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에서의 허니문은 2년정도였던것 같고 2006년 정도가 되니 두가지 정도 문제가 생겼다. 하나는 이전 포스팅에서 이야기한대로 공부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실 많은 교수들이 학생 시절 교수가 되는걸 목표로 공부를 했고 그래서 교수가 되는 순간 목표가 달성되어서 안주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특히 연대에는 연대 출신 교수 중에서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모교의 교수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기도 하지만 그 영광에 취해서 더이상 노력을 하지 않고 그 열매만을 따먹으려 하기 쉬운것 같다. 내가 그걸 이해 못하는건 아니다. 그런데 나는 그 전에 외대에서 워낙 고군분투를 해서 그런지 이렇게 좋은 환경에 왔으니 안주하지 말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사명감 비슷한게 생겼다.
그런데 공부에 재미가 들리게 되면서 좀 외롭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것 같다. 연구와 관련된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고 같이 토론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는데 혼자서 고민하고 다른 누구와 나누지 못한다는 것이 고독감을 가져왔다. 그래서 연구하는 교수는 박사과정생이 있어야 하는데 연대 응통과는 박사과정이 매우 부실했다. 좀 공부를 하려는 학생들은 유학을 다 가버려서 박사과정에는 주로 타교 출신이 와서 머릿수를 채웠는데 그나마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다행히 중학교 수학선생을 하면서 박사과정을 밟는 친구가 있었는데 제법 열정이 있었고 나와 같이 연구를 하겠다고 해서 그 친구와 missing data 쪽으로 연구를 하면서 이에 대한 지식을 쌓아갔다.
두번째 문제는 연대에서 대학원생들과 가까와지면서 감정이입이 되어서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교수와 학생의 관계로 만났으니 상대를 타자화하고 적당히 수단화 하면서 서로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현실적이고 덜 피곤한 인간관계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순수한 것인지 아니면 뭘 모르는 것인지 어느날부터 내가 그들의 입장에서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들이 분노하는 것들에 같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예를들어 어떤 교수들이 불성실하게 수업을 하고 학생들의 학문적 갈증을 채워주지 못하거나, 또는 교수들의 이익 때문에 학생들에게 정직하지 않게 대할때, 나는 대학원생들과 함께 분노했다. 그러니 일부 교수님과 심리적 거리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집사람은 나에게 어느 직장을 가도 항상 불편한 사람은 있는 법이라고 나에게 참으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사실 내가 가진 불만이라는 것이 어쩌면 행복한 고민일수도 있고 복에 겨워서 그런 거라고 말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 나이가 30대 중후반이였으니 아직 혈기왕성했고 감정적으로도 미숙한 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어느날은 술을 마시고 학과에 대한 문제점과 특정 교수에 대한 불만을 정리해서 학과 교수들한테 전체 메일로 보냈는데 그 다음날 일어나서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할지 몰라 엄청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 메일에 대한 답장으로 같은 학과 김병수 교수님이 내게 "보왕삼매론"이라는 불교 경전 구절을 보내주셨다.
<보왕삼매론>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하셨느니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하셨느니라.
공부하는데 마음에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말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하셨느니라.
수행하는데 마(魔)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수행하는데 마가 없으면 서원이 굳건해지지 못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모든 마군으로서 수행을 도와주는 벗을 삼으라」하셨느니라.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되면 뜻을 경솔한데 두게되나니 ,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여러 겁을 겪어서 일을 성취하라」하셨느니라.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
내가 이롭고자 하면 의리를 상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순결로써 사귐을 길게 하라」하셨느니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기를 바라지 말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면 마음이 스스로 교만해지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서 원림을 삼으라」하셨느니라.
공덕을 베풀려면 과보를 바라지 말라.
과보를 바라면 도모하는 뜻을 가지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덕을 베푸는 것을 헌신처럼 버리라」하셨느니라.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
이익이 분에 넘치면 어리석은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적은 이익으로서 부자가 되라」하셨느니라.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을 삼으라」하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