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동차 운전을 처음 배울 때 신기했던 것은 기어를 D로 놓았을 때 멈춰있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따로 엑셀을 밟지 않아도 느리지만 차가 앞으로 저절로 나갈 수 있다.
웃기지만 그런 인식으로 인해 디폴트 상태에 대한 나의 생각이 달라지게 되었다. 디폴트 상태란 어떤 값이 따로 지정되지 않았을 때 미리 정해져 있는 기본값을 말하는데, 나는 예전에는 이런 디폴트 상태가 정지 상태라고 생각했었다. 주변에 어떤 힘이 존재하지 않을 때 멈춰있는 것이 당연하니까.
그러나 실제 우리 인생, 이 세계에 가만히 정지되어 있는 게 있을까?
위 자동차의 경우뿐 아니라, 돈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은행에만 넣어놔도 당연히 이자가 붙는다.
경제 또한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성장한다. 그래서 GDP수치 자체가 문제되기 보다는 GDP수치의 증가율인 경제성장률이 문제되는 것이다. 경제성장률로 봤을 때 GDP수치 자체는 높아졌다 해도 올해 성장률이 작년 성장률보다 낮으면 경제가 안 좋아졌다고 한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멈춰있지 않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내가 말하는 전진은 서양의 자기계발서에서 흔히 얘기하는 성장과는 다르다. 그러한 성장은 에고의 무분별한 확장일 뿐이다. 그러한 성장은 오히려 자신을 잃게 한다.
자동차의 예를 계속 이어가자면 에고의 무분별한 성장은 시속 100킬로로 달리는 자동차와 같다. 그러나 내가 얘기하는 전진은 바로 위에서 얘기한 기어를 D로 놓고 엑셀을 밟지 않은 상태이다. 느리지만 조금씩 앞으로 충분히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속도. 경사 있는 길에서도 쉽게 뒤로 밀리지 않을 정도의 힘.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역시 변화하는 한 존재로서 응당 취해야 할 딱 그만큼의 전진.
그것이 내가 삶을 살아가는 디폴트 상태이다.
* 커버이미지 : https://www.yourmechanic.com/article/what-is-direct-drive-g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