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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이너 Aug 30. 2019

미니멀리스트 로펌변호사가 사는 법

마이너 변호사의 로펌 생존기 제2편 - 인간관계와 일하는 이유

지난 편에서는 사무실과 업무처리 방식에 대해서 다루어 보았는데 이번 편에서는 예고한 대로 로펌에서의 인간관계나 일을 하는 이유 등 좀더 무게 있는 주제에 대해서 얘기해 보려고 한다. 무게 있다고 하지만 실은 미니멀리스트 김마이너가 로펌에서 겪는 '아싸 부적응기'의 연속이라고나 할까(웃음). 






1. 로펌에서의 인간관계 : 김마이너는 아싸?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김마이너는 로펌에 다니는 일개 변호사일 뿐이고 내가 얘기하는 게 로펌생활의 전부는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로펌에 대한 엄한 선입견을 심어주고 싶은 생각은 없기에...


로펌마다 조직문화나 분위기가 다 다르겠지만 보통 대형로펌이라고 하는 데는 개인주의 문화가 강한 편이고 또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로펌에서 일을 하는 방식을 설명하자면 대형 사건이 아닌 이상 사건마다 보통 2~3명의 사람들이 같이 일을 하는데 가끔 회의를 해서 방향을 정하고 일을 분담하고 나면 기본적으로는 각자 분담한 일을 처리하면 된다. 각자 이미 갖고 있는 사건들이 많아 바쁘기 때문에 업무 협의도 실제로 얼굴 보고 이루어지기 보다는 이메일이나 통화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지난 편에서 얘기했듯이 로펌에서는 사무실이 각자 방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공간적 특성이 개인주의 문화에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일반 다른 회사는 나도 안 다녀봐서 잘 모르지만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식사시간이 되면 당연히 다 같이 우루루 밥을 먹으러 가는 모습이 나오는데, 로펌에서는 각자 방에 박혀 있기 때문에 마치 대학교 때 마냥 "오늘은 누구와 밥을 먹지?"하고 일일이 약속을 잡아야 한다. 김마이너에게 이는 너무나 귀찮은 일이어서 그냥 밖에서 빨리 혼자 먹던지 아니면 샌드위치 같은 것을 사서 방에서 먹는 경우가 많다(내가 꼭 아싸여서 그런 것은 아니다... 진짜다...). 


물론 나도 동료들과 어울릴 때는 두루 잘 어울리고 친하게 지내는 편이다. 뚱딴지 같지만 회사를 다니는 데 있어서 좋은 동료들을 곁에 두는 것은 참 중요한 것 같다. 근데 이 글에서 하고 싶은 얘기는 그런 얘기는 아니고.  


미니멀리즘을 접하게 된 후 달라진 게 있다면 간혹 동료들과 하게 되는 얘기에 딱히 공감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료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성취지향적인 친구들이 많아서 그런지 뭔가 물질주의적인 얘기가 많이 나오곤 한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 월급이 다른 회사 월급보다 조금 적다느니, 누가 명품 가방이나 외제차를 샀다느니, 부자가 되려면 부동산 투자를 어디에 어떻게 해야 되는지, 돈 많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든지 등등(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건 다른 회사나 집단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런 이야기에 도통 흥미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나 김마이너는 이 곳에서 완전한 마이너이다. 


이럴 때면 우리네 인생은 어떻게 보면 결국 누가 더 돈을 많이 벌고 갖고 있는지로 승부를 겨루는 시합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학창시절에는 명문대에 입학하기 위해, 대학교 때는 이름을 알아주는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취직을 하고 나서는 이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갖기 위해 다들 한 곳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트랙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위와 같은 주제의 얘기가 나오면 괴짜 변호사는 대화에 잘 참여하지 않고 먹던 밥을 그냥 맛있게 먹는 데 집중하는 편이지만, 가끔 '나는 그런 비싼 물건들이 별로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나는 별로 남들보다 그렇게 돈을 더 많이 벌고 쓰고 싶지 않은데 ', '없으면 그냥 없는대로 살면 되지' 하는 어떻게 보면 약간 속편한 얘기를 하면 동료들은 나를 특이하게 바라보며 농담식으로 다음와 같이 말할 때가 있다. 


