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을 쓰는 기쁨

결국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써야 한다

by 김연큰

지난주, 글이 잘 써지지 않아 오랜만에 강원국 작가의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을 다시 읽었다. 그 책은 글쓰기에 대한 책이자 작가님께서 대통령 연설비서관으로 일할 때에 대한 회고록으로, 내가 과거 회사에서 글을 쓸 때 도움을 많이 받은 책이다. '내 글'이 아닌 '남의 글'을 써야 한다는 점에서 공통분모가 있었다.


회사에서 숱한 글을 썼지만 그게 내 글이냐 하면 글쎄. 그 글이 정확한 내용을 담고 있느냐, 독자가 읽기 편하게 썼느냐, 맞춤법에 오류가 없는가, 문장에서 주술구조가 갖춰졌는가 등에 대해서는 내 책임이 맞았다. 하지만 내 콘텐츠는 아니었다. 회사에서 제공한 자료를 기반으로 회사에서 원하는 방향성으로 써야 했고 내 생각이나 의견이 들어가서는 안 됐다. 그런 글은 내 글이 아니라고 본다. 글 작성과 품질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지만 회사의 글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여기서는 내 글을 쓴다. 작성의 책임만 내가 지는 게 아니라 콘텐츠도 내 책임이다. 내가 소재를 발굴하고 내가 구성하며 내가 원하는 방향성으로 내 생각을 담아 쓴다. 그러므로 이건 진짜 내 글이라고 볼 수 있겠다.


회사에서 글을 썼을 때는 회사의 글을 쓴 대가로 월급을 받았으니 전형적인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 관계다. 지금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그 결과 성취감이 크다. 정확히 이 부분이 차이인 거 같다. 다른 이가 원하는 글을 쓰고 물질적 보상을 받느냐, 내가 원하는 글을 내 맘대로 쓰고 심적인 보상을 받느냐. 그럼 회사 글을 쓸 때보다 나의 글을 쓸 때가 행복하냐, 만족하냐-라고 묻는다면 그렇다.


나는 어려서부터 말하는 건 두려워했지만 글 쓰는 것은 재밌어했다. 그런데 일로 다른 사람의 글을 쓰니 재미가 없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이런 이런 것들인데... 메모 앱에 적은 글감 거리만 늘어났다. 하지만 회사에서 한참 글을 쓰다 집에 오면 더 이상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내 글쓰기 욕구는 소모되고만 있었다.


번아웃이 와서 회사 일을 잠시 쉴 때 책을 많이 읽었다. 정신적인 에너지가 바닥난 상태에서 나를 충전해 줄 수 있는 건 책뿐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다 보니 글쓰기 욕구가 되살아났다. 메모 앱에 적어둔 글감을 다시 훑어보았다. 아, 그래. 내가 이런 걸 쓰고 싶어 했지. 하지만 왜 못쓰고 있었지? 아, 그렇구나. 내 글을 쓰려면 이제 남의 글을 쓰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복귀 후 회사 업무를 바꾸었다. 글을 아예 안 쓰는 건 아니지만 덜 써도 되는 업무로. 덕분에 내 글을 쓸 기운이 생겼다.


이 글 서두에 지난주 글이 써지지 않았다고 했다. 읽어야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읽으면서 내가 왜 내 글을 쓸 생각을 했던가 다시 돌아봤다. 이윽고 깨달았다. 내 글을 쓴다는 건 내가 쓰고 싶은 것이 있어서잖아? 누가 내 글을 읽어주길 바라고 쓴 게 아니잖아? 초심을 찾자고 나 스스로에게 주문했다. 그래야 내 글을 쓰는 기쁨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잊지 말자.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걸 쓰는 거라는 걸.


이 글은 <잔기술>이라는 에세이 쓰기 소모임에 제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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