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규칙적인 거 말고, 내 몸을 지키는 규칙
퇴사 후 두어 달 동안은 그냥 정신이 없었다. 할 일을 해치우고 나면 하루가 지나있고, 한 주가 지나있고, 한 달이 지나있었다. 여유 있게 뭔가 즐긴 시간이 있던 것도 아니고 그저 눈앞에 닥친 일부터 처리했을 뿐인데 이랬다. 당연히 퇴사 직후에야 밀린 집안일이나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게 될 거라 예상했지만 그 기간이 생각보다 길었다. 퇴사하자마자 내가 하려던 일을 준비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러다 석 달째쯤 접어들자 나를 호출하던 일들이 줄고 이제 좀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때부터 드디어 내가 새로이 할 일에 대한 공부도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책상에 앉는 시간이 늘어나게 됐다. 마침내 내 할 일을 온전히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신났다. 팬데믹 시절에 이미 재택근무 환경은 갖춰놨고 그때처럼 일하면 되겠다 싶었다. 남들 회사 가있는 시간에 맞춰 그 시간 동안은 온전히 책상에 앉아 이런저런 일을 했다. 그런데 이런 생활을 며칠 반복해 보니 잊고 있던 내 몸속 폭탄이 둠칫거렸다.
그 폭탄의 정체는 바로 '허리'였다. 지난 6편에서 내가 회사 다닐 때는 점심시간에 운동을 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내가 부지런히 운동을 했던 이유는 허리 때문이었다.
내 경우 앉거나 서는 자세는 바른 편이었으나 그와 별개로 허리에 무리를 주는 치명적인 생활 습관이 있었다. 무언가에 집중하면 그 집중이 끝날 때까지 계속 앉아있었다. 화장실도 안 가고, 밥도 안 먹고, 물도 안 마시고, 잠시 일어나는 일도 없었다. 이 습관은 회사를 다니며 더 심해졌고 이런 생활이 몇 년 쌓이니 결국 터져버렸다. 직장인이 된 지 만 5년이 조금 안된 어느 날 아침, 하반신에 감각이 없었고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그 상황을 유일하게 목격한 어머니가 소스라치게 놀라 울먹이는 목소리로 119에 신고했고 난 생전 처음으로 들것에 실려 구급차를 탔다. 병원에선 급성 추간판탈출증(허리디스크)이라 했다. 디스크가 튀어나오며 하반신 쪽 신경을 눌러 일시적으로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되어버린 것. 다행히 며칠 후 회복했지만 온전한 허리 상태가 될 때까지 긴 재활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때가 트라우마처럼 남아버린 내 입장에서는 '다시는 구급차에 실려가는 일이 없게 하겠다'는 생각이 강했고 그래서 아프지 않으려 운동을 열심히 했다.
내가 하고 싶던 일을 하게 되니 너무 신난 나머지 잠시 그 과거를 잊었다. 또 장시간 앉아있었고, 운동도 게을리했다. 그러다 허리를 삐끗하는 날이 오고 말았다. 삐끗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아, 맞다. 내 허리!'
인간은 왜 이리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모를 일이다.
나름 회사 다닐 때와 비슷한 생활 습관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해서 남들 출퇴근 시간에 맞춰 일하는 시간을 정했지만 그 이외의 무언가가 더 있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회사 다닐 때의 일과와 나의 일과를 비교할 때 어떤 차이점이 있나 돌아보았다.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느낀 주요 차이점은 다음과 같았다.
식습관
회사 다닐 때는 점심시간에 샐러드를 먹었다. 가끔 너무 지치는 날은 일반식을 먹었고 대체로 한식을 먹었다. 지금은 즉석밥에 반찬가게에서 산 반찬을 먹는다. 즉석밥은 잡곡밥이고, 반찬은 나름 여러 종류를 돌아가면서 먹으려고 노력 중이다.
운동
회사 다닐 때는 점심시간에 운동을 했다. 예전에 짧게 PT를 받은 적이 있고 필라테스도 꽤 오래 다닌 경험이 있어 매트에서 하는 맨몸운동을 선호한다. 하지만 가끔 땀 빼고 싶은 날은 회사 근처 공원을 빨리 걷기로 돌고 오기도 했다. 지금은 팬데믹 때처럼 집에서 매트를 깔고 유튜브를 통해 운동 영상을 따라한다. 컨디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20분 전후의 영상을 두 편(서로 다른 부위의 근력 운동 2편 혹은 근력 1편+유산소 1편 조합) 보기에 총 운동 시간은 35~45분 정도 된다.
걸음수
회사 다닐 때는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하기도 했고, 커피 사러 혹은 화장실 가려고 왔다 갔다 하는 일이 있고, 때로는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 공원을 돌아다니기도 했기에 최소 7천보 이상 걸었다. 지금은 반찬 사러 가는 날이 아니면 밖에 나갈 일이 없어 하루에 3천보도 안 걷는 날이 많은 것 같다.
