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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 Jan 06. 2022

아무래도 커피를 끊는 건 못하겠다

나에게 커피란?


청소년기, 제법 고지식한 경향이 있었다. 술이야 당연히 허용되지 않지만, 커피도 마찬가지였다. 어른이 되면 제 알아서 알게 되는 때가 오겠거니 여긴 것이다.


밤샘 과제로부터 연일 피로에 절여지는 게 일상이던 대학 때에도 스무디만 고집했다. 카페인 충전이 필요하다며 우당탕탕 카페로 달려가는 동기들에게 늘 '한약 같은 걸 그 돈 주고 사먹는 거냐'며 취향 존중도 못하던 때였다. 좌우지간 앞으로도 내가 커피를 마실 일은 추호도 없을 일이라며 호언장담까지 했었다.





"아무래도 커피를 끊는 건 도저히 못할 것 같아요."


스물 일곱, 커피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다. 물 대신 커피가 된 지는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그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시작 지점은 아마도 직장 생활일 것이다. 분명 학교를 다닐 땐, 달콤한 스무디만 먹어도 쏟아지는 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직장인이 되어 사무실 제 자리에만 앉으면 어떤 짓을 일삼아도 고개가 떨궈졌다. 억울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헤드뱅잉을 회사를 다니면서 배우게 될 줄은 몰랐다.


허벅지를 꼬집어도 잠시였다. 뺨도 쳐봤지만 아프기만 했다. 세수를 하고 와도 잠시 후면 다시 졸렸다. 바람 쐬고 와도 효과는 아주 잠시 뿐이었다.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나는 커피로 수혈을 한다는 선임을 따라 카페로 향했다. 화들짝 놀라 정신이 깰 정도로 쓴 커피가 필요했다.


난생 처음 입에 댄 아메리카노는 정말 썼다. 여전한 한약 맛이었다. 눅은 정신머리가 삐죽 짜릿하게 섰다. 그 이후로 묘한 이끌림에 의해 몇 차례의 아메리카노를 반복하다 바닐라라테에 정착하게 되었다. 명백한 카페인의 노예가 된 것이다.




아침에 한 잔, 점심 식후 한 잔, 야근 당첨 한 잔... 사무실로 클라이언트가 방문하는 날이면, 하루 최대 네 잔에도 이르렀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두 잔은 익숙한 일상이 된 셈이다. 하루 두 잔에서 세 잔, 그 기준선이 주류가 되었다.


카페인 섭취의 심화 단계에 도달했다. 무엇이든 도가 지나치면 악영향이 짙어지는 것처럼, 피로도와 카페인 섭취량의 불협화음을 몸소 인지하기 시작했다. 이젠 한 잔, 두 잔 더해 마실 때마다 죄책감이 동반되었다. 그러면서도 끊지 못하고 먹는 카페인 중독의 굴레에 빠져버렸다.


적어도 회사에서 커피를 물고 있는 시간 동안 고개를 꾸벅이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커피를 들이부어도 밤에 잠은 또 잘 잤다. 카페인의 영향을 받으면서 동시에 받지 않는 아이러니였다. 그저 심리적인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커피에 충분한 기대 효과를 얻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스스로 커피에 기대고 있었다. 완전한 주객전도인 것이다.


Photo by Demi DeHerrera on Unsplash


어찌 됐든 이젠 인정해야 했다. 나는 커피를 정말 좋아한다. 없이는 못 살 정도로.


고소한 원두 향이 가득한 공간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좋아하는 글을 쓰고, 재미있는 영화를 보는 일이 덕분에 더욱 풍부하다고 느끼고 있다. 커피와 함께 하는 비즈니스는 또, 꽤 버틸 만하다. 제법 좋은 버팀목이다.


직장을 그만 두고도 여전히 커피는 하루에 한 잔씩 꼭 챙기고 있다. 동시에 조금씩 텀을 늘려, 카페인 섭취량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선해보고자 한다.


아무래도 아예 끊어내는 건 못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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