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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이너 Nov 18. 2019

나는 결혼식에 가지 않기로 했다

<마이너 라이프> 인간관계 편 - 결혼식

<마이너 라이프> 인간관계 편 - 결혼식


<마이너 라이프> 수칙
결혼식에 (잘) 가지 않는다. 






원래는 좀더 중요한 주제로 <마이너 라이프>의 두 번째 글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갑자기 결혼식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졌다(나 김마이너는 타고난 프로불편러라 본 글에는 다량의 불평불만이 함유되어 있으니 피곤하신 분들은 미리 살포시 백스페이스를 눌러주시길). 


왜냐하면 며칠 전 회사에서 청첩장을 받았기 때문이다. 로펌에서 변호사가 아닌 다른 직군으로 계신 분이었는데 나랑은 사적으로 얘기를 나눠본 적도 없고 심지어 이름도 잘 모르는 분이었다. 그 분도 내 사무실에 들러 청첩장을 건네주면서 무척 어색해했다. 동료들은 그래도 청첩장을 받았는데 결혼식에 가야하나, 축의금이라도 보내야 하나 고민했지만 나는 일초도 고민하지 않았다. 


1년 이상 왕래가 없었던 사람의 결혼식에는 가지 않는다. 물론 축의금도 보내지 않는다. 


위의 기준에 따라 나는 일초도 고민 없이 그 분의 결혼식에 가지도 축의금을 보내지도 않기로 결정했다. 물론 잘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마음 속으로는 결혼을 축하해 줄 수 있다. 하지만 딱 그 정도. 회사에서 형식적으로 알게 된 사이이고 개인적인 왕래도 없었는데 청첩장을 받았다는 이유로 굳이 결혼식에 갈 이유는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저냥 아는 지인들의 결혼식이나 연락이 없다 몇년만에 연락이 온 친구들의 결혼식에는 잘 가지 않는다. 물론 카톡으로 청첩장을 받으면 축하한다고 답은 해준다. 그래서 친구들을 보면 주말마다 이사람 저사람 아는 사람들 결혼식에 간다고 바쁜데, 나 김마이너는 한가한가 보다(내 주말은 소중하다!).  


지금까지 갔던 결혼식 중에 내 기준에 결혼식 다운 결혼식은 정말 손에 꼽는다. 그런 결혼식은 분위기부터 다르다. 웨딩홀이 얼마나 화려하고 고급스러운지, 하객들이 얼마나 많은지, 식장 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이런 것과 상관 없이 정말 신랑신부를 축복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런데 내가 갔던 대부분의 결혼식은 그렇지 않았다. 다들 웨딩플래너가 계획한 대로 깔끔하게 식이 진행되었지만 신랑신부가 식의 주인공이 아니라 식의 들러리처럼 보였다. 말하자면 해야 되기 때문에 하는 그런 결혼식이란 말이다.

 

본디 결혼식이란 것은 한쌍의 커플이 부부가 되는 신성한 결합을 진심으로 축복하기 위한 자리였을 것이다, 본질은. 그러나 지금의 결혼식은 과연 그러한가? 

같은 회사에 다녀서, 별로 친한 사람은 아닌데 청첩장을 받아서, 애매하게 아는 사이인데 결혼식에 안 가면 앞으로의 관계가 껄끄러워질 것 같아서 등등의 이유로 결혼식에 가지 않는가? 

그래서 결혼식을 한다는 지인의 소식에 축하하는 마음이 들기 보다는 의무감에 가야 하는 일 같이 느껴지지 않는가.  


나 또한 그랬다. 왠지 모를 의무감과 부채감에 친하지도 않은 지인들의 결혼식에 가곤 했는데 결혼식장에서 멀뚱히 식을 보고 있는데 '내가 이 결혼식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있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이 우러나오지 않는데 의무적으로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은 나에게도 결혼식을 하는 사람에게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는 사람들의 결혼식에만 가기로 마음먹었다.


축의금은 또 어떠한가? 

축의금은 본래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부부에게 없는 살림에 보탬이 되라고 십시일반으로 도와주는 좋은 제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축의금이 그 본질을 잃고 골치 아픈 겉치레가 되었다.    

내 마이너 철학상 겉치레는 항상 불필요한 고민들을 수반한다.

  

청첩장을 받아서 결혼식에 가긴 가지만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얼마를 내야 하는지
같이 가는 다른 사람들은 얼마를 내는지
나만 적게 내서 나중에 욕먹는 것은 아닌지 
결혼식을 호텔에서 한다던데 그럼 축의금을 더 내야되는 건지
(아직 결혼을 안 한 경우) 그런데 이 사람은 나중에 내 결혼식에 올지
(이미 결혼을 한 경우) 이 사람이 내가 결혼할 때 축의금을 얼마 냈더라? 설마 축의금 안 냄??


어차피 똑같은 금액의 돈을 냈다가 다시 고대로 회수할 것이면서(이마저도 잘 안되지만) 사람들은 왜 이렇게 신경 쓸 거리만 늘어나게 하는 복잡한 일을 벌이는 것일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축의금은 그냥 그날 결혼식당?에 가서 좀 비싼 밥을 먹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안 그러면 위에서와 같이 내가 축의금을 얼마 냈고 나중에 얼마를 회수해야 하니 하는 복잡한 생각들이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김마이너는 결혼식당에 가면 웬만하면 밥을 먹고 온다(웃음).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주위 사람들은 이렇게 반문한다. 너처럼 하면 속은 편하겠지만 사회생활이 되겠냐고. 결혼식에 가지 않으면 나중에 그 사람과 지내기 껄끄러워 지지 않냐고. 그러나 나는 내 소신대로 행동할 뿐이고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그 사람의 과제이기 때문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내 소신은 이런데 그 사람과의 관계나 다른 사람들 시선 때문에 억지로 결혼식에 가는 것은 웃긴 일이 아닐까. 결혼식에 오지 않았다고 관계가 틀어진다면 어차피 딱 그 정도의 관계였던 것이고 그 이상의 관계였다면 결혼식에 갔을 것이다. 무엇보다 내 시간과 돈은 소중하다.  


내 결혼식도 마찬가지다.     

얼굴만 아는 지인이라든지, 친하지도 않은 회사 사람, 신랑신부 외모를 품평하거나 결혼식 밥이 맛없다고 불평할 것 같은 사람들 앞에서 내 인생 한번 있는 결혼식을 치르고 싶지는 않다. 정말 진심으로 내 결혼을 축복해주는 사람들 곁에서 결혼식을 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결혼식에 하객이 많이 오지 않을 것을 걱정하지만 나는 오히려 하객이 적었으면 한다. 줄이고 줄여야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는 사람들만 남을테니까. 미니멀리즘이 이런 데도 적용되는지 모르겠다.                          


* 커버이미지 : https://www.express.co.uk/entertainment/films/972492/Movie-weddings-location-wedding-Love-Actually-Notting-Hill-Four-Weddings-and-Fune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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