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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광 Dec 21. 2020

조이 (Joy)

제가 학문을 직업으로 삼고서 거의 20년이 되었는데요,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그에 대한 자세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처음에는 생존의 수단으로서 공부를 하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직업을 잡아야 하고, 전문가로서 성장해야 전문가 집단에서 인정받을수 있게 되기 때문에 생존이 일차적인 목표였습니다. 그러다가 번듯한 교수 자리를 얻게 되니 그 다음에는 책임감이 주된 동력이 되었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올랐으니 그게 걸맞는 책임감을 느끼고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문대에서는 학생들이 우수하니 그 눈높이에 맞추려면 제가 더 실력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음 단계에 눈을 떴는데 그건 학문 자체가 주는 즐거움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를 영어로는 joy 라고 표현할수 있습니다.


학문에서 joy 가 얻어지는 이유는 그 학문 자체의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한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심미적 안목이 길러져야 하는데 그건 오랜 시간을 통한 훈련을 통해 얻어지게 됩니다. 또한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지나치게 경쟁적인 분위기에서는 마음의 여유를 얻지 못하니 joy 를 얻기 보다는 성과에 연연하여 스트레스를 갖기 쉽습니다. 심미적 안목이 생기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학문 자체가 주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을텐데 그 즐거움은 학문이 주는 다른 보상(명예나 금전)과는 다른 차원입니다. 그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다른 이유 때문에 학문을 직업으로 삼는 것은 학문이 제공할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는 다른 조건 때문에 사랑이 없는 결혼생활을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공자님 말씀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평생 일할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그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즐기는 사람이 가장 오래가고 멀리갈수 있는 것입니다. 



예술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예술가가 되어서 유명해지고 큰 돈을 벌수 있다고 생각해서 예술가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은 매우 드믑니다. 오히려 예술가가 되는게 힘들고 너무나 커다란 장벽이 있지만 예술을 통해 얻어지는 기쁨(joy)이 너무 크기에 그 과정에서의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힘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joy 을 얻지 못하면 어려움을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동기로 예술을 시작할수는 있지만 joy 가 없으면 그것을 계속할수 없습니다. 모든 일에는 그 과정에서 반드시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결여된 결혼에서는 외도를 하기 쉬운 것처럼 joy 가 사라진 직업에서는 다른 형태의 외도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교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대중들과 소통하는게 지나쳐서 연애인인지 학자인지 구분이 안가는 사람들을 보면 학문이 주는 joy 를 망각하여 다른 길을 찾아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일반 대중들에게 학문의 joy 를 이야기하는건 사실 연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속을지 몰라도 그게 반복되면 사람들이 계속 속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바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joy 를 잃는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건 많은 불행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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