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의 중요성, 아프고 나서야 깨닫다
차라리 일하기는 쉽다.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니 즐겁기까지 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회사를 그만뒀으니 당연한 상황일지 모른다. 하지만 고정 수입이 없고 1년 내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 탓인지 쉬기가 어렵다고 느꼈다. 누가 그러라고 시킨 건 아니다. 내가 나에게 성과를 강요하는 상황이라고 해야 하나.
회사 다닐 때와 달리 '일하기 싫다'는 상황은 아직까지 접하지 못했다. 다만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가 문제다. 또한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다 보니 가족이든 친구든 지인이든 혹은 제3자든 같이 시간을 보내야 할 일이 있으면 일은 잠시 멈출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게 일에서 손을 떼고 있을 때면 정체를 알 수 없는 묘한 불안감이 찾아오곤 했다.
일에 미친 사람들은 잠도 줄이고 주 7일 근무하기도 한다 들었다. 많은 스타트업 사례를 보면 창업자들은 그런 경우가 부지기수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11화(링크)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나는 잘 다뤄야 하는 내 몸속 폭탄(허리질환)이 있어서 쉬는 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직장인 때와 마찬가지로 평일에는 운동을 부지런하게 하고, 주 5일 근무를 지향했다. 쉬는 날은 주말로 정했다. 예전에 잠시 백수이던 때를 생각해 보면 평일에 남들 다 출근할 때 카페에서 멍 때리는 시간이 좋긴 했지만 아무래도 다른 사람과 약속 생길 때 일정을 잡으려면 주말에 나도 쉬는 편이 좋을 거라 생각해서였다.
처음에는 이렇게 주말에 쉬는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러했다. 몸이 아프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다. 온몸이 찌뿌둥하고 전반적으로 부어있었다. 머리가 지끈했다. 순환이 안되었나 싶어 부기를 완화해 주는 스트레칭을 유튜브에서 찾아 따라 했다. 그럼에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두통도 더 심해졌다. '그래도 일은 해야지' 생각에 억지로 노트북을 폈지만 일이 될 리가 없었다. 집중이 되지 않았고 일은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야 뭔가 되겠지 믿었건만 그게 다가 아님을 알았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다는 건 출근 도장이었다. 일을 착수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란 뜻이다. 여기까지는 기어서라도 의자에 가서 앉으면 됐다. 하지만 이후는 몸이 아프면 어려웠다. 앉는 상태를 유지하는 건 내 코어 근육의 몫이었으며 일하는 상태의 유지를 뜻했다. 아프니까 코어 근육에 힘이 들어갈 리가 없었다. 자꾸 자세가 흐트러지고 엎드리게 됐다. 또한 실제 일을 진행시키는 건 내 머리였다. 두통이 심하니 머리가 돌아갈 리가 없었다. 나의 뇌는 파업을 선언했으며 입력은 들어오지 않은 채 허공으로 흩어졌고 당연히 출력은 없었다.
결국 그날 점심을 먹은 후 나는 노트북 전원을 껐다. 쉬기로 했다. 끙끙 앓으며 진척되지도 않는 일을 붙들고 있는 것보다 빨리 회복해서 제 컨디션을 찾는 것이 업무 성과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약을 먹고 그날 오후 종일 드러누워 있었다. 머리가 아파서인지 잠은 오지 않았고 그저 멍하게 있었다. 그렇게 푹 쉬고 나니 다음날 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었다. 전날 멍 때리며 누워있어서 그런지 머리도 더 잘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다시 일이 잘 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새로운 아이디어도 갑자기 몇 가지 떠올랐다.
이 날의 경험 덕분에 알게 됐다. 아프지 않게 조심해야겠지만 어쩌다 아프게 됐다면 그 상태를 최대한 짧게 만들어야 한다는 걸. 즉, 아프면 일단 쉬어야 한다는-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아픈 상태가 길어지면 그만큼 일이 안 되는 기간이 늘어질 뿐이었다. 일해야 한다는 조급증을 버리고 일단 눈앞의 문제를 해결해야 전체적인 성과는 훨씬 잘 난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깨닫고 나니 문득 떠오른 사례가 있었다. 내 아버지다. 전형적인 일 중독자 스타일인 아버지는 쉰다는 걸 몰랐다. 하지만 어느 겨울에 감기에 걸린 후 상태를 방치했다가 결국 대학병원에 가서 치료받은 사례가 있었다. 그 과정에 들어간 시간과 돈을 생각하면 큰 낭비를 한 셈이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았으니.
나도 아버지의 유전자를 받았으니 아픈 날 그렇게 행동한 것일지 몰랐다. 그나마 아버지보다 빨리 깨닫고 다음부터는 아프면 쉬겠다 맘먹은 게 다행이랄까.
회사 다닐 땐 월급루팡 짓도 잘했고, '그냥 회사 가기 싫어서'라는 이유로 휴가를 내보기도 했는데 참 사람 알 수 없다 느낀다. 막상 내가 내 일을 하려니 쉬지 못하다니.
물론 원인은 스스로 알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금 돈을 벌지 못하니까', '1년 안에 성과를 내야 하니까' 등의 심적 압박이 쉬지 못하게 한다. 쉬어도 쉬는 게 아닐 때도 있었다. 몸은 쉬어도 내 머릿속에서는 계속 '이래도 되는 걸까',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거 아닐까' 등등의 잡생각이 돌고 있었으니.
어쩌면 그러지 말라고 그날 갑작스레 아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프면 나만 손해고, 기간이 길어지면 병을 키울 수도 있고, 빨리 멀쩡한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알려주려고. 그날은 몸이 아팠던 것이지만 정신적 휴식도 같은 이유로 필요하다. 머리가 안 돌아가서 멍 때리고 있던 것이었지만 그 덕분인지 다음 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으니. 그러고 보면 가끔 머리를 비워줘야 잘 돌아가는 걸 회사 다닐 때도 숱하게 겪어봤다.
문득 몇 달 전 읽은 클레어 키건의 단편소설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이 생각났다. 하인리히 뵐의 집에 단기간 거주하며 글쓰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주인공 '그녀'는 근방을 탐색하기도 하고 수영을 즐기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독문학 교수라는 사람이 찾아와 그녀가 이런 기회를 잡아놓고 한가하게 놀기나 한다며 꾸짖는다. 이 부분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감상을 메모했었다.
사람이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는데, 일하는 중간에 다른 무언가를 했다고 꾸짖는, 그저 책상에 앉아있어야만 일하는 줄 아는 멍청한 상사의 대표적인 모습을 보는 느낌이다. 특히나 창작 일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 색다른 경험, 낯선 체험, 제대로 된 휴식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데 엄청나게 도움이 될 텐데 말이다.
그렇게 감상을 적어놓고 정작 내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는데, 일하는 중간에 다른 무언가를 했다고 '내가 나에게' 꾸짖는 멍청한 상사짓을 한 거다.
스스로를 꾸짖는 짓은 이제 두 경우에 한하기로 했다.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할 때, 루틴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을 때. 그 외의 상황이라면 나 자신을 괴롭히지 말자고 결심했다.
알립니다: 연재 요일 변경(목→화)
안녕하세요, 김연큰입니다.
항상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분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이제 완결까지 두 개의 화가 남았는데요
남은 두 편이 올라가는 목요일이 모두 공휴일(크리스마스, 새해 첫날)이고, 그 두 날에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예정이라 연재 요일을 변경합니다.
두 편은 화요일(12월 23일 및 30일)에 발행할 예정입니다.
깊은 양해 부탁 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