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제한

판교를 좋아하는 이유

by 김연큰

경기도 성남시 삼평동. 신분당선 및 경강선 판교역 부근이며, 내가 오랜 기간 일한 곳이다. 이 글에서는 여기를 '판교'로 통칭하겠다. 나는 판교에 대해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판교는 진짜 별로인데, 놀러 올 때는 좋아."


별로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일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별로인 이유는 물가가 비싸서이다. 서울시 여의도나 강남 일대처럼 직장인이 몰린 곳은 필연적으로 물가가 높을 수밖에 없는 것 같긴 하다만.


놀러 올 때 좋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이유들을 통합해 보면 고도제한인 거 같다. 나름 근래에 개발한 도시이고, 큼직한 건물이 여럿 있지만 서울 공항이 가까운 덕분에(?) 건물에 대한 고도제한이 걸려있고 덕분에 조금만 고개를 들어 올리면 하늘을 볼 수 있다. 나는 서울 시내의 빌딩 숲들이 매우 숨 막힌다 생각들 때가 많은데 반면 판교는 길도 넓고 건물과 건물 사이도 제법 트여있고 녹지도 많아 눈이 참 즐겁다. 그렇게 녹지가 많다 보니 신도시인데도 자연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천 가를 걷다 보면 오리 가족들도 만나고, 백로인지 왜가리인지 나로선 구분이 어려운 흰 새도 자주 만나고, 다리 위에서 물고기들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오소리 및 너구리 주의' 팻말을 볼 때마다 자연 보존이 잘 되는 거 같아 반갑다. 아, 공원 산책하다 두 번이나 뱀을 만나서 식겁한 적이 있는데 너무나 무서웠고 되새기기 싫은 기억이지만 그래도 이건 어쩔 수 없다. 뱀도 자연 구성원의 일부인데 내가 싫다고 뱀만 배제할 순 없으니까.


고도제한 덕에 건물들 높이가 다 비슷하다 보니 건물 옥상 등지에서 전망을 내려다보면 우리나라 도시 같지 않은 판교 고유의 매력이 있다. 색상 조합이나 생김새가 딱히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지만 건물과 자연의 조화가 꽤 괜찮은 느낌이랄까? 그렇게 전망을 즐기다 문득 든 의문. 해외여행을 다녀온 주변 사람들이나 혹은 TV 여행 예능 프로그램에서 말하는 걸 들어보면 대체로 비슷한 색감을 가진 낮은 건물들이 아기자기하게 있는 풍경에 감탄하는 걸 자주 듣곤 한다. 미국 뉴욕 같은 빌딩 숲을 좋아하는 사람도 물론 있지만 상대적으로 소수다. 다른 나라의 낮은 건물에는 감탄하면서 왜 우리나라 건물은 높이지 못해 안달일까? 단지 대한민국 땅덩이가 좁아서- 라기에는 우리나라보다 작은 나라도 많다. 그보다는 인구나 인프라 등 모든 것이 서울 및 수도권에 과하게 집중된 영향이 크지 않을까.


서울 외곽의 그린벨트가 서서히 풀려가듯이 언젠가 판교도 고도제한이 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시기가 조금 천천히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직장 안에서야 소리 없는 총성이 울려 퍼지는 전쟁터지만, 그래도 이렇게 풍경을 보면서 잠시나마 평화로운 척, 아무 일 없는 척, 위안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을 보다 오래 즐길 수 있도록.


이 글은 <잔기술>이라는 에세이 쓰기 소모임에 제출한 글입니다.
keyword
이전 13화선생님들, 안녕하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