 귀 기울일 뿐. 말하자면 수다 예능은 누군가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KBS2 <대화의 희열 2> 공식 이미지


최근 들어 대화를 듣는 즐거움을 가장 극대화한 프로그램은 KBS2 <대화의 희열>이다. <대화의 희열>은 한 회당 한 명의 명사가 게스트로 출연해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심층 토크 예능이다. 인터뷰와 토크쇼의 결합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게스트를 게스트가 아닌 ‘주제’라고 표현하는 것에서부터 그 방향성이 여실히 느껴진다. 네 명의 패널과 게스트가 함께 주고받는 대화 속에 그 사람이라서 나올 수밖에 없는 내밀한 경험과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터져 나온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전형적인 이미지에 가려져 있던 인물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다. 들려주는 이야기를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나와는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는구나’ 싶으면서도 ‘저 사람 역시 비슷비슷한 생각과 경험을 겪으며 살아가는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고 저울질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뼈저리게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대화와 이야기가 가진 힘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JTBC <방구석1열> 공식 이미지


한편, 인물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는 특정 주제나 예술 작품을 소재로 수다를 떠는 프로그램도 있다. JTBC <방구석1열>이 대표적이다. <방구석1열>은 영화와 인문학의 만남을 표방하며 영화에 담긴 인문학적 지식과 의미를 전달한다. 매회 2편의 영화를 묶어 소개하고, 이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해당 주제에 관한 출연진들 각자의 깊이 있는 시각을 엿볼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통해 저널리즘을 둘러싼 치열한 질문들을 던지고, <미라클 벨리에>와 <원더>를 놓고서는 가족의 성장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을 주고받는 식이다.


 

MBC <라디오스타> 공식 이미지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위에서 말한 프로그램들같이 진지하고 깊이 있는 수다 예능만 유의미한 건 아니다. <라디오스타>처럼 말 그대로 ‘수다’의 이미지에 훨씬 더 부합하는 프로그램도 충분히 좋다. 출연진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서로의 근황과 여러 이슈를 가벼운 톤으로 나누는 토크 버라이어티는 별생각 없이 깔깔대기에 제격이니까. 무수한 농담과 웃음, 그 사이로 아주 가끔 빛을 발하는 누군가의 메시지는 일상이 지루하고 고달파 TV 앞에 앉은 이에게 활력을 불어넣는다.



작은 화면 속 새로운 경험의 기회


물론, 피곤할 때도 있다. 현실에서도 엄청난 말의 더미 속에서 살아가는데, 왜 현실과 분리된 TV 화면 속에서조차 일상에서 멀지 않은 이야기들에 둘러싸여야 할까. 이따금 허황한 비현실적 이미지와 상황에 모든 생각과 감각을 빼앗기고 싶은 순간도 찾아오는 법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수다 예능을 포기할 수 없는 건, 언제나 그곳엔 가깝고도 먼 사람들과 그들의 익숙하지만 낯선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화면은 작지만, 그 안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는 늘 새롭고 거대하다. 그리고 그 힘이 시야를 끊임없이 확장한다. 수다 예능을 보며 더 많은 사람과 더 넓은 세계를 마주할 경험의 기회를 얻는 이유다.


보지 않을 이유가 1도 없지 않은가. 이렇게 가성비 좋은 콘텐츠가 또 어디 있다고. 내 삶에 대한 고민과 타인을 향한 호기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지겨울 만큼 떠들어대는 걸 좋아하는 성격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는 또 별도리 없이 새로운 수다 예능을 찾아 TV 속에서 헤매고 있을 것이다.




                                                                                                                      * The ICONtv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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