"한창 젊은 나이에 더 많은 걸 성취해야 하지 않겠느냐"


"왜 이렇게 패배주의적으로 변한 것이냐" 


"그럼 로펌에는 왜 다니냐"


미니멀리즘에 대한 내 생각들이 확고해지고 삶의 방식이 그러한 생각들에 의해 다듬어지고 난 후 나는 더 이상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 같은 물질적인 것들로 나를 규정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비싼 물건이나 남들이 하지 못하는 고급진 생활 같은 것을 추구하기 보다는 내가 의미있다 생각하는 경험들과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나만의 생각들로 나 자신을 채우고 싶다. 


남들이 쉽게 갖지 못하는 비싼 물건을 가지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모으기 위해 사는 것만이 성취하는 것이고 성공적인 삶은 아니지 않을까? 오히려 인생에서 본질적인 것, 성공적인 삶이란 내면의 성장에 있는 것이지 그런 겉모양에 대한 것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인생은 너무나도 허망하게만 느껴질 것 같다.  


그런데 나머지 얘기는 그렇다 치고 "그럼 로펌에는 왜 다니냐"라는 마지막 질문은 나 스스로도 선뜻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러게... 물욕도 없고 생활하는 데 돈도 그렇게 많이 안 드는 내가 높은 연봉을 주는 대신 죽어라 일하는 로펌에는 왜 있는거지...?". 



2. 김마이너가 (뼈빠지게) 로펌에서 일하는 이유


그다지 물욕도 없고 생활하는 데 돈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는다면 나는 왜 고액연봉을 주는 대신 뼈빠지게 일을 시키는 로펌에서 생고생을 하고 있는 것일까? 위와 같은 질문은 내 머릿속에서도 한동안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떠돌아 다녔다. 그렇다. 미니멀리스트인 김마이너가 로펌에서 뼈빠지게 일하는 모습은 누가 봐도 어딘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그말인 즉슨 돈 때문에 회사를 다니는 것인데 나는 물욕도 별로 없고 돈도 그다지 많이 필요하지 않으니 돈을 벌기 위해 회사에 열심히 다닐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닌가. 


그러나 돈이 회사를 다니는 유일한 이유일까?


선배들과 술을 마시고 많이 취하게 되면 가끔 우리가 무슨 영광을 누리자고 이렇게 힘들게 일을 하고 있는지 한탄조로 얘기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또 자연스럽게 자조적인 어투로 고액연봉을 주니 돈 때문에 참고 일하는거지, 돈 때문에 일하는거지 별거 있냐는 얘기가 나오곤 한다. 


"돈 때문에 회사를 다닌다"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쇼미더머니>에서 지원자들이 여기 왜 나왔냐는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돈 벌러 나왔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떠오른다. 그런 말은 솔직하고 쿨한 대답으로 들릴 순 있어도 어딘가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물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회사에 다니고 일을 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점이다. 그것은 노동의 성스러운 측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일을 함에 있어 사람들은 그 일로 얼마를 버는지 말고도 그 외에 그 일을 하면 재밌는지, 보람이 있는지 등 하는 일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또 실제로 우리는 일을 하고 그 대가로 월급을 받지만 그 과정에서 월급 외에도 즐거움, 보람, 성취감 같은 것들을 얻는다. 그런데 그러한 가치들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싸그리 무시되고 돈만이 일의 목적이고 결과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내 경우도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고액연봉을 주는 로펌에 들어온 케이스다. 그러나 미니멀리즘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고 난 후에는 물질적인 것들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 방향으로 바뀌게 되었고 그렇게 가치관이 변한 마당에 내가 굳이 로펌에서 열심히 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란 회의감이 든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계속 로펌에 남아있는 이유는 아직까지는 여기서 일을 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고 경험하는 것도 많기 때문이다. 여기서 치열하게 일하는 지금의 시간들이 나를 성장시키고 더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돈 때문에 일한다란 생각을 내려놓으니 일할 때도 한결 마음이 편해지고 좀더 가뿐하게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미니멀리스트 김마이너가 로펌에서 겪는 얘기들을 나누어 보았는데, 누구에게는 안물안궁(!)의 이야기일 수 있지만(웃음) 그냥 '이 사람은 이렇게 사는구나' 하고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그럼 다음에는 좀더 재밌는 주제의 글로 돌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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