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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광 Dec 20. 2020

감정 과잉

저는 대학생이 된 딸내미와 대화의 소재를 넓히기 위해 가끔씩 영화를 같이 보곤 합니다. 최근에 본 영화로는 Get Out 이라는 공포 영화와 Manhunt 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었는데 아주 재미있게 감상해서 나중에 딸내미와 이와 관련된 토론도 계속할수 있었습니다. 딸내미가 입학한 대학이 미국에서 영화 쪽으로 유명한 학교이라 영화의 이해 과목을 수강해야 했는데 그 과목을 듣고는 영화를 좀더 비판적으로 감상하는 안목을 키운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도 딸내미와의 대화를 통해 배우는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딸내미와 같이 한국영화를 보면 반응이 별로입니다. 어제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라는 영화를 감상했는데 기생충 영화보다는 좀 여운이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딸내미에게 영화가 어땠냐고 물어보니 작품의 완결성이 떨어지고 배우의 연기력이 약해서 유치하게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보통 완성도 높은 영화에서는 모든게 완벽하게 준비됩니다. 예를 들어, 음악이나 분장은 물론 조명에 대한 대본까지도 따로 만들어서 그 대본에 따라 촬영을 하는 것입니다. 2시간 동안 상영될 영화를 위해서 수년간의 준비를 해야 하는 이유가 그런 완벽한 영화예술을 구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한국영화나 드라마를 보는데 가장 방해되는 요소가 감정을 강요한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감정이입을 하여 주인공이 느꼈을 감정을 내가 상상하면서 일종의 간접 경험을 하고 싶은데 한국 영화에서는 그런 주인공의 감정이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경우가 많아 그게 오히려 감정 이입을 방해하곤 합니다. 영화 옥자의 경우에도 슈퍼돼지와의 우정을 묘사한것 까지는 좋은데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점점 지나치고 비현실적으로 변하니 나중에는 공감이 되지 않아서 뻘쭘해진 상태로 영화를 지켜본 것입니다. 왜 저렇게 오바하나 싶은 것이지요. 


반면에 미국 영화는 그런 면에서 주인공이 감정표현을 절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신 주인공이 어떤 감정을 가질지에 대한 상황 묘사가 뛰어납니다. 그러니 주인공이 가졌을 공포감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는 장면에서 감동이 얻어지고 그 감동이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여운으로 남아서 영화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즉, 좋은 영화는 주인공은 울지 않지만 시청자들이 울게 만드는 것입니다. 시청자가 울기도 전에 주인공이 대성통곡을 해버리면 시청자의 감정은 방해받게 되는 것입니다. 코메디언이 자기는 하나도 안웃으면서 상대를 웃겨야하는데 만약 상대가 웃기 전에 자기 먼저 웃어버리면 김이 빠지고 마는 것과 비슷한 원리일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감정과잉의 근본 원인은 작품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묘사와 스토리텔링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감독이 작품으로부터 충분히 거리를 두지 않아서 감정이 충분히 여과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은 그 이야기의 내용과 충분한 거리를 두어야 감정이 여과되어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제대로 전달할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거리두기에 실패하면 자신의 감정이 섞여서 전달하게 되는데 그건 듣는 사람의 감정의 자유를 배려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니 원치않는 부작용이 생길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울면서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 하고 당시 상황을 과장하면 당장은 많은 동정을 얻을수는 있겠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그게 신뢰를 떨어뜨릴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객관적인 사실 위주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되 충분한 상황묘사를 통해 그것을 듣는 사람들이 각자 그 감정을 제대로 느끼게 배려하는 것이 공감을 얻기 더 쉬울 것입니다. 결국 감정도 과유불급의 원리가 적용된다고 볼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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