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그 자체로 완벽한 플리트비체

사진으로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아름다움

by 김연큰

플리트비체는 P의 여행 위시리스트에 있던 곳이지만 J도 가고 싶어 한 곳이다. 어떻게 가고 싶어 하게 되었는지 왜 가고 싶은지 그런 건 기억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영화 <아바타>에 영감을 준 장소 중 하나라고는 하지만 P는 <아바타>를 보지 않았고 J는 그 영화를 봤지만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아무튼 호수가 예쁘고 걷기 좋은 곳이라더라- 정도만 공통적으로 알고 있었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돌아보는 방법에는 여러 코스가 있다.

플리트비체 C, E, H, K 코스가 안내된 모습

J와 P는 호텔에서 추천한 C 코스를 택했다. 기왕 보는 거 전반적으로 다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전체를 보는 코스 중 난이도와 소요 시간을 볼 때 가장 무난한 코스가 C라고 안내받았기 때문. 시작 지점은 1번 입구이나 두 사람은 2번 입구로 들어왔기 때문에 국립공원 내 셔틀을 타고 이동했다.


참고: 국립공원 내에서는 지정된 장소에서 셔틀이나 배를 탈 수 있는데 이는 입장권에 포함되어 있다. 다만 사람이 많을 때는 대기가 꽤 길다.


1번 입구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트래킹 시작 장소로 향하는데 중간에 사람들이 몰린 곳이 있어 가보았다. 그곳에서는 앞으로 둘이 갈 곳에 대한 예고편을 볼 수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두 사람은 비현실적인 풍경에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세상에,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저 맑은 물빛은 무엇이며, 이때는 날씨가 흐린 상태였는데 그럼에도 이런 물빛이라니 말이 되는가? 게다가 호수면 호수, 숲이면 숲 - 이렇게 나뉜 모습만 알고 있었는데 이곳은 숲과 폭포와 데크길이 모두 어우러진 풍경이라니, 게다가 우리가 그 속을 걷게 된다니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곳이 있는가? 두 사람은 엄청나게 기대감이 커져 걸음을 재촉했다. 어서 저 데크길을 걷는 일원이 되고 싶었다.


위 사진을 기준으로 데크길 상단은 보다 높은 곳이고, 하단은 상대적으로 낮은 곳이다.

트래킹 중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플리트비체 특유의 안내도

무슨 의미냐면 플리트비체는 호수가 층층이 내려오는 형태이고 그 층과 층 사이에 작거나 큰 폭포와 나무들이 있다. 호수 주변은 빽빽한 산림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는 접하기 힘든 풍경을 볼 수 있다.

벨리키 슬라프 폭포

입구 1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폭포인 벨리키 슬라프(Veliki Slap) 폭포. 폭포 규모가 아주 크진 않지만 플리트비체의 랜드마크 중 하나다. 이 공원 곳곳에 있는 폭포들에 비하면 가장 큰 폭포인 건 사실이다. (다른 폭포들이 작다고 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이 폭포 자체보다는 첫 번째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주변과 어우러진 모습이 매우 멋지다. 첫 번째 사진 왼편에 보면 구름다리 같은 것이 보이는데 사실 구름다리가 아니며 폭포수가 흐르는 돌길 위에 데크를 조성한 형태라서 그냥 걷다 보면 자연스레 지나가는 길이다.

그 길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이런 느낌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호수가 층층이 내려오는 형태이고, 트래킹 코스는 아래서부터 위로 완만하게 올라가는 형태로 진행된다. 그렇다 보니 층이 나뉘는 곳을 지날 때마다 다양한 규모의 떨어지는 호수 물을 관찰할 수 있다.

때로는 아주 낮게, 때로는 사람 키보다 높은 곳에서 흘러 떨어지는 호수

자연스럽게 귀로도 감상하게 되는데 그 소리가 매우 시원하다. 두 사람이 방문한 날은 비 온 뒤 기온이 낮아져 이미 시원한 날씨였지만 어쩌면 이 물소리 때문에 더욱 시원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시원한 물소리를 감상해 보세요.

때로는 세차게 흘러가는 물이 바로 발 밑을 지날 때도 있다. 어디서 콸콸콸 내지는 철썩철썩 소리가 들려 주위를 둘러보면 층과 층 사이를 걷고 있어 물줄기가 바로 발 밑에 있는 상황이었다. 물 위를 걷는 듯한 경험이 기묘했다. 어떻게 이렇게 코스를 기획하고 데크길을 조성할 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맑은 호수, 시원한 물줄기, 울창한 나무, 높은 산-그 모든 게 있는 플리트비체

사실 여기 오기 전에 스위스, 뉴질랜드 등 자연 풍광으로 유명하다는 곳은 이미 가본 두 사람이기에 호수에 놀랄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내심 있었다. 그들 생각에 가장 호수 색이 특이하고 아름답다고 느낀 곳은 뉴질랜드에서 본 빙하 녹은 물이 호수가 된 풍경이었다. 그래서 플리트비체의 호수가 예쁘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런 류의 호수를 떠올렸다. 그러나 플리트비체의 물은 빙하 녹은 호수의 물색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초록빛이었고, 그렇다고 다른 곳에서 본 초록빛도 아닌, 처음 보는 유형의 초록빛이었다.

맑다 못해 투명한 물빛

수심이 얕은 곳의 경우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였는데 그 투명함에 감탄하는 한편 어떻게 이걸 지키고 유지할 수 있는지 무척이나 신기했다. 여기가 너무 깨끗해서 방문하는 사람들도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참고: 셔틀이나 배를 타는 곳 근처에 휴게 장소가 있다. 그곳에서 먹거리나 마실 것을 구매할 수 있고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쓰레기도 처리할 수 있는데 분리수거해야 한다.
사진에는 제대로 담기지 않는 초록빛

수심이 조금 깊은 곳의 경우 본격적인 플리트비체 특유의 초록빛을 볼 수 있는데 식상한 표현일지 모르나 어떻게 해도 사진으로는 그 초록빛을 제대로 담을 수 없었다. 이곳은 방문해서 직접 눈으로 봐야 한다.


