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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광 Jan 15. 2021

열정과 냉정 사이

저는 20대 중반에 유학을 나와서 박사 공부를 했었는데요, 지금 생각해도 좀 무식한 방법으로 공부했던것 같습니다. 밤을 새워 공부를 하고 낮에 조금 자는 방식이었는데 밤낮을 바꾸어서 산다는게 체력적 극한에 도전하는 것이라 장기적으로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무식한 방법이고, 돌이켜보면 그게 효율적이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당시 내가 밤새워 공부한다는 그런 심리적 자만심에 빠져서 낮시간을 함부러 낭비한 적도 많았고 그러다가 스트레스가 극한에 쌓이면 술을 잔뜩 마시는 방법으로 감정적 정서를 해결했으니 건강한 방식도 아니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 당시에 필요 이상으로 과도한 노력을 쏟아부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과도한 노력을 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의미부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피로를 이겨내는 정신적 에너지를 갖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게 엄청나게 중요한 일을 하는 것처럼 스스로에게 의미부여를 하고 이를 정신적 땔감으로 사용하여 스스로를 착취하는 형태로 한동안을 보내었던것 같습니다. 그러한 과도한 의미부여는 저에게 정신적인 우월감을 키우는데 영향을 미쳤는데 그게 장기적으로는 저에게 큰 해악을 끼쳤던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과도한 노력을 하기 위한 정신적 댓가를 두고두고 지불한 것입니다.



물론 저처럼 하나의 목표에 대해 과도한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드물고 따라서 저같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은 성취를 이루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성취는 과도한 노력과 자기기만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 부작용도 큽니다. 일단 이러한 메카니즘 자체가 스스로를 속이는 방식이라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댓가를 지불하고 대인 관계 뿐만 아니라 미래의 나에게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게다가 그러한 자기 기만을 바탕으로 성취하는 인생은 사실 공허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돌이켜보면 인생은 과도한 열정과 과도한 냉정 사이를 주기적으로 오락가락하는 존재입니다. 과도한 열정은 에너지를 키우지만 그 에너지는 나 자신을 갉아먹는 한계 상황을 만들기에 결코 장기적으로 지속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과도한 냉정 역시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걸 평가절하 하는건 또다른 형태의 자기기만입니다.


결국 감정은 에너지이고 그 에너지를 통해서 우리는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할수 있는 동력을 얻지만 그 에너지는 나에게도 영향을 미쳐고 그게 지나치면 내게 후유증을 남기고 그래서 미래의 나에게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만약 그 당시의 제가 좀더 지혜로왔다면 박사 공부를 하면서도 체력적으로나 감정적으로도 크게 무리하지 않는 수준에서 어떤 균형점을 추구했을 것입니다. 내가 나를 착취하기 위해서 과도한 의미부여 하는 것을 경계하고 현재 나의 감정이 미래의 나를 갉아먹지 않도록 조심했을 것입니다. 대단한 "노오력"은 순수한 동기에서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기에 나중에 우리에게 그 댓가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인생은 "빡침과 귀차니즘 사이에서 갈등하는 존재"라고 할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빡침은 에너지를 만들지만 그 빡침은 내게도 영향을 주어 미래의 나를 갉아먹는 요인이 될수 있으므로 적당한 선을 넘을것 같으면 본능적으로 귀차니즘이 발동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귀차니즘을 지나치게 허용하면 인생을 너무 낭비하는 것이 될수 있기에 그러한 귀차니즘이 게으른 본성에 기반한 것인지 아니면 나의 이성의 작용에 의한 것인지는 냉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현재의 나를 사랑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미래의 나를 사랑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우리가 올해 한해만 살다가 죽는 하루살이가 아닌 이상 미래의 나에게 원망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의 감정을 극복하고 스스로를 좀더 냉정하게 돌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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