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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광 Feb 12. 2021

지적 겸손함

 

제가 소속한 학과에서는 요즈음 외부 평가를 준비를 하느라고 바쁩니다. 미국 대학은 몇번에 한번씩 외부 전문가에게 평가를 의뢰해서 객관적으로 학과의 방향이나 개선 방향 등에 대해 피드백을 받는데요 이번에 그 차례가 된 것입니다. 어제 학과 회의에서는 이 외부 평가와 관련한 준비를 하면서 통계학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과 비젼 같은것을 학과 교수들이랑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왔던 부분은 35명의 교수들이 통계학에 대한 다른 이해와 시야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수들 중에는 이론통계를 하는 사람도 있고, 공업통계를 전공하는 사람도 있고, 생물통계를 하는 사람도 있고, 저 같이 샘플링을 전공하는 사람도 있는데 경험의 내용과 폭이 다르니 통계학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장님 코끼리 만지듯이 서로 다른 것입이다.  다들 나름대로 통계 전문가인데 그 통계학에 대해서 똑같은 생각을 하는게 아니라 조금씩 다른 이해를 하고 있다는게 흥미로왔습니다. 


게다가 연령대별로도 제법 차이가 있습니다. 60-70대 노교수가 갖는 통계학에 대한 이해와 30대의 젊은 조교수들이 갖는 통계학에 대한 이해는 제법 많이 다릅니다. 외부 환경이 바뀌기에 통계학의 유행이나 강조 포인트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데 인간의 인지 능력이나 사고는 그 변화의 속도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뒤쳐지기 쉽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행을 좇는 것은 젊은 사람이 유리하지만 지나치게 유행을 좇다보면 남의 뒤꽁무니 따라잡기에 바쁩니다. 그리고 유행이라는게 반드시 좋은게 아닌 것이 유행에는 거품이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학문은 시간의 테스트를 통과해서 거품을 걷어내고 결국 본질을 찾는 것인데 그런 변화가 한참 진행중인 경우에서는 어떤 것이 본질이고 어떤 것이 일시적 유행에 가까운 것인지에 판단은 교수마다 조금씩 다를수 있기에 집단적인 논의를 통해서 합의점을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게 정상인 것입니다. 학문이란게 어떤 한사람이 다 꿰뚫을만큼 단순한 것이 아니기에 이렇게 집단적으로 각자의 세부 전공을 바탕으로 큰 퍼즐을 맞추어가는게 정상적인 과정입이다. 그 가운데에서 세부 합의는 어렵겠지만 큰 틀에서의 합의는 이루어지게 되고 그 토론 과정에서 차이점을 노출시키는 것이 오히려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고 구성원들의 상호 이해를 증진시킵니다. 그런 상호 보완적이고 역동적인 과정을 통해서 학자 집단은 스스로의 자정 능력을 발휘하면서 과거보다 더 나아지는 발전을 하게 됩니다. 개인은 퇴행을 할수 있지만 집단은 발전하게 되는 이유가 집단지성이 건강하게 발휘되면 그것이 한사람의 결정보다 더 나은 결정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을 Condorcet's jury theorem 이라고 부릅니다. 통계학의  ensemble 러닝이라고 하는게 비슷한 개념입니다.  ) 


심지어 성경도 그렇습니다. 성경이 66권으로 이루어졌고 서로 시대가 다르고 저자가 다른데 그 성경의 메시지가 완전히 통일되었다고 생각하면 성경에 대해 무지한 이해입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야 성경이 오류가 없고 성령의 감동으로 씌여져서 아무 모순이 없다고 믿겠지만 실제로 성경을 연구하는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성경에는 메시지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많고 조금씩 다른 관점들이 어울러져 있다고 합니다. 제가 이해하기에도 같은 신약에서도 예수의 메시지와 바울의 메시지가 강조점이 약간씩 다르고 이는 베드로의 서신과도 조금 다릅니다. 아마도 불교의 경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적 겸손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전문 분야에 대해 자신감이나 열정을 갖는 것은 발전을 위해 필요한 면이 있지만 그게 지나치면 나의 경험과 내 생각만이 옳다는 확신과 오만한 자세를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오만한 자세는 답을 미리 정해놓고 자기 생각을 수정하지 않는 것인데 이는 공동체 뿐만 아니라 본인을 위해서도 별로 좋은 자세가 아닙니다. 제 생각에 오만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정답을 찾았다는 생각을 통해 더 이상 고민하거나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만함은 발전이 없는 사람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겸손이라는 자산의 최대 유익은 본인에게 발전이라는 배당금을 지급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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