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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광 Jun 08. 2020

같음과 다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감상평

"벤자민 버튼"은  노인의 얼굴로 태어나서 시간을 거꾸로 먹으면서 점점 젊어지다가 나중에 갓난아이의 모습으로 죽는다. 그 벤자민 버튼과 결혼을 했던 데이지 풀러의 임종 자리에서 그녀는 자신의 딸 (벤자민 버튼의 딸)에게 친아버지의 일기장을 읽게 함으로써 그녀의 출생과 그녀의 아버지와 관련된 놀라운 이야기를 알려준다. 이 영화에서 우리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적절한 로맨스와 잔잔한 스토리 텔링으로 군더더기 없이 훌륭하게 전개되는데  2시간 50분이라는 제법 긴 상영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느껴졌다. 친아버지가 양육을 포기하고 남의 집에 놓고 갈 정도로 흉악하게 생긴 노인의 얼굴을 가진 아이가 젊은 시절에서는 브레드 피트의 잘생긴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상당한 반전이었는데 이는 마치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감독은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마도 "나는 남들과 다르게 태어났다"는 말로 시작하는 벤자민 버튼의 일기장에 그 힌트가 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벤자민 버튼은 남들과 다르게 태어난 인간을 상징한다. 사실 우리는 모두 남들과 어느 정도 다르게 태어난다. 각자의 개성과 독특함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사회화를 거치면서 다른 사람처럼 말하고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 이러한 다름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아기 "벤자민 버튼"인 것이다. 그는 워낙 다르게 태어났기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고독을 경험하였는데 그 고독은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일종의 절대 고독이었던 것이다. 현실의 우리는 우리의 다름에 의한 고독을 경험하는 것을 두려워하기에 자신의 다름을 숨기고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고자 노력한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 고독을 피하지만 대신 숨어있는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적 자아를 실제 자아와 동일시하면서 타인의 욕망을 나의 욕망으로 생각하고 집단의 가치를 자신의 가치로 내재화를 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니체가 말한 "낙타"의 삶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부분은 그러한 극단적인 다름에도 불구하고 감동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영화에서 주인공이 사랑하고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하고 그가 슬퍼할 때 함께 슬퍼한다. 그러한 극단적인 다름 속에서도 무언가 같음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공통분모에 있는 이상 희로애락의 감정이 다를 수는 없는 것이며 그가 느끼는 고통이 내게도 전달된다는 것이 우리가 사실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서로 다름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이 영화에서는 두 가지 길을 제시한다. 하나는 그 다름을 배척하고 혐오하고 왕따 시키는 길로서 벤자민의 친아버지가 그걸 보여주었고, 다른 하나는 그 다름을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하고 상생하고 사랑하는 길로써 양엄아 퀴니와 여자 친구 데이지가 그걸 보여준다. 다름을 배척하기보다는 그 다름 가운데에서도 서로 용납하고 공존하려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자세가 우리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길임을 이 영화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주인공은 두 번 먼 길을 떠난다. 한 번은 18살인가에 자기가 자란 집을 떠나 배를 타고 먼바다로 떠난 것이고 다른 한 번은 40대 중반에 아이가 탄생하고 나서 아이와 가족을 위해서 떠나는 것이다. 첫 번째 떠남은 자신을 찾기 위해 떠난 것이고 두 번째 떠남은 자신보다 더 큰 가치를 위해 (여기서는 사랑하는 가족) 떠난 것인데 이는 결국 그가 자신의 삶의 문제에 창조적인 해법을 발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본인이 떠나야 하는 그 상황은 대단히 비극적인 상황이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히 지혜롭고 자기희생적인 사랑의 정수를 보여준 것이었다. 


 벤자민 버튼은 멀리 떠나서도 자기 딸에게 엽서를 쓰는데 그 엽서는 데이지의 임종을 앞두고서야 딸에게 읽힌다. 그 엽서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써져있다.  "네가 자랑스러워하는 인생을 살기 바란다. 만약에 네가 가고 있는 길이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운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네가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기 바란다... 시간제한 같은 것은 없다. 언제든지 네가 원할 때 시작하렴. 네가 되고 싶은 사람이 돼라"  즉, '네가 되고 싶은 사람이 돼라'는 아버지의 메시지는 결국 타인의 욕망을 내재화하여 살기보다는 자신의 고유함을 발견하고 그걸 긍정하는 가운데에서 자기다움을 찾는 것이 각자의 인생에게 주어진 숙제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자신의 다름을 긍정하고 그 어려움 가운데에서 자신만의 하나의 모범답안을 삶으로 제시하였던 벤자민 버튼이 사랑하는 자녀에게 꼭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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