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고 있는 건 아니지만 미묘하군요
퇴사 후 처음으로 내 마음에 생채기가 새겨진 때는 국민연금에 임의가입 신청을 하면서 직업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였다. 이번에는 두 번째로 마음의 요동질을 느낀 때에 대한 이야기로, 말하자면 인간관계와 내 마음 돌보기 사이의 균형 맞추기에 대한 것이다.
회사를 나오며 '이제 직장인 그만! 나 하고 싶은 거 도전해볼 거임!'이라고 야심 차게 외쳤지만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내 상황을 아는 건 아니었다. 이전에 언급한 것처럼 당시 다니던 회사 동료들, 나름 가깝게 지냈던 전 직장 동료들, 그리고 부모님 정도가 그런 상황임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도 내가 뭘 할지 정확히 아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회사를 그만둔다, 다른 일을 해본다더라 정도만 알 뿐 내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준비하는지 무엇을 하려는 건지 알지 못했다.
솔직히 고백하면 두려웠던 거다. 그 정도 선에서 닫고 싶었고 그 이상의 내용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내 계획에 대해 변명하듯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 않았고 이어질 스무고개를 넘기 싫었다. 나의 선택을 합리화하고자 뜻하지 않은 과장을 하거나 없는 계획을 말하게 될까 무서웠다. '저게 되겠냐' 식의 눈빛을 받고 싶지 않았으며 '그냥 회사에서 월급이나 받는 게 가장 속 편한데 바깥 추운 줄도 모르네' 같은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장 싫은 존재는 뒷담화하는 재미로 사는 몇몇 사람들이고 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싶지 않았다.
뚝배기는 단단하지만 생각하지 못한 상황에서 허무하게 깨지는 경우가 있다. 내가 딱 그런 타입이었다. 호기롭게 퇴사를 질렀지만 사실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낙숫물이 댓돌을 뚫듯, 부정적인 말을 자꾸 들으면 결국 나도 나를 믿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내 결심을 흔들 수 있는 반응은 사전에 차단하고 싶었다. '평생 직장을 다닐 순 없으니 다른 일을 언젠가는 해야 한다'는 건 나에게 참인 명제였지만 '그것이 꼭 지금이어야 하느냐'는 말을 여러 번 들으면 갑자기 와장창 무너질 것 같아 그런 말을 들을 상황을 회피하려 했다.
결국 내가 퇴사하면서 주변에 한 행동은 '도망'이라고 요약할 수 있었다.
때로 도망치는 것은 좋은 전략이라지만 더 이상 도망갈 수 없을 때가 있다. 내 퇴사 사실을 말하지 않은 지인을 마주친다든지, 한 다리 건너 아는 사이에서 근황을 물으면 어쨌거나 답해야 한다. 물론 '늘 똑같다', '그 회사 계속 다니고 있다'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거짓말을 하는 건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특히나 내가 다녔던 회사의 복지를 이용할 수 없을지 기웃거리는 사람이나 내가 다니던 업계에 있는 사람이 근황을 물으면 회사를 떠난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 참 곤란했다. 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 백수다. 뭔가 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남들에게 보여줄 결과물은 없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말하기에는 시기상조 상황인 게다. 설명하기도 어렵고 이해시키기도 어렵다. 이래저래 난제다.
결국 대충 둘러댄다. '부득이한 사유로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걸 알아보고 있다. 요즘 경력직 채용도 별로 없어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여기까지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나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 사유가 뭐냐, 왜 그만뒀냐, 눈을 낮추면 어디든 갈 데는 있지 않겠냐, 요즘 어디에 무슨 공고가 났더라 등등...... 답하고 싶지 않았던 질문과 듣고 싶지 않았던 충고를 기어코 쏟아낸다.
나에게 직접 그러는 사람은 그나마 양반이다. 내 가족들에게 그런 질문을 했다는 걸 뒤늦게 접하고 나면 두 배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괴롭다. 나에게 직접 말하는 경우에는 내가 입을 앙 다물고 굳은 표정을 지으면 대개는 알아서 물러나고 한 두 번은 더 물어볼지언정 그 이상은 묻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다르다. 뭔 건수만 있으면 계속 묻는다. 걱정은 핑계고 '그래서 아직 걔는 놀고 있냐?' 식으로 비아냥대는 건 아닐지 그래서 가족들 속을 뒤집어놓는 건 아닐지 머리가 아파온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빨리 성과를 내야 하는 거 아닐까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난 걸음마도 아직 못 뗐다. 이제 막 뒤집기를 했으며 혼자 앉고 서는 연습 중이다. 걸음마를 뗀다고 해도 바로 뛸 수 없다. 모든 일에는 절차가 있고 순서가 있다. 내가 급하다고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아직 그럴 단계가 아니야. 어차피 1년은 각오했잖아.'라고 나를 달래지만 뚝배기에 서서히 금이 가는 느낌이 든다.
퇴사 후 가장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돈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1년 치 생활비를 마련해 두고 퇴사했다(어쩌면 1년 6개월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돈이 준비가 되어서일까. 나를 괴롭히는 건 돈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1년은 죽기 살기로 해보겠다고 해놓고 외부적 요인으로 흔들려 그만두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간관계의 표면적을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과녁이 크면 더 맞히기 쉽고 작으면 맞히기 어려운 것처럼 인간관계를 축소하면 부딪힐 일도 자연히 줄어들 거라고 봤다. 어차피 내가 '아'라고 말해도 '어'라고 들을 사람은 아무리 설명해도 그렇게 듣기 마련이다. 또한 내가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어도 교류할 사람은 교류하게 되어있다 생각했다. 또 그런 사람이 진짜 내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가족들에겐 쓴소리하고 싶어도 1년만 참아달라고 부탁했다.
이 결정은 효과가 꽤 좋았다. 날 이해할 사람 위주로 소통하기 시작하고 나니 감정 소모가 줄었다. 흔들리는 일도 훨씬 줄었다. 물론 냉정한 말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은 미뤄두었다. 단계가 하나씩 올라가려고 할 때 가족 등 옆에서 내 과정을 지켜본 사람에게 피드백을 듣기로 했다. 우선은 내 마음을 보호하고 내 의지를 불태워 추진력을 얻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이후 사기업 취업 대신 공무원을 준비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결심을 알고 난 후 나는 그에게 절대 근황을 묻지 않았다. 그 친구는 겉으론 약해 보였지만 속은 강단 있는 타입이어서 분명히 알아서 잘할 거라 생각했고, 또 나는 걱정되어 한 마디 묻는 것이지만 그 친구 입장에서는 열 명에게 들으면 열 마디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몇 년 후 친구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고 그때 내가 한 마디 했다. '너를 믿었기 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내가 응원하고 있었다는 것만 알아줘.' 그 친구는 내가 침묵하고 있던 걸 알고 있었으며 그 행동이 가장 고마웠다고 했다.
혹시나 나 같은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리고 그가 자신의 결정을 밀고 나가야 하는 단계에 있다면 그저 응원을 해주거나 묵묵히 지켜보면 어떨지 조심스레 제안해 본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대기에 영향을 주면서 긴 시간이 흐른 후 미국 텍사스를 강타하는 토네이도가 될 수 있는 나비 효과처럼, 당신의 말 한 마디나 행동 하나가 상대에게는 큰 영향을 줄 수도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