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 그 무게감에 관하여

퇴사 후 늘어난 집안일 vs. 줄어든 집안일

by 김연큰

퇴사 후 내 일을 준비하는 것은 소득이 없는 상태로 재택근무를 하는 것과 비슷했다. 내가 준비하는 일은 집에서도 할 수 있었기에 자연히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다. (물론 집 밖에서 한다는 선택지도 있었는데 그럼에도 작업 공간을 집으로 선정한 것에 대해서는 추후 다루고자 한다.) 그 결과 집안일을 처리하는 빈도나 집안에서 소비하는 것에 대해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번 글에서는 그 변화에 대해 의식주로 나누어 다루고자 한다. 입는 것(衣), 먹는 것(食), 집에서 생활(住) 측면의 변화다.




입는 것의 변화


내 경우는 잠옷, 집에서 편히 입는 옷과 외출할 때 입는 옷 - 세 종류의 옷가지를 항상 옷걸이에 걸어두고 있다.


회사 다닐 때에는 집에서 입는 옷을 입는 시간이 적어서 다른 옷에 비해 세탁 빈도가 낮았다. 반면 외출할 때 입는 옷은 결국 출퇴근 복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건 아무래도 외부를 접하다 보니 자주 세탁해야 했다. 회사 다닐 때 가장 골치 아픈 집안일이 빨래이기도 했다. 빨래야 세탁기가 해주고 건조는 건조기가 해준다지만 옷을 챙기고 개고 정리하는 건 아직까지는 사람의 몫 아닌가.


하지만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는 반대가 됐다. 심지어 일주일 내내 외출할 때 입는 옷을 꺼내지 않은 적도 있었다. 집에서 입는 옷을 착용하는 시간은 길어졌지만 땀이 배거나 오염이 묻지 않는다면 외출용 옷보다 자주 세탁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속옷 빨래 빈도는 그대로인 반면, 겉옷의 빨래 빈도가 줄어들었다.


결과적으로 총 빨래 빈도와 양은 줄어든 셈이다.



먹는 것의 변화


난 아직 내 일을 준비 중인 상황이고 수입이 발생하지 않았다.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이라는 표현이 있다. 어쨌든 필수적으로 나가는 지출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필수적이지만 나름 줄일 수 있는 지출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식비다.


회사를 다닐 때로 잠시 돌아가본다. 출근하면 가장 먼저 아메리카노와 빵을 산다. 주먹밥이나 김밥을 살 때도 있다. 가끔 단 게 끌리면 돌체라떼를 마시기도 했다. 출출하면 편의점 가서 간식을 이것저것 산다. 팀별 공용 간식도 있고 탕비실에 가면 인스턴트 커피나 티백이 있는데도 왜 굳이 내 돈으로 사 먹고 싶던지. 식사는 외식 혹은 배달 음식이 일상이었다. 출퇴근 및 회사일에 쓰는 에너지도 보통이 아닌데 집에 와서 식사까지 챙기고 싶진 않다. 퇴근하면 이미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소진된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밖에서 먹거나 배달시켜 먹곤 했다.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는 술로 풀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맥주 큰 캔 하나씩은 마시곤 했다.


이것들을 거의 다 줄였다.


처음에는 반찬, 국 혹은 찌개를 직접 해 먹으려 했다. 대량으로 해서 며칠 동안 같은 음식을 먹어도 상관없다면 사 먹는 것보다 이게 싸다. 하지만 이 과정에 들어가는 시간이라는 비용도 생각해야 했다. 나는 내 일을 준비 중이니까 식사 준비나 조리에 시간을 너무 많이 쓸 수 없었다.


외식이나 배달 음식을 최소화한다는 원칙은 변함없지만 시간을 벌기 위해 일정 부분 타협하기로 했다. 우선 동네에서 가장 저렴한 반찬 가게를 찾아냈다. 맛도 괜찮고 종류도 다양했다. 반찬 4팩에 1만 원이었는데 이걸 사면 3~4일은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밥은 즉석밥을 저렴하게 파는 곳에서 대량구매했다. 국이나 찌개는 내 경우 필수로 생각하는 음식은 아니다. 그래서 장기보관이 가능한 것으로 구매했다. 뜨거운 물만 부으면 되는 즉석국이나 냉동식품으로 대체하는 식이었다. 내가 정말 먹고 싶은 게 있을 땐 직접 조리하기도 했지만 매우 드물었다. 다만 단백질 보충 차원에서 계란프라이는 좀 자주 한다.


커피는 집에서 내려 마셨다. 코로나19가 한참 심했을 때 밖을 나가기 어려우니 캡슐 커피 머신을 구매했었다. 캡슐 하나당 가격과 비교하면 밖에서 마시는 것보다 저렴했다. 무엇보다 카페인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아서인지 하루에 마시는 커피 양 자체도 줄었다.


간식은 육포나 견과류로 대체했다. 난 원래 간식을 잘 먹지 않는다. 그럼 편의점은 왜 갔느냐? 스트레스받으면 사무실에 있기 싫고 난 흡연자도 아니다 보니 괜히 바람 쐬러 편의점에 가서 뭔가 하나씩 사 오는 식이었다. 그렇게 사놓고 유통기한 지나서 버린 것도 꽤 많다. 그래서 간식은 굳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입이 심심할 때가 있으니까 선택한 것이 육포와 견과류였다.


