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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광 Jun 07. 2020

나이 든다는 것

제가 한국 나이로 40세에 들었을 때 미국 이민을 실행했는데요 그게 나름 저에게는 큰 용기를 낸 사건이었습니다. 26살에 미국 유학을 떠날 때에는 아무 고민이 없었지만 40세에 미국 이민을 떠나는 것은 더 많은 용기을 요구했던 일인데 그게 더 힘들었던 것은 아무래도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실제로 50세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카이스트에서 정착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 기회를 잡지 않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아마도 50세에 새로운 선택을 하지 않은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해서 살기에는 조금 늦었다고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최근에 새삼 발견한 것은 제가 나이를 상당히 의식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스스로에게 "나는 나이가 많아서 이제 이 이상은 무리야"라고 말하는 것이 일종의 고정관념에 기반한 사고를 하는 것인데 이건 예전의 진취적인 자세는 사라지고 이제 제가 보수적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직 제 나이면 상당히 젊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굳이 스스로를 나이 든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건 제가 이루어놓은 성취나 학문적 기반에 이미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어서 이걸 포기하고 새로운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습니다. 또 체력적으로도 예전만 못하니까 자신감이 그만큼 떨어져서 일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보다도 더 근본적인 이유는 저에게 있는 보수성인데 그건 내성적인 성격과도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사람을 새로 사귀거나 여행을 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새로운 사람보다는 오랜 친구를 만나는것을 더 좋아하고, 복잡하고 바쁜 생활보다는 단조로운 생활을 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외향적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성적인 기질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내성적인 이유는 예민하기 때문입니다. 남들보다 더 민감하기에 똑같이 사람을 만나도 더 피곤합니다. 그래서 민감한 사람이 외향적이 되려면 훨씬 더 강한 체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마도 젊을 때에는 체력이 그래도 받추어주니 예민함과 외향성을 갖출수 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떨어지니 둘중 하나는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 사실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자신의 생각이라는 것이 자신의 욕망이나 자기가 속한 준거집단의 영향을 받아서 동조되는 경향이 있기에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은 젊은 시절에는 쉽지 않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가능해집니다. 자기를 좀더 객관적으로 볼수 있다는것, 그것이 나이가 드는 것의 큰 장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러한 보수성을 긍정하고자 합니다. 타고난 기질은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질을 살려서 잘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게 좋습니다. 저는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은 떨어지지만 자기 객관화는 되는 편이니 행동가로 살지는 못해도 사색가로는 안성맞춤입니다. 크게 남을 돕지는 못해도 남을 속이거나 피해를 주지는 않으니 양심에 크게 찔리지는 않는 것입니다. 대신 저는 다른 방식으로 남을 도울 수도 있습니다. 외향적인 행동가들은 깊이 공부할 시간이 없으니 저 같은 내성적인 사람들이 조용히 공부를 하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발견하여 이를 알리면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습니다.


결국 나이를 드는 것에 대한 현명한 대응은 그 자신의 고유함에 맞는 최선의 삶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여러 가지 달콤한 말로 유혹하고 또 남들처럼 살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협박하지만, 그리고 우리는 그것에 눈이 멀어 헛된 욕심을 부리고 어리석은 행동을 해야 할것 같은 유혹에 빠지지만, 운 좋은 일부만을 빼놓고는 허무한 결말을 맞이하기 쉽습니다. 그보다는 자기에게 맞는 삶의 양식을 찾아 당당하게 살아내어서 그걸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자신의 시간을 헛되지 않은 것으로 증명하는 것이 허무한 인생에서 덜 허무하게 사는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신과 비슷한 기질이나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모범답안을 제시하는것, 그것이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숙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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