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는 그냥 흔한 퇴사썰
"25년 상반기 중 난 회사를 나갈 거야."
24년 말에 P가 J에게 한 말이다.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었다. 입사하자마자 여러 이유로 실망했던, 그래서 1년만 채우고 나가겠다던 B사를 어느덧 만 3년이 넘게 다녔다. 시스템도 과거에 다녀본 회사들과 너무 달랐고, 문화적으로도 달라 직장인으로서 생전 처음 겪는 고초도 겪었고, 새로 담당하게 된 프로젝트의 목적은 P의 가치관에 어긋나서 업무를 하는 자체가 고통이었다. 월급을 주니까, 4대 보험이 보장되니까-라는 명분으로 버티기에는 한계가 왔다. 분명 누군가에게는 좋은 회사일 수 있으나, P에게는 맞지 않는 회사였다. 3년 넘게 버텼으면 오래 버텼다. 이제는 내려놓기로 했다. B사는 그와 맞지 않는 회사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P가 이직 시도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불황이 깊어진 상황에 각 회사는 몸집을 줄이려 애썼고 어쩌다 열린 채용 문은 매우 좁았다. P의 경우 경력상 시니어 레벨이다 보니 어쩌다 면접 기회가 잡히면 리더, 조직장 역할을 요구하는 곳이 많았다. P는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덜커덕 조직장을 맡았다가 과한 스트레스를 받아서 가능하다면 다시는, 최소한 한동안이라도 조직장을 하고 싶지 않았다. P는 솔직히 그런 의사를 밝혔고 그렇게 합격 문턱에서 탈락한 경우가 제법 되었다. P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무리해서 원하지 않는 보직으로 이직하는 건 또 다른 지옥으로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생각했다.
B사 재직 만 3년을 달성했을 시점에 P는 J와 진지하게 퇴사에 대해 논의했고, J는 내심 불안했지만 P의 행동력을 믿기로 했다. J는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불안도가 높아지는 타입이지만 P는 계획을 세워도 큰 틀로 세우고, 그 계획이 틀어져도 별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빠르게 대안을 찾는 타입이었다. P의 특성을 볼 때 야생으로 나가도 어떻게든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간 고생했는데 받을 건 받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냉정한 관점에서 세 가지 조건을 수행한 후 퇴사하기로 했다. 첫째, 연말정산을 회사에서 받을 것. 둘째, 24년에 대한 보상은 받을 것. 셋째, 25년 건강 검진은 받을 것.
그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한 시점이 25년 5월이었다. 조건을 충족하자마자 P는 퇴사 의사를 밝혔다. 이유를 묻는 조직장에게 회사에 대한 불만은 표하지 않았다. 회사 자체가 나쁘다기보다 P와 맞지 않는 회사일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저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어서, 직장인을 더 이상 그만하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그리고 6월 초, 마지막 출근을 했고 홀가분하게 회사를 나왔다. 사원증을 반납하고 사옥을 나와 P는 읊조렸다.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