이처럼 생태 환경이 좋다 보니 생명체도 다양하게 관찰할 수 있다.

물고기와 오리

다양한 크기의 물고기가 돌아다니는 것을 쉽게 관찰할 수 있었고 좀 높이 올라가면 오리도 종종 만날 수 있다.

또한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신기한 잠자리가 살고 있다. 쪽빛인 듯하나 초록빛이 묘하게 섞인 잠자리. 그 색상 때문에 처음엔 나비인가 했다가 잠자리임을 깨닫고 너무 신기해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지구의 생태계에 사는 생물이란 어쩜 이리 다양한지!

너무 신기했던 쪽빛 잠자리. 여기서는 흔한 존재다.

영상에는 못 담았지만 소금쟁이도 많이 보였다.




하지만 마냥 좋은 경험만 한 것은 아니었다. P3(3번 항구)에서 배를 타고 P2(2번 항구)로 와서 Veliki prštavac, Mali prštavac, Galovački Buk 등 세 개의 폭포를 볼 때까지는 여전히 황홀경에 빠져 있었는데 이후 어느 순간 경로가 이상하게 꼬인 것을 느꼈다.

이런 표지판을 따라 자기가 가는 코스에 맞게 가면 된다만

경로가 꼬였다고 느끼기 전 마지막으로 찍은 표지판. 분명히 저기 적힌 C를 보고 따라갔는데 어느 순간부터 표지판에 C 코스 안내가 사라지고 두 사람은 더 이상 자연 감상이 아닌 하이킹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말해 고생길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계속되는 숲길...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어느새 사라진 호수. 계속 이어지는 숲길. 게다가 오르막길.

사람들이 있으니 길을 잃은 건 아닐 텐데 현재 코스대로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는지 알 수 없는 상황.


둘은 혼란에 빠졌지만 여기서 다시 되돌아가기에는 더 리스크가 크다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이 길을 따라갔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즐기자는 생각이었을까? 둘 다 애플워치를 차고 있었는데, 이렇게 길이 길어질 줄 알았으면 운동에서 실외 걷기나 하이킹을 선택해서 운동 코스라도 기록할 걸 그랬다는 웃픈 후회를 했고, 이어 "왜 우리는 항상 이런 일이 생기는가?"라는 토론을 시작했다. 사실 두 사람은 여행지에서 이런 경우가 많았다. 호기심에 어딘가를 들어가 봤다가 엉뚱한 길을 들어가 헤매는 상황. 오래전 스위스에서도 그랬고, 바로 작년 울릉도에서도 그랬다. 대개 그 주범은 P였다.

C 코스 확대 컷

그러다 마침내 St 3(셔틀 3번 승차장)에 도착했다. 나중에 C 코스를 찬찬히 확인해 보니 가능성은 둘 중 하나였다. 원래 C 코스가 그런 길이었거나, K 코스로 잘못 빠졌거나. P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기에 고생길 도중 사진을 찍었다면 위치 정보가 같이 찍혀 알 수 있었을 텐데 중간에 핸드폰 배터리가 3% 밖에 남지 않는 상황이 되어 P2(2번 항구)에 도착한 뒤로는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다.


어쨌거나 둘이 제대로 C 코스를 간 것이 맞다는 가정 하에 그들의 감상을 풀자면, P2에서 내린 후 세 개의 폭포를 볼 때까지는 좋았으나 그 이후는 힘들고 구경거리도 떨어졌기에, 굳이 St 3에서 셔틀을 타고 싶은 게 아니라면 P2 도착 후 세 개의 폭포까지만 보고 다시 P2로 돌아와 P1으로 가는 배를 타고 돌아가는 방법도 고려할만하단다.




막판에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둘 다 크로아티아를 왔다면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 가야 한다는 데에 이견은 없었다. 특히 J는 계속 "자연이 사기네, 자연이 사기야"라는 말을 되뇌었는데, 그 말인즉슨 어떤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자연적인 무언가가 있고 그걸 잘 관리만 하면 관광객은 알아서 모인다는 것이다. 굳이 높은 마천루를 만들거나, 테마파크를 만들거나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문제는 어떤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자연적인 무언가'는 인간의 힘으로 만들 수 없는 것이므로 이야말로 그 나라의 '운'의 정점 아닐지. (물론 그런 행운이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개발' 혹은 '종교적 사명'이라는 명목 하에 모든 것을 밀어버리는 곳도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두 사람이 같이 혹은 각자 여행한 곳 중에 그런 곳이 꽤 있었다. 캐나다 옐로나이프에서 본 오로라와 밴프 국립공원, 캐나다 및 미국의 나이아가라 폭포, 미국의 요세미티 국립공원과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 뉴질랜드 곳곳의 호수와 빙하, 남미의 이과수 폭포와 파타고니아, 스위스 및 오스트리아의 알프스, 영국의 세븐 시스터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오스트리아 할슈타트와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가 그 '자연이 사기다' 리스트에 추가되었다.


우리나라의 그런 곳으로는 제주도 한라산, 울릉도와 독도를 꼽았다. 하지만 울릉도에 현재 짓고 있는 공항이 완공되면 그 이후에도 과연 그들이 방문했을 때의 울릉도처럼 깨끗하고 아름답게 유지될 수 있을지는 우려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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