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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Jul 09. 2021

절반의 성공

그런데 이제 싱크대 냄새를 곁들인...





싱크대 냄새를 아시는지?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입주 첫날부터 주방 쪽만 가면 은은하게 올라왔다. 나는 냄새에 별로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여기 와서 깨달았다.


제습제는 소용 없었다. 습기는 습기고 악취는 악취니까. 그럼 탈취제를 쓰면 되겠지? 그랬으면 이렇게 하소연 안 한다. 뭘 어떻게 해야 하나. 네이버에 검색하고 유튜브 영상들도 뒤졌다. 그중 눈길을 사로잡은 건, 악취방지트랩. 배수관에 트랩을 끼우면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냄새를 막아준단다.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신중한 구매를 위해 배수관 사이즈를 재보자. 하부장을 이리저리 살폈다. 아래 걸레받이까지 열어봤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사이즈를 재기도 어려운 구조일 뿐더러 어딘가 느낌이 쎄했거든. 그리고 5분 뒤 바퀴벌레를 만났다.


다 때려 부수고 싶은 밤. 바 선생을 두 분이나 뵈었다. 나는 벌레를 곧잘 잡는 사람이다.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걸 여기 와서 깨달았다. 간만에 시원한 욕을 연이어 내뱉으며 2시가 넘어서야 잠들었다. 악몽까지 꾼 게 코미디다. 살다 살다 바퀴벌레 나온 꿈은 처음이었다니까. 이제 이 집은 나를 긴장시킨다. 홈 스윗 홈은 진짜 가능한가?


새로운 배수구를 주문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서. 다행히 직접 교체하는 게 어렵지 않단다. 들이는 비용과 노력에 비해서 차이가 크다고 하니 나로서는 대안이 없었다. 새 배수구로 새롭게 시작을. 한 가지 걸리는 건 하부장 아래 걸레받이 안쪽이었다. 이미 나에게 그곳은 악마 같은 바퀴들로 들끓는 지옥이니까. 도저히 열어볼 엄두가 안 났다. 깨끗하게 정리하는 건 더더욱. 그래서 좁밥 같은 거 알면서도 청소업체를 불렀다. 5만원이면 커피가 몇 잔이야 싶었지만 나는 더 이상 바퀴벌레 꿈을 꾸고 싶지 않았다.


30분 간의 업체 청소와 1시간 가량의 셀프 배수구 교체. 이 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열불이 난다. 듣던 대로 배수구 교체는 쉬웠다. 영상 보면서 따라하니 은근 재미있었다. 마지막이 문제다. 배수구 세트에 포함된 악취방지캡을 하수구와 연결되는 배수관에 끼우는 단계. 나 참 배수관 사이즈가 말 같지도 않게 큰 거 아닌가? 분명 악취방지캡 이거 표준 사이즈라고 했는데. 황급히 근처 철물점에 전화를 돌려봤지만 대답은 똑같다. “그거 말곤 안 팔아요. 가정집은 다 그 사이즈면 되는데요.” 인터넷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이 집은 뭔데 그 흔한 가정집의 범주에도 안 들어가는가. 심지어 배수관은 팔도 잘 안 닿는 위치에 있어서 깔끔하게 테이프를 둘러 밀봉하기도 쉽지 않았다. 결국 남은 건 뽁뽁이뿐. 더운 오후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빈 공간에 뽁뽁이를 밀어 넣었다. 힘들어도 욕하는 건 쉴 수 없었다.



절반의 성공. 지금까지의 상황이다. 주방 쪽에 가도 더 이상 냄새가 안 난다. 다만 배수관이 위치한 하부장을 열면 은은하게 난다. 혹시 몰라서 나프탈렌을 넣어 놨더니 둘이 만나서 더 오묘한 향을 풍기대. (진짜 가지가지 한다.) 이제 뭘 더 못하겠다. 심해지기 전까지는 그냥 살아봐야지. 하부장에는 냄새 배도 상관없는 잡동사니만 넣어두면 될 것 같다.


그래서… 나 잘한 건가? 비록 절반이지만 그래도 큰 문제를 직접 극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역시 일단 살아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아직 주방에서 요리하는 주말을 포기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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