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딸기는 이제 사시사철 나오는 만년과일이다.
딸기가 한 다라이에 9900원이라는 마트 전단지를 봤다. 설 대목이 지난 지 사흘쯤 되는 날이다. 11월에는 하얀 스티로폼에 알알이 포장된 채 담겨있는 딸기가 2만 원쯤 하던 게 기억에 남아있다. 내가 알기로는 딸기는 봄철 과일인데 어느 순간부터 겨울딸기가 달다며 겨울에 딸기가 잔뜩, 제철인 것 마냥 나온다. 크리스마스가 딸기의 대목이고 그 뒤로 설까지 지나가고 나면 딸기는 떨이 품목이 된다. 크리스마스 케이크에도 설날 제사상에도 오르지 못할 딸기는 너무 익어 무르기 직전이거나 모양새가 예쁘지 않은 것들과 섞어 두 박스 혹은 세 다라이씩 묶여 팔리기도 한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사실 야생 딸기는 봄도 겨울도 아닌 여름이 제철이란다. 여름에 딸기를 먹어본 적이 있나? 냉동딸기나 청이 들어간 스무디나 주스만 생각이 난다. 여름에 동그랗고 빨간 제철 딸기를 구경해 본 기억이 없다.
하우스로 재배를 하면 한 철 이르게 수확을 할 수도, 아니 어느 때에도 구애받지 않고 수확을 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제철인지 아닌지 겨울인지 여름인지도 모르게 됐다.
문득 딸기랑 내가 겹쳐 보인다.
어릴 때 철이 일찍 들었다며 손이 덜 가는 아이구나 하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때엔 어른스럽다는 말이 아주 마음에 쏙 드는 칭찬이었다. 그래서 계속 그런 말을 들을 수 있게 예의 바르게, 착하게, 시키는 대로, 말썽 부리지 않고 부모님과 어른들이 튼튼하게 지어놓은 하우스 안에서 차가운 바람도 따가운 햇살도 징그러운 벌레도 모르고 자랐다.
영영 그렇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이 되니 덜컥 나가야 하는 순간이 왔다. 벌써?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남들은 어떤가 싶어 주위를 둘러봤다.
내가 주어진 물만 마시고 비닐에 걸러져 오는 햇빛에 만족하고 있을 때, 옆에서는 뿌리를 더 넓게 펼쳐서 물을 모으고 잎을 더 높이 틔워서 햇빛을 모으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은 금색 완충제를 두르고 하얀 스티로폼 박스에 앉아서 투명 플라스틱뚜껑을 쓰고 있었다.
반대쪽을 바라보니 하우스 밖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리저리 꺾이고 구부러졌지만 오히려 독창적인 모양이 인상적이었다. 유기농이라는 스티커를 받은 채 더 높은 값을 받는 과일이었다.
종종 내 자리가 어디에 있을까, 있기는 한 걸까 의문이 든다.
누구는 품종이 좋아서, 누구는 유기농이라 비싸게 팔리는데 나는 특별한 품종도 아니고 유기농도 아니고 심지어 제철마저 아닌 그저 그런 딸기 같다.
크리스마스와 설이 지나고 나서 빨간 다라이에 쏟아내듯 담겨 세 묶음에 만원이 안 되는, 설탕을 듬뿍 넣어 잼이나 스무디로 만들어야 하는 작고 무른 딸기. 이르게 나오는 여름 과일들에 밀려서 매대에서 사라지는 딸기.
시간이 더 있었으면 제철을 찾을 수 있었을까? 과일도 생선도 아니지만 내게도 제철이 있으면 좋겠다. 사시사철 나오는 하우스 과일은 왠지 어느 순간에도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것처럼 느껴져서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