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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이너 Jan 16. 2020

아이처럼 살아라

<마이너 라이프> 사상 편 - 아는 무지

<마이너 라이프> 사상 편 - 아는 무지


<마이너 라이프> 수칙                                                                                                                           아이의 눈으로 세상의 경이로움을 받아들여라. 






며칠 전 밤길을 산책하면서 문득 하늘을 보았다. 별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요즘에도 별이 보이긴 보이는구나. 신기해서 한참 바라보고 있었더니 눈이 적응을 했는지 별이 하나둘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일자로 이쁘게 서있는 별 세 개가 눈에 들어왔다. 어릴 때 배운 것 같은데 인터넷에 바로 찾아보니 오리온자리의 허리 부분이었다. 



별을 본 것도 오랜만인데 육안으로 별자리를 발견하니 느낌이 굉장히 새로왔다. 새삼 내가 이 광활한 우주 안에 한 구성원으로 속해있다는 경이로운 감정에 휩싸였다. 어릴 때는 밤하늘에서 별자리를 찾아본다고 난리를 쳤었던 것 같은데, 별자리 같은 것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있다가 이렇게 보게 된 것이다. 이렇게 고개를 들어 잘 살펴보면 별자리도 찾아볼 수 있는데 왜 진작 그러지 않았을까. 


세상을 말한다. 

아이에서 벗어나서 어른이 되라고.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계속 아이처럼 살고 싶다고.  

아이처럼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세상에 널린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아이들은 별 것 아닌 것에도 놀라워하고 즐거워한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뭐 그렇게 재밌지"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그 순간에 경이로움을 느끼며 몰입한다. 사실 그런 능력이 인생을 잘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능력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어느순간 그러한 능력이 잃어버린다. 어른이 되면서 많은 지식을 머리에 넣고 많은 경험을 하고 사회에 훈련을 받으면서 우리는 세상에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그 익숙함은 편하기도 하지만 세상의 경이로움을 외면하게 만든다. 우리는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우리는 더 이상 작은 것에 즐겁지 않다. 그래서 통장잔고에 10억은 있어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착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소한 것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어린아이의 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김마이너는 어릴 때 책을 무척 좋아했다. 중학교 때 호메로스나 오디세우스 같은 대서사시를 읽으면 잠도 잊고 그 세계가 빠져들기도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내가 책읽는 모습은 좋아했지만 정작 아버지가 신문 같은 것을 제외하고 책을 읽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나는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아버지는 왜 책을 읽지 않냐고. 아버지의 대답은 자기도 어릴 때 책을 좋아했지만 어른이 되면 그런 책들이 눈에 안 들어온다고 했다. 그때는 아버지의 대답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냥 책이 읽기 싫어서 하는 변명 같았다. 이렇게 재밌는데 안 읽는다고?


그러나 지금 나는 그때의 아버지와 같아졌다. 어릴 때 즐겨읽던 소설책을 사서 읽으려고 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니 이따금씩 화가 난다. 이렇게 바쁜데 한가하게 소설책 읽을 시간이 어딨어! 어린 시절에는 눈이 책장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면 지금은 눈과 책장 사이에 무수한 고민들이 개입한다. 내일까지 써야 하는 서면들, 자기의 사건을 우선적으로 처리해 달라고 독촉하는 고객들의 전화와 문자, 새벽까지 울리는 업무메일들, 지금 내가 잘 살고 있나,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끊이지 않는 생각들. 나는 어느새 보통의 어른이 된 것이다. 


어른들은 항상 할 일이 많다. 머릿속에는 항상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처리하고 다음에는 어떤 일을 처리하지란 생각이 맴돈다. 인생은 어느 순간 숙제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바쁘게 살다보면 세상의 즐거움, 순간의 아름다움을 놓치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상태를 벗어나기란 어렵다. 왜냐하면 바쁜 생활과 막중한 책임은 내 몸을 피곤하게 할지라도 내 에고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학계에는 예전부터 이런 말이 내려온다.  

학사는 난 이제 모든걸 다 안다고 생각하고

석사는 공부를 더 해보니 모르는 게 조금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박사는 생각보다 모르는 게 많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인생을 위 구절에 빗대어 본다면, 아이들은 학사와 비슷하고 보통의 어른들은 석사와 비슷하고 소수의 어른들만이 박사의 단계에 다다른다. 아이들은 단순히 무지의 상태이고 대부분의 어른들은 '그냥 무지'의 상태를 벗어나 '아는' 상태에 도달하고 평생을 그 상태에 정착하여 자기가 아는 것만이 다라고 생각하고 살다가 죽는다. 그러나 소수의 깨어난 사람들만이 '아는 무지'의 상태에 다다른다. 그 상태는 모든 것을 배웠지만 대부분의 어른들과 같이 이 세상을 다 안다고 자만하지도, 그래서 자기만의 틀에 세상을 맞추려고 하지 않고 아이들과 같이 호기심의 눈으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상태 말이다. 그 상태를 예로부터 '아는 무지'라고 불렀다. 이 '아는 무지'의 상태가 내가 말하는 '아이처럼 살고 싶다'가 표현하는 상태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에게는 철부지로 보이기 쉽다. 예수와 붓다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처럼 살고 싶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순수하게 바라보고 싶다.

소설책에 몰입해서 밤을 새고 싶다.

밤하늘에 뜬 별자리를 보고 가슴 뛸듯 기뻐하고 싶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어른들보다는 어린 아이에게서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 커버이미지 : https://www.cetaphil.com.au/article/child-ecz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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