외부활동
팬데믹 이전에는 악기 연주 소모임에서 활동했었다. 매주 같이 모여 합주를 하고 분기에 1회 정도 공연도 했다. 팬데믹 때 그 모임은 해체됐다. 팬데믹 이후에는 회사에서 진행하는 사내 교육 중 맘에 드는 게 있으면 신청해서 수강하곤 했다. 지금은 그런 거 없다......
식습관의 경우 생야채 섭취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사실 매주 3회 이상 샐러드를 먹다가 안 먹으니 뭔가 입이 쉽게 텁텁하고 뭔가 상큼함 혹은 아삭한 식감 - 이런 게 부족하다고 느끼던 차였다. 대놓고 '생야채가 먹고 싶다~' 생각하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샐러드를 그냥 사 먹기는 좀 비싸다. 오후 퇴근 시간 무렵 집 근처 슈퍼마켓에 가면 상추나 깻잎 등을 저렴하게 파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타이밍이라도 노려서 일주일에 최소 한 번은 먹자고 다짐했다.
운동의 경우 걸음수와 통합하여 개선을 도모했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간혹 밖에서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실내 운동 시간을 조금 줄이고 산책을 좀 넣는 방식으로 진행해도 좋을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팬데믹 때도 마스크를 쓴 채 산책을 주기적으로 다녔다.
이렇게 결정한 것에는 주변의 충고 영향도 있었다. 밖에서 충분히 햇빛을 쐬고 몸을 쓰는 활동을 해야지 안 그러면 불면증이 오는 등 생체리듬이 흐트러질 거라 경고해 준 분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 분에게 정말 고맙다.) 그때 그 경고를 듣고 검색하다 인상적으로 본 기사 및 글이 있다.
* 참고 1) "낮보다 아침에 햇빛 쬐면 건강한 수면 취할 수 있어"(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30410200004859
* 참고 2) 더 나은 수면과 더 많은 에너지를 위한 생체 시계 조절 방법(나이키)
https://www.nike.com/kr/a/regulate-your-body-clock-for-better-sleep
문제는 첫 번째 기사에 있는 것처럼 아침에 햇빛 쬐는 활동을 하기에는 나와 맞지 않는 면이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오전 및 오후 2시 이후에 일이 잘 되는 편이라 오전 11시에서 오후 2시 사이에 운동을 하거나 쉬는 시간을 갖는 편이었다. 선천적이라기보다는 회사 다니면서 후천적으로 이렇게 된 것 같긴 하지만 당장의 효율성을 포기하고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렵다고 느꼈다.
그래서 운동 시간을 조금 당기기로 했다. 원래는 오전 11시 30분에 했던 것을 오전 11시에 시작하는 것으로 30분만 당겨보자고 생각했고 그렇게 실천하고 있다. 이게 익숙해진 후 조금씩 당기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 아침에 운동을 하게 될 지도? 그리고 설사 계속 11시에 하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외부활동을 뭔가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내내 틀어박혀 있으니 누구와 대화할 일이 없다. 꼭 동적인 활동이 아니더라도 괜찮으니 사회적 연결망을 가질 수 있는 활동을 뭐라도 만들어볼까 고민했다. 마침 어떤 소모임에 들어갈 기회가 생겨 일단 지르자는 생각으로 가입했다. 주 1회 활동이고, 각자의 일상에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활동하는 모임이었다. 가끔 의견 충돌이 나기는 했지만 그게 사회생활 아니겠는가. 충돌은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잘 수습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행히 현재까지는 그렇게 되고 있다.
부모님의 은퇴가 다가오던 시절,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퇴직해도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루틴을 정립하지 않으면 나태해지고 생각 없이 살기 쉬우며 그 결과 사람의 삶의 방향성이 없어지고 결국 건강도 해친다고 했다. 그런 말을 익히 들었기에 나 또한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자 나름 재택근무하던 시절을 떠올려 일과를 계획했으나 시행착오를 피할 수는 없었다.
재택근무할 때는 회사의 일을 하는 거였다. 즉 타인에 의해 주어진 일을 하다 보니 솔직히 나름 꼼수도 피우고 게으름 피우는 시간도 있었기에 신체가 쉬거나 움직이는 활동이 발생했다. 또한 점심 식대를 지원해 줬기에 재택근무 시절에도 다소 비싼 샐러드를 먹을 수 있었다. 이런 차이점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어찌 보면 허리 통증 덕분에(?) 내 생활을 빨리 점검하고 나은 방향으로 고칠 수 있었다 생각한다. 이는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특히 운동과 산책은 더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 계속 고민하고 이래저래 바꿔보고 있다. 마치 내 건강과 일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0점 맞추기 혹은 퍼즐을 맞추는 느낌이라 꽤 재밌는 면도 있다.
이번에 다룬 이야기는 신체 건강을 위해 내 일상 규칙을 만든 이야기였다. 그런데 건강은 신체 못지않게 정신 건강도 중요하다. 요즘 세상은 정신 건강 지키기가 특히 쉽지 않은 것 같다. 다음 두 편에서는 내 정신 건강을 지키고자 했던 것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