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처방

겨울엔 눈을 감고 쉬기.

by 김영

최근에 안과를 자주 갔습니다. 겨울이라 그런지 눈이 자주 건조하고 뻑뻑해서요.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눈물에는 소량의 기름이 포함되어 있는데 눈물이 나와야 할 때 잘 나오지 않으면 눈물샘에서 물은 날라가고 기름만 남아서 자꾸 눈물길을 막아버린대요.


눈에 쌓인 기름을 짜내니 눈이 시큰시큰합니다. 개운한 건지 따가운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저 눈앞이 눈물과 안약 때문에 흐릿해지던 것만 기억납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옆방에서 눈찜질을 받고 가라는 말로 진료가 끝났습니다.


불 꺼진 방에 치과 의자 비슷한 의자가 덩그라니 있습니다. 그 위에 앉자 간호사 선생님께서 눈 위에 안대를 올리고 찜질용 기계를 올려놓더니 10분 뒤에 오겠다며 담요까지 몸에 덮어주십니다.


눈을 감으니 마음이 놓입니다.

의사 선생님이 허락하신 합법적인 휴식 같아요.


일분일초가 급하게 느껴지고 눈 깜빡하면 새로운 정보가 끝도 없이 나타나는 대격변의 시대에,

나를 제외한 사람들이 모두 제각기 목표를 세우고 나름의 길을 향해 달려가는 대경쟁의 시대에,

일단 뭐라도 따라가기 급급해 뭘해야 할 지도 모르고 이것저것 건드리며 애쓰기 바빴던 나는

그 안에서 드디어 혼자가 됩니다.


새롭게 들어오는 정보도 없고,

새롭게 비교할 누군가도 없고.

오직 따스한 온기, 안락한 의자, 조용한 공기와 나만 있습니다.


외따른 공간에 나홀로 있는 건 꽤나 기분이 좋은 일입니다.


문 하나를 두고 밖에서 들리는 생활소음은 모두 다른 세상 이야기 같습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으니 아무도 날 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눈을 뜨면 보이는 대로 옮겨가던 생각의 굴레도 멈춰있고 쉼없이 돌아가는 생각에 꼬리를 물던 걱정도 가만히 누워있습니다.


눈 위에 올려둔 따뜻한 기운이

아래로

아래로

한껏 젖힌 고개를 따라 얼굴을 훑고 가슴을 쓸어 마음 안으로 흘러갑니다.


휴식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다음 걸 하지 못하는 걱정에 전전긍긍하기 바쁜 시간일랑 모두 잊고 그저 처방에 따라 안락한 의자에 얇은 담요를 덮고 따뜻한 온기를 누립니다. 적당한 무게로 눌리는 두 눈은 다시 뜨여지지 않아도 좋을 것만 같이 안온합니다. 목 아래로 덮인 담요 아래 온몸은 늘어질 때로 늘어져 조금의 힘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아니, 조금도 힘을 주고 싶지 않습니다.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던 이런저런 생각들이 차곡차곡 접히고 쌓여갑니다. 쓸데없이 꼬리를 물던 걱정을 싹둑싹둑 잘라버리고 생각을 하나 둘 멈춰버립니다. 기름진 걱정이 따뜻한 온기에 녹아 사라지고 머릿속은 점점 담백해집니다.


안과에서 제대로 쉬는 방법을 처방 받았습니다.

두 눈을 감고, 생각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싹둑싹둑 잘라내고 온 몸에 힘을 빼는 것.

따뜻한 눈찜질과 포근한 담요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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