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 인생
저희 집에는 10살 정도 먹은 강아지가 있습니다. 10살짜리 강아지는 인간으로 치면 대충 70살이라고 볼수 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어려서 엄청 에너지가 많고 귀찮게 놀아달라고 그랬는데 지금은 늙어서 힘도 떨어지고 잠을 많이 잡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 강아지가 당뇨병에 걸렸다는 판정을 병원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저는 개도 당뇨병에 걸린다는걸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고생하는 것을 보니 좀 측은한 생각도 들기도 하고 또 5-6년 전의 저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었습니다. 저도 그때 전당뇨 판정을 받았는데 다행히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극복을 하고 지금은 정상의 혈당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전당뇨 판정을 받고 저는 나름 큰 충격에 빠졌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느 선배 교수님께서 저에게 일병장수(一病長壽)라는 중국 속담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고질병이 하나 정도 있는 사람이 병이 전혀 없는 사람보다 더 오래산다는 내용의 말씀이었습니다. 아무 병치레 안하고 건강에 자신을 갖는 사람들은 오히려 한방에 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렇지 않고 당뇨 같은 병에 걸린 사람은 그것 때문에 조심하고 건강 관리를 꾸준하게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건강을 지켜서 오래 살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나의 몸안에 있는 어느 약한 부분을 인정하고 그걸 이해하고 조심하는 수준에서 꾸준히 관리하는게 핵심인 것입니다. 불교의 <보왕 삼매론>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마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공부하는데 마음에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마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 하셨느니라...
<중략>
이와 같이 막히는 데서 도리어 통하는 것이요. 통함을 구하는 것이 도리어 막히는 것이니 이래서 부처님께서는 저 장애 가운데서 보리도를 얻으셨느니라. 요즘 세상에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만일 먼저 역경을 견디어 보지 못하면 장애에 부딪칠 때 능히 이겨내지 못해서 법왕의 큰 보배를 잃어 버리게 되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랴 슬프지 아니하랴"
결국 이런 메시지의 핵심은 내게 발생하는 질병이나, 곤란이나, 아니면 장애나 모두 친구삼아 지내는 것입니다. 내게 발생하는 불행이나 곤경이라는 것을 자신의 괴롭히는 원수처럼 인식하지 말고 오히려 이를 긍정하여 자신에게 기쁨과 유익을 주는 친구같은 존재로 인식하라는 귀한 말씀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또다른 중요한 의미는 우리가 어떤 문제를 꼭 해결해야 한다는 심리적 강박에서 벋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뇨를 하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그걸 극복하고 치료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벋어나 오히려 그 문제를 친구삼아서 잘 관리하는 것으로 목표를 삼는게 현실적이고 마음이 더 편할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사고는 특히 감정처리와 자존감 회복에서도 중요한것 같습니다. 자신의 (또는 자녀의) 성격에 어떤 문제점을 찾아내서 그걸 고치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걸 나의 일부로 인정하고 잘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할때 그런 문제점이 사라지고 자존감이 회복되는 역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유투브 프로그램에서 보니 정신과 의사의 설명도 비슷한 맥락인것 같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이를 친구삼아 잘 관리하는 것이, 그것을 무시하거나 부인하고 감추려는 것보다 더 건강하고 효과적이라는 내용입니다. 인생에 어려움이라는게 없을수 없는 것이고 사람에게도 누구나 이런저런 약점과 단점이 있을텐데 이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인식해서 고치려고 하거나 아니면 감추려고 하기 보다는 내 안에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을 이해하고 친구로 삼아서 잘 달래가면서 화평하게 지내는 것이 더 나은 전략일 것입니다. 자신을 긍정하고 수용해야 다른 사람도 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