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었던 내가 봐도 안타까웠던 선생님들 이야기
어렸을 적 어떤 적금을 만들었는데 장래 희망을 적어야 했다. (아마 어린이 대상으로 장래 희망을 적으면 추가 이율을 적용해 주는 상품 아니었을까 추측하고 있다.) 나는 딱히 되고 싶은 게 없었고 그저 어머니 희망대로 '선생님'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이후 나의 장래희망은 '외부적으로는' 선생님이었다.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여전히 나는 하고 싶은 게 없었는데 어딘가에서는 자꾸 장래희망을 적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후 슬슬 세상을 알기 시작하게 된 초등학교 5학년 및 6학년 무렵에는 선생님도 꽤 괜찮은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2년 정도는 진심으로 내 장래희망이 선생님이긴 했다.
'2년 정도'라고 규정한 데서 이미 스포일러를 한 셈인데, 그 생각은 중학생이 된 후 바뀌었다. 무언가 되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수모를 겪는 상황을 몇 차례 목격하면서 '앞으로 이런 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거 같다'는 생각에 부모님에게도 '나는 절대 교사가 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이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 사례가 있었다.
첫 번째는 도덕 선생님이었다. 교사가 된 지 몇 년 되지 않은 분이었고, 예쁘장하고 귀여운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다. 문제는 일부 남학생들이 너무 이 분을 만만하게 봤고, 선생님이 수업을 하거나 말거나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다. 당시는 지금과 달리 선생님이 학생을 체벌할 수 있었기에 '매'를 들어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심지어 체벌을 받을 때도 낄낄대며 즐기는 모습이었고 선생님 입장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뭘 해도 안 되는구나'라고 말하는 듯하던 선생님의 공허한 눈빛이 아직도 가끔 생각난다.
두 번째는 교생 실습을 나온 남자 선생님이었다. 첫 사례와는 반대로 일부 여학생들이 매우 짓궂게 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거 성희롱 아니었나?' 싶을 정도의 발언도 서슴없이 했고, 선생님은 어찌할 줄 모르고 그저 '하하...' 웃으며 넘어갔다. 상대가 여학생이라서 그런지 체벌도 하지 못하고 큰 소리도 한 번 못 지르고 그저 쩔쩔매다 교생 실습을 마치고 가셨던 기억이 있다.
두 사례의 공통점은 다른 선생님들 대비 힘이 없는, 소위 '만만해 보이는' 선생님들이 대상이 됐다는 거다. 그리고 실제로 그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가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 괴롭힘이 심해지는 악순환을 낳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특정 집단 내 괴롭힘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학생 사이에서 일어난 학교 폭력, 직장 안에서 벌어진 직장 내 괴롭힘 등과 별반 차이가 없다. 교사-학생이라는 관계만 두고 볼 때는 교사가 더 강자로 보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위 두 사건은 교사가 약자였다.
수년 전부터 교권 추락으로 미디어가 떠들썩하지만 사실 그 균열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셈이다. 이런 전조가 내가 다닌 학교에서만 일어나진 않았을 텐데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인지 혹은 예상했어도 현실이 이렇게 되는 게 어쩔 수 없는 것이었는지 궁금하다. 분명 이렇게 괴롭힘을 당한 선생님들 중 주변에 도움을 청한 사람이 있었을 텐데. 그렇다면 분명 누군가는 인지를 했을 텐데.
그 선생님들은 당시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셨을까, 아니면 혼자 삭히다 마셨을까. 그때 그 일이 큰 상처로 남아있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무리 내가 학생이었다지만 당시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구경꾼처럼 그 상황을 보고만 있었다는 것에 죄송했다고 전하고 싶다.
이 글은 <잔기술>이라는 에세이 쓰기 소모임에 제출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