이 영향으로 늘어나고 줄어든 게 있다. 늘어난 건 설거지거리다. 집에서 먹고 마시니 당연히 전보다 자주 설거지를 해야 했다. 또한 가스 사용량이 늘었다. 직접 조리하는 비율을 줄였다고 해도 회사 다닐 때보다 더 하는 건 사실이고 무엇보다 계란프라이를 자주 해 먹다 보니......


줄어든 건 재활용품 쓰레기다. 배달 음식을 줄이니 플라스틱과 비닐이 줄었다. 특히 플라스틱이 급감했다. 반찬 가게에서 파는 반찬도 물론 플라스틱 통에 담겨있기는 하나 그 부피나 크기가 배달 음식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술을 줄이니 분리수거일에 내놓는 캔의 양도 줄었다. 내 경우 원래 맥주 외의 캔 음료(예: 탄산음료)는 거의 마시지 않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주거지에서의 변화


입는 것과 먹는 것은 대체로 줄어든 편이지만 이 부분은 가장 일이 많이 늘어났고 소비량도 많이 늘어났다.


우선 물을 많이 쓴다. 회사 다닐 때의 나는 집에서 세수만 하고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운동한 후 샤워실에서 머리 감고 샤워도 해결했다. 집에 오면 손발 닦고 다시 세수하는 정도였고 혹시 땀이 났으면 간단 샤워를 하는 정도였다. 물론 주말에는 집에서 다 하지만.


그 주말이 이제는 일상이다. 집에서 머리 감고 샤워하는 걸 매일 반복하다 보니 물을 확실히 많이 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설거지가 늘어난 것도 물 사용량을 늘리는 데 한몫한다.


다음으로 청소를 자주 한다. 집에서 매일 씻으니 물때가 전보다 자주 껴서 화장실 청소를 더 자주 해야 한다. 직접 청소기를 드는 횟수도 늘었다. 회사 다닐 때야 출근하면서 집안은 로봇청소기에게 부탁했고 사무실은 미화 담당 직원분께서 청소해 주시니 나는 책상만 가끔 닦으면 됐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최소 내 작업 공간이라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침마다 책상 아래는 청소기를 밀었다. 로봇청소기는 가끔 내가 외출할 일이 있을 때만 일을 하고 충전대에서 잠자는 날이 더 늘어났다.


청소를 자주 하니 쓰레기가 늘어난다. 집에서 활동을 많이 하니 청소기에 쌓이는 먼지량도 확실히 늘어난다. 게다가 머리카락은 또 왜 이리 잘 빠지고 많이 빠지는지. 또한 휴지를 엄청난 속도로 쓰게 됐다. 각티슈, 두루마리 휴지 모두 해당이다. 집에서 뭔가 급히 닦을 게 있을 땐 각티슈에서 뽑아 쓰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화장실 사용 횟수가 늘어나 두루마리 휴지도 자연히 빨리 쓰게 된다.


가전제품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전기를 더 쓴다. 세탁기는 전보다 덜 쓰고 냉장고는 상수처럼 존재하던 녀석이지만 전자레인지 사용량이 늘었고 청소기 사용량도 늘었으며 결정적으로 내 일을 준비하면서 컴퓨터 사용 시간이 늘어 전원 코드를 꽂아두는 시간이 늘었다. 여름엔 에어컨도 사용해야 한다. 회사 다닐 땐 가장 더운 시간에 회사에 있어 냉방이 해결됐지만 지금은 내가 집에서 에어컨을 작동시켜야 하니 전기 사용량이 쌓인다.




집안일과의 타협


집에 거주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당연히 집안일이 전반적으로 늘었다. 집안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집안일에 들어가는 시간이 꽤 된다. 또한 현대 사회는 가전제품이 잘 되어 집안일에 수고가 예전보다 덜 든다고는 하지만 전처리 및 후처리 등에 은근히 손이 많이 간다. 전업주부를 향해 '집에서 논다'라고 폄하하는 사람은 집안일 좀 시켜봐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어쨌거나 내 경우는 준비하는 일이 있으니 집안일에 너무 시간을 쓸 수 없으므로 완벽을 꾀하기보다는 적당선에서 타협을 하려 했다. 시간을 아끼고자 집안일은 최대한 몰아서 했다. '먹는 것의 변화'에서 볼 수 있듯이 시간 대비 지출이 나쁘지 않은 반찬 등은 외주화 했다. 결과적으로 몇 가지 늘어난 지출 항목이 있지만 그래도 외식, 간식 및 음주를 줄이고 겉옷에 돈 쓸 일이 줄어드니 지출 자체는 줄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코로나19 팬데믹 시절에 재택근무를 할 때 이미 겪어본 것이 대부분이지만 수입이 없는 상태이기에 그때와 달라진 부분도 있다. 재택근무 시절에는 거의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고 맥주도 자주 마셔 엥겔 지수(생계비 중 음식비가 차지하는 비율)가 높았다. 또한 소득이 없는 상태이기에 물, 전기, 휴지 및 쓰레기봉투 사용량 증가 등 지출과 연관된 부분에서는 더 확 와닿은 측면도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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