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essa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현 Aug 12. 2020

조금은 특별한 재능

이 사람이 여기 있다!




나에게도 재능이 있다. 


사람 얼굴과 이름을 웬만해서는 안 까먹는 거. 거리에서 잠깐 스쳐갈 때도 ‘아, 그 분이구나’ 알아본 적, 그치만 상대가 놀랄까 봐 그냥 지나친 적 한두 번이 아니다.(서울 와서 연예인 정말 많이 봤다. 인스타 팔로우한 분들도 마찬가지.)



이 말을 하면 다들 신기해 하고 부러워 하는데 사실 그렇게까지 특별할 일인가 싶었다. 근데 갈수록 축복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지. 얼굴을 기억하고, 이름을 떠올릴 수 있다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을? 시선을 돌리게 된 건 정혜윤 PD님과 은유 작가님의 영향도 있었지만 결정적 계기는 커피 리브레 서필훈 대표님의 주간 문학동네 연재 시리즈다. 서 대표님은 ‘얼굴 있는 커피’를 추구한다. 막 테이블에 도착한 커피 한 잔의 시작을 책임진, 지구 반대편 생산자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 어느 지역, 어느 환경, 어느 농부, 어느 삶을 거쳐 내 앞까지 도달했는지 알고 기억하자고 제안하는 것. 그가 오랜 시간 관계 맺어온 농부들의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며 눈물이 핑 돌았다. 어쩌면 거기서 뜬금없이 내 재능의 가치를 돌아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유일한 그의 얼굴과 유일한 그의 이름을 유일한 내 눈으로 찍고 유일한 내 귀로 녹음한다. 누군가에겐 그냥 지나가거나 점점 잊혀지거나 애초에 발견되지도 못할 그의 고유함을, 나는 정확히 목격하고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이따금 상상하며 자주 떠벌린다. 늘 그렇듯 호들갑을 떨면서. 이 사람이 여기 있다! 그를 아는 내가 있다!



그러니까 내 재능은 재평가가 시급하다. 좀 특별한 가능성을 가진 게 분명하니까. 타인을 호명하는 능력. 머쓱하게 불려 나온 이의 이야기를 열심히 소개하고 전달하는 능력. 그렇게 그에게 없었을지도 모를 작은 자리를 마련해주는 능력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빅 웨이브 골든 에일에 관한 작은 상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