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소비 줄이기

취향을 알아야 줄일 수 있다

by 김연큰

베르너 좀바르트는 그의 저서 <사치와 자본주의>에서 사치에 대한 욕구가 자본주의를 탄생시켰다고 주장했다. 나는 그의 말을 조금 비틀어 '현대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힘'이 사치에 대한 욕구라고 생각한다. 과잉 생산이 되었을 때 그것을 소비시켜야 하니까 마케팅이 탄생했고 그 마케팅에 홀린 많은 사람들이 돈을 쓰기에 돌아가는 경제 체제. 마케팅 수단은 점점 더 고도화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제품에 지갑을 연다.


얼마 전 한 SNS에서 이런 글을 보았다.

소비란 뭘까 (중략) 결국 자기 물건 때 타가게 하면서 오래 쓰는 사람들은 이전에 거의 필수로 과소비하면서 물건에 대한 취향을 다 확립해 둔 사람이었음 (중략) 좋은 물건을 고르는 취향이 결국 소비를 정기적으로 해야만/혹은 넘치는 소비를 해서 결국 취향을 알아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게 비극이야


내가 이런 사람이다. 과거에 다양한 분야에 소비를 하면서 어떤 게 나를 진정으로 만족시키는지, 혹은 쓴 돈에 비해 만족감이 떨어지는지 알게 됐고, 그래서 지금은 내가 돈을 썼을 때 만족감이 보장된 것에만 돈을 쓴다. 여기서 말하는 소비는 단지 돈뿐만 아니라 시간도 해당된다. 쇼츠에 중독되어 시간을 흘려보내는 걸 고민하는 지인을 몇 봤는데 나는 쇼츠가 나에게 가치를 주지도 않고 재미도 없다고 생각해 보지 않는다. 다들 영상 서비스 하나쯤은 유료 구독하는데(대표적인 예가 유튜브 프리미엄 되겠다.) 나는 영상을 즐겨 보지 않아 유료 구독하는 것도 없다. 내가 돈을 쓰는 대표적인 분야가 책이고, 그다음 야구나 배구 등의 스포츠 직관 정도가 있다. 또한 어쩌다 여행을 갔을 때 액티비티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그 외의 외부 활동에는 돈을 거의 쓰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단순히 소비를 많이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 취향에 맞는 게 뭔지'를 아는 것이다. 위 문단을 다시 돌아보면 나는 글을 좋아하고 영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여행에서의 액티비티나 스포츠 관람 같은 활동도 좋아하지만 그 외 다른 활동은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내가 여기저기 돈을 쓰던 시절, 어느 날 문득 '이런 건 내가 지불한 것 대비 만족감이 크지 않은데?' 하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소비를 줄인 대표적인 것이 옷이다. 한때는 한 달에 수십만 원어치 옷을 샀지만 지내고 보니 결국 옷깃이 빳빳한 셔츠는 잘 안 입더라, 품이 여유로운 티셔츠는 즐겨 입더라 - 하는 것을 깨달으면서 줄이게 되었다.


계속 소비를 하고 싶다면 상관없지만 소비를 줄이고 싶다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본인의 취향을 파악해야 한다. '여기에 돈을 써서 얻은 결과물로 내가 정말 만족했나?'를 돌이켜봐야 한다. 반면 돈을 쓴 그 순간의 쾌락에 집중하면 소비를 줄일 수 없다. 어찌 보면 돈을 쓰는 자체가 취향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취향을 알았다면 내 취향이 아닌 것에 대한 마케팅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내가 무언가를 보면서 '와, 저거 예쁘다' 혹은 '저거 맛있겠다'라고 하면 주변에서는 내 행동이 바로 소비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내가 예쁘다고 감탄했던 것이 내가 소유해야 하는 것인가? 혹은 지금 내가 보는 것으로 충분한가?를 생각하고, 맛있어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주변에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예쁘다=갖고 싶다'가 아니고, '맛있겠다=먹고 싶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단 걸 잘 못 먹는다. 맛있어 보인다고 덥석 먹었다가 한 입 먹고 '으, 너무 달아서 못 먹겠어.'라며 내려놓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경험이 축적되어 있기에 달아 보이는 건 '맛있겠다'로 끝난다. 친구들과 나눠먹을 수 있다면 그때 시도해 보는 정도다.


문제는 앞서 인용한 글에도 적혀있듯이 "소비를 해서" 취향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모순 같지만 돈이 없으면 내가 돈을 쓸 분야가 무엇인지, 어디에 쓰지 말아야 하는지 취향도 파악하기 어렵다. 결국 소비를 실컷 한 후에 소비를 줄이는 과정을 거치므로 돈이 없으면 취향을 파악할 기회도 없는 비극적이고 슬픈 결론이다. 그래서 나는 현대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힘이 사치에 대한 욕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글은 <잔기술>이라는 에세이 쓰기 소모임에 제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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