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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Feb 21. 2023

새해 첫 끼는 무조건 라면

변하지 않는 맛만큼이나 새해를 맞이하는 나의 마음도 한결같다.


“아, 그냥 연기대상 보면 안 돼요?!”



매년 12월 31일 밤이면 집안에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도 누가 대상 타는지 좀 보고 싶다고요. 그러나 우리 가족은 11시면 어김없이 문을 나선다. 송구영신(送舊迎新) 예배를 드리러. 보낼 송 - 옛 구 - 맞이할 영 - 새 신. 옛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이하는 예배. 크리스천 집안에서 자란 나는 매년 새해를 교회에서 맞이했다. 방송사 연기대상이나 보신각 타종 행사를 시청하는 대신, 엄숙한 설교 말씀을 듣고 오백 번도 더 들어본 찬송가를 따라 부르며 말이다. 참으로 지겨운 연말 루틴이었다. 



지겨움도 잠시, 언제부터인가 송구영신 예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예배가 끝난 이후를. 귀갓길에 우연히 포장마차를 발견한 것이다. 거기 짜장면과 우동이 끝내주게 맛있었다. 사실 맛에 대한 기억이 구체적이지는 않다. 골목 한쪽에 차를 세우고 포차 안으로 들어설 때의 설렘, 펄펄 끓는 솥에서 올라오던 열기만 생생히 남아 있다. 한 번 맛을 들이자 멈출 수 없었다. 한 해의 끝, 예배를 마치고 포장마차로 넘어가 새해 첫 끼로 먹는 짜장면과 우동이라니. 그야말로 예진감래(禮盡布來 예배 끝에 낙이 온다)였다.



포장마차가 사라진 걸 알았을 때 상실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1년에 딱 한 번 들르는 소중한 단골집인데. 두 번 세 번은 갔어야 했다는 자책감까지 들었다. 허나 사랑이 사랑으로 잊혀지듯, 야식은 야식으로 잊혀지는 법. 그냥 잠드는 것만큼은 참을 수 없었던 아빠가 ‘이제 때가 됐다’는 비장한 표정으로 라면을 끓인 것이다.





우리 집에서 라면은 아빠만 손댈 수 있는 음식이다. 모두 군말 없이 믿고 먹는다. 1월 1일 새벽 1시, 오래된 냄비에 끓인 삼양라면을 두고 가족들이 둘러앉았다. 국물만 한두 모금 맛보겠다던 엄마까지 어느새 젓가락을 들고 한 자리 차지한다. 입맛을 돋우는 짭조름한 국물과 탱탱한 면발, 고소한 계란 노른자, 거기에 새해부터 새벽 라면 때린다는 길티 플레저 한 스푼까지. 원래 행복하게 먹으면 살 안 찐다.



아빠의 라면은 십수 년째 일관된 맛을 유지하는 중이다. 삼양라면부터 신라면, 감자면, 진라면 순한 맛까지 어떤 라면인지는 상관없다. 변하지 않는 맛만큼이나 새해를 맞이하는 나의 마음도 한결같다. 굳은 다짐이나 목표, 건강한 리추얼 따위는 포기한 지 오래. 남들 따라 거창하게 시작해봤자 이틀도 안 간다는 걸 빅데이터가 말해주기 때문이다. 다이어리를 쓰고 헬스장에 나가고 온라인 강의를 등록하는 건 나랑 안 맞다. 적어도 1월 1일에는 말이지.



몇 년 지나면 까먹어버릴 결심을 세울 바에 지금 당장 즐거운 일들로 새해를 채운다. 얼굴 부을 걱정은 집어치운 채 아빠의 자존심이 들어간 라면을 나눠 먹는 일처럼. 늦잠 실컷 자고 일어나 눈물 쏙 빼놓을 휴먼 드라마를 정주행하거나, 철 지난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 놓고 앉은 자리에서 빅파이를 일곱 개씩 까먹는다. 어차피 올해도 내 예상과 기대와는 상관없이 재밌고 위태롭게 흘러갈 테니까. 동기부여고 자기 계발이고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새벽 라면으로 한 해를 시작해도 충분히 잘 버티고 즐길 사람이라는 스스로를 향한 믿음만 있을 뿐이다.



올해 첫 끼는 안성탕면이었다. 황태까지 넣어 국물 맛이 유독 시원했다. 아빠의 라면도 진화하는구나. 나의 2023년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 배달의민족 뉴스레터 [주간 배짱이] 143호 '요즘 사는 맛' 코너에 기고한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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