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지 않지만 돈은 들어오는 잔여 휴가 소진 기간
퇴사할 때 남은 연차가 있을 경우 보통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정해진 날에 마지막 출근은 하되 그 이후 날짜를 휴가 처리하고 실제 퇴사는 휴가 종료 후 처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지막 출근 후 바로 퇴사 처리를 하되 남은 연차에 대해서는 돈으로 받는 방법이다.
그동안 나는 전자를 선호했다. 이직할 때 어떻게든 쉬었다 가려는 목적이었다. 지금까지는 퇴사가 곧 이직을 뜻했으므로 잠시 쉬더라도 곧 월급을 받을 수 있어 돈보다는 휴식을 택했다.
이번에는 다소 고민했다. 이제 곧 수입이 없어지는데 돈으로 받는 게 나은 거 아닐까?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휴가를 돈으로 환산한다 한들 그 금액이 그리 크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재직 기간을 늘리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보다 휴가가 많았다. 연초에 주어지는 그 해의 연차도 있지만 장기근속휴가도 있었다. 심지어 회사 정책상 장기근속휴가는 쓰지 않으면 소멸됐다. 연차와 달리 돈으로 바꿀 수도 없다는 의미다. 그렇게 장기근속휴가와 연차를 모두 사용하고 나니 마지막 출근 이후 나는 '휴가 중' 상태에서 한 달치 월급 이상을 받게 되었다. 이 상황을 알게 된 동료들은 '놀면서 돈을 받다니 부럽다'라고 했다.
마지막 출근 이후 휴가 상태가 된 나는 의외로 바빴다. 우선 그간 일로 바쁘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소원했던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대상은 주로 전 직장 동료들이었다. 어차피 IT 회사들은 판교에 워낙 몰려있다 보니 전 동료들 또한 이직했다 하더라도 아예 업계를 바꾼 게 아닌 이상 대부분 근방에 있었다. 또한 퇴사 후 판교 갈 일을 최소화하고 싶어서 일부러 몰아서 약속을 잡은 면도 있었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대부분 비슷한 질문을 했고, 비슷한 답변을 했다. 대체로 이런 것들이다.
직장인은 이제 그만하고 싶어서 퇴사했다.
백세시대에 언제까지 직장인을 할 순 없다. 회사가 내 은퇴 후를 책임져주는 것도 아니지 않냐.
일단은 쉬고, 앞으로 뭘 할지는 고민한 건 있지만 구체화되진 않았다.
1년 바둥대다 다시 직장인으로 유턴할지도 모른다.
등등......
사실 1년 후 직장인으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 정말 사정이 어려워질 경우를 대비해 던진 말일뿐. '그렇게 되지 않게 하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동기부여와 다짐에 가깝다고 봐야 했다.
고맙게도 그들은 하나같이 나를 격려하고 응원해 줬다. 용기 있다고, 뭘 해도 해낼 거라고 했다. 일이 잘 되어도 자신을 잊지 말라고, 계속 연락하고 만나자고 한 분도 있었다. 곧 수입이 없어질 나를 생각해 자신이 밥과 커피값을 다 치르려는 동료도 있었지만 내가 만류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기어이 결제 금액을 기억해 뒀다가 내 몫을 송금하면서 내가 진짜 어려워지면 그때 사달라고 했다.
그들이 나에게 전한 응원의 말은 진심이 아닐 수도 있고, 돌아서서 '어쩌려고 저러나' 했을 수도 있지만 상관없다. 사람은 때론 겉치레라는 게 필요할 때가 있다. 입에 발린 말, 듣기 좋은 말이 필요할 때도 있다. 난 패기 있게 회사를 박차고 나왔지만 냉정히 말하면 앞날이 캄캄했다. 내가 퇴사를 고민 중인 상황이었다면 '이게 다 널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식의 현실적인 잔소리가 필요했겠지만 이미 저지른 상황에서는 빈말이라 할지라도 응원과 격려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난 좋은 동료들을 두었던 것 같다.
얼마 후 나로서는 좀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위에 내가 한 말에 영향을 받아 정말로 퇴사해 버린 동료가 나타났다. 그분은 최근 힘든 회사 생활에 고민이 많았지만 이직, 퇴직 그 어떤 것도 행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까지 직장인을 할 순 없다'는 내 말이 그분에게 결정적인 방아쇠로 작용한 모양이었다. 그분도 무엇을 할지 결정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왠지 짐작이 됐다. 그분에게 회사 일 외에 다른 재능이 있는 걸 익히 알고 있었고 개인적으로 취미로만 두기엔 아깝다고 생각했었다. 아마 그 재능을 살려 자신의 일을 하지 않을까.
퇴사하고 2주가 지나니 만날 사람은 대충 거의 만났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집에 늘어져 쉬거나 할 수는 없었다.
아직 돈 들어올 때 할 수 있는 걸 하자
지난 글에서 언급한 '1년을 버틸 수 있는 비상금'은 말 그대로 1년을 버틸 수 있는 최저생활비를 모아두었다는 것이지 여윳돈은 아니다. 잔여휴가소진기간 중 들어오는 월급이야말로 마지막 여윳돈이나 다름없었다. 이 돈을 어떻게 써야 잘 쓰는 것일까 고민하다가 마치 전시상황에 대비하여 벙커에 생필품을 쟁여놓는 사람처럼 여윳돈이 아니면 못할 것, 혹은 하기 힘든 것을 하기로 했다.
이쯤 해서 잠시 부모님 이야기를 하자면 부모님도 당연히 나의 퇴사를 알고 있다. 상의는 없었고 나의 일방적인 통보였다. 어쩌면 꽤 충격적일 소식일 텐데도 어머니는 '자기 팔자 자기가 만드는 거고 쟤는 알아서 뭐든 할 애'라는 믿음이 공고하여 별 말이 없었다. 아버지는 '주변에 자식 자랑하는 재미로 사는 분'이었기에 예상대로 펄펄 뛰었다. 어쩌려고 그 좋은 회사를 나오냐고 대로하셨다. 웃픈 점은 아버지의 경우 내 앞에서는 정작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내가 없을 때 다른 가족들에게 그랬다는 것이다. 내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니 나도 모른 체했다.
여윳돈으로 내가 가장 먼저 챙긴 대상이 부모님이었다. 어디 모시고 나들이라도 가면 좋았겠지만 두 분 다 움직이기 귀찮아하시는지라 이런저런 것을 사드렸다. 맛있는 음식을 사드리고 좋은 옷을 사드리고 생활에 필요한 이런저런 것들을 마련해 드렸다. 어머니는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고 했지만 '내가 돈 있을 때 좀 즐겨'라고 입막음했다.
이어서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샀다. 읽고 싶었던 책들을 샀다. 2년 정도 사용 가능할 탈취제, 방향제, 제습제 등을 샀다. 회사 제휴몰을 통해 세탁세제, 주방 및 청소용품도 샀다. 수건도 왕창 사두었다. 옷은 버리면 버렸지 살 필요는 없을 거 같아서 내버려 두었다. 다만 양말과 속옷은 좀 사뒀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큰돈이 들 수 있을 곳에 다니기 시작했다. 바로 병원이었다. 건강검진에서 별 이상소견은 없었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잔잔하게 혹은 불규칙적으로 아팠던 곳들을 점검하고 치료하러 병원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병원은 솔직히 무섭다. 아픈 걸 낫게 하는 것이지만 그 과정 자체가 무섭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