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 라이프> 의식주 편 - 음식
<마이너 라이프> 의식주 편 - 음식
<마이너 라이프> 수칙
맛있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몸에 필요한 정도로 건강하게 먹는다.
"버섯이 꼭 소고기 같아요!"
"죽순에서 전복 맛이 나요!"
티비의 먹방 프로그램을 가끔 보고 있으면 저런 비스무리한 말들이 흔히 나온다. 맛이 없어도 그럴듯한 맛평가를 해야 하는 연예인의 고뇌를 심히 이해하는 바이지만, 저런 말을 듣노라면 "저게 대체 무슨 말이지?"란 생각이 드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버섯은 버섯일 뿐인데 버섯에서 왜 소고기 맛이 난다고 하는걸까.
소고기 맛이 난다는 표현은 일종의 맛있다는 것의 우회적인 표현일까.
그럼 버섯은 그 자체로는 맛이 없다는 것인가.
저 사람은 실은 소고기가 먹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버섯은 버섯 그 자체로 맛이 있다.
소고기 또한 소고기대로 맛이 있다.
나는 버섯은 버섯대로, 소고기는 소고기대로 그 맛을 온전히 느끼고 싶지, 버섯과 소고기의 맛을 착각하거나 동시에 음미하고 싶지는 않다.
예전에는 극소수의 상류층만이 미식에 대한 권리를 향유했다. 서민들은 배고픔을 면하기에 바빠 미식을 향유할 기회와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에는 일반 서민들도 웬만큼 미식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에는 다양한 길거리 음식서부터 고급 레스토랑까지 맛있는 게 넘쳐나고 미디어에서도 각종 맛집 투어, 먹방 방송이 판을 친다. 사람들은 매끼 맛있는 걸 먹기 위해 강박적으로 블로그를 검색하고 밤에는 배달 어플을 통해 야식을 숙제처럼 시켜먹으며 직접 먹지 못할 때는 다른 사람의 먹방을 보면서 대리만족한다. 서민들은 매일같이 고급 레스토랑에 가지는 못하지만 가끔은 미슐랭 별 개수를 따지며 파인다이닝을 할 수 있다. 이처럼 먹을 것에 대한 열망이 심했던 시대가 또 있을까.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이 인터넷상에는 반농담식으로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 산다"는 등의 먹는 것이 인생 최고의 즐거움인 마냥 얘기하는 말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요즘 세상의 식습관에는 엄청한 탐욕이 숨어있다.
생명체로서 영양소를 취득하기 위해 먹을 것을 추구하는 행위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요즘 세상의 식습관에는 그런 자연스러운 정도를 넘어서서 인간의 탐욕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일단 현대인들은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너무 많이 먹는다. 밥을 먹고 (밥보다 칼로리가 높은) 디저트도 먹고 자기 전에도 야식이란 명목으로 또 먹는다. 먹방이라는 것을 보면 일반인들이 감히 엄두도 못낼 만큼의 음식을 앞에 쌓아두고 다 먹어치우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여기서 놀라운 점은 그 사람이 결국 저걸 다 먹는 게 아니라 이걸 많은 사람들이 보고 좋아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탐욕은 담백하고 소박한 음식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만든다. 그래서 어느 순간 우리의 혀는 '맵고 짜고 단거'에 길들여져서 그런 맛을 맛있는 것으로 규정해 버렸다. 티비의 맛집 프로그램을 틀거나 인터넷에서 맛집을 검색해 보라. 맛집이라는 데서 팔고 있는 음식 거의 대부분이 다 '맵고 짜고 단거'일 것이다.
얼마 전에 KFC에서 출시한 새로운 메뉴를 보았다. 전국민이 좋아하는 음식 top 2로 꼽는 치킨과 피자를 합친 '치짜'였다. 닭가슴살 치킨 위에 피자처럼 베이컨과 치즈 등 토핑을 올린 메뉴란다. 자극적인 맛의 치킨과 피자를 각각 먹는 걸로도 모자라서 그 둘을 한꺼번에 먹기 위해 합친 것이다. 영양성분표를 굳이 보지 않아도 얼마나 몸에 안 좋을지 알만하다. 먹는 것에 대한 지치지 않는 탐욕은 이런 기형적인 메뉴를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김마이너도 예전에는 그런 음식들을 즐겨 먹었지만 이제는 그런 자극적인 음식들이 더 이상 맛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전환점은 사찰음식으로 유명하다던 한 절에서의 1박 2일 템플스테이 경험이었다. 주지스님과의 차담에서 음식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주지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음식은 먹고 싶은 욕구에 따라 그냥 먹는 게 아니고 그를 통해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얻는 약이에요"
그 전에는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던 생각이었다. 그냥 먹고 싶은 대로 먹는 게 능사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몸에 필요한 약을 먹는다고 생각하니 마냥 아무거나 먹을 수는 없었다. 그 이후 몸에 안 좋고 자극적인 음식은 저절로 피하게 되었고 이제는 자연스레 입맛까지 바뀌어 정갈하고 소박한 밥상이 좋아지게 되었다.
요즘 시대의 먹을 것에는 탐욕이 서려있고 그것은 곧 탐욕적인 에고의 반영이다.
라는 게 고로 내 생각이다. 에고는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언제나 확장하려고 한다. 그래서 더 많은, 더 자극적인, 더 복잡한, 버섯과 소고기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음식을 원한다. 사찰음식으로 유명하신 정관스님에 대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에는 유명 레스토랑에서 일했던 셰프가 정관스님의 사찰음식을 극찬하면서 자기가 만들었던 음식은 '에고푸드'에 불과했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말처럼 우리의 음식에는 칼로리 만큼이나 에고가 너무 많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맛있는 걸 좋아해서 아무리 많이 먹어도 하루 삼시 세끼이다. 우리의 위 용량은 정해져 있다. 너무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면 건강이 안 좋다. 몸에 필요한 정도로만 건강히 먹는 것이 미덕이다. 에고푸드는 우리의 몸을 해한다.
이처럼 우리의 탐욕이 먹을 것으로 가장 쉽게 표현되는 이유는 미각의 즉각적인 측면 때문이다. 음식을 입에 넣는 순간 우리는 바로 맛을 느낄 수 있다. 자극과 감각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다.
여유로운 오후에 쐬는 햇빛의 따스함
식사시간에 나누는 가족들과의 정감어린 대화
지나가는 길에서 우연히 본 꽃의 아름다움
등등
우리에게는 먹을 것 말고도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많이 있지만, 바쁜 현대인들은 그런 것들을 누릴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너무나 간편하고 즉각적으로 쾌락을 얻을 수 있는 음식에 집